응원이 보답받지 못하는 슬픔

2023.10.17 21:00

Sonny 조회 수:402

5b90d703e5dd1.png


제가 스타크래프트 1 리그에서 제일 좋아하고 응원하는 선수는 변현제라는 선수입니다. 예전에 듀게에 이 선수의 지독한 게임 스타일을 한번 쓴 적이 있지만 그 외에도 독특한 tmi가 하나 있는데요. 이 선수는 표정변화가 아주 솔직합니다. 자기가 실수를 했거나, 게임을 진다거나 하면 자책을 심하게 하느라 카메라가 없다는 듯이 세상 무너지는 표정을 짓죠. 저 사진이 어떤 극적인 순간을 딱 캐치해낸 게 아니라, 자기가 지거나 뭘 못했다고 느끼면 여지없이 저런 표정이 나옵니다ㅋㅋ 그래서 변현제에게는 "전기의자"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저렇게 자책하면서 의자에 푹 잠겨서 아래로 미끄러져내려가는데 그게 전기의자에 앉아서 지지지직 고문당하는 것 같다는거죠. 해설자들도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아~ 변현제 또 전기의자 앉겠는데요~ 


이 링크에서 동영상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ㅋ 

https://vod.afreecatv.com/player/88520791


얼마 전에 변현제가 다른 선수와 맞붙은 결승전이 열렸습니다. 스포를 피해서 뒤늦게 경기를 챙겨보았는데 결국 졌더라고요. 질 때마다 전기의자에 앉는 변현제를 보니 진짜 속상하고 웃프더군요. 7전 4선승제에서 결국 4:1로 졌는데 그 중 두 경기는 자기가 정말 유리한 분위기를 가져가놓고서도 끝내 밀려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30분이 넘어가는 장기전을 해서 이렇게 져버리니 더 속상하기도 하더군요. 전에 이 선수는 타짜의 고니를 방불케하는 도박적인 플레이를 즐긴다고 소개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도박수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후반지향형 플레이에 더 치중했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죽을 때까지 괴롭히는 게릴라 플레이나 살을 주고 뼈를 친다는 역공 플레이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상대 선수의 별명이 방어력으로 유명한 "철벽"이라서 그랬던 것일지도요. 결과론적이지만 송충이가 솔잎을 먹듯 조금 더 본인 스타일의 견제에 집중했다면 어떘을까 싶더군요.


팬이 건방지게 선수에게 훈수를 둬봐야 뭐하겠습니까? 김민철도 한번은 우승을 했어야 하는 강자였습니다. 그저 이게 순리였다고 생각해야죠.


오랜만에 응원을 하는 선수가 참패를 하는 슬픔을 경험해봅니다. 저는 스포츠를 원체 안봐서 누굴 열렬히 응원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국가대항전 축구경기나 올림픽 같은 것들은 애국심으로 뜨거운 응원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 애국심마저도 많이 희미해졌습니다. 가장 최근에 불타올랐던 일이라면 월드컵 정도일려나요. 조금 더 기억을 더듬어보면 "영미~~"가 울려퍼지던 컬링 정도? 그러다가 변현제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응원했습니다. 그만큼 속이 쓰리고 비통한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그 때 뭘 했더라면, 조금만 더 기민하게 움직였더라면! 계속해서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그리게 되는데 그럴 수록 마음이 헛헛해집니다.


혹시 이게 제가 누군가를 응원하는 운명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해봅니다. 저는 변현제 이전에 송병구라는 프로게이머를 좋아했는데, 이 선수가 바로 "콩라인"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선수입니다. 너무너무 잘하고 다른 선수나 감독들이 다 우승후보로 뽑는데 결승전에만 올라가면 귀신이 쓰인 것처럼 지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송병구를 보고 홍진호 라인이라고 농담을 했고 그게 콩라인으로 되버린거죠. 송병구는 결국 이 콩라인의 저주를 풀었지만 그 다음에 결승에 갔을 때는 아주 크게 참패를 했습니다. 변현제도 힘겹게 콩라인의 저주를 풀어낸 선수인데 그 우승 다음에 또 스코어상으로는 커다란 패배를 하면서 또 준우승의 아쉬움을 겪고 있네요. 제가 좋아하는 선수들은 어째서 이렇게 우승의 기쁨을 이렇게 힘들게, 딱 한번씩만 맛을 보여주는지... 이제 스타크래프트 리그 자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기회를 꼭 잡아서 변현제가 우승 한번은 더 해줬으면 합니다. 


@ 변현제를 응원하러 무려 숏박스 개그맨들이 왔더라고요. 한명은 목사 코스프레하고 한명은 스님 코스프레하고 경기 도중에 서로 기도하는 흉내 내고 있는데 종교대통합이라고...ㅋㅋㅋ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187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086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1162
124660 밥 달라고 지저귀는 아기고양이들 [14] 로즈마리 2010.07.05 3819
124659 혼자라서 불편할때.... [17] 바다참치 2010.07.05 3929
124658 [축구] 여러가지 오심, 반칙등과 관련된 논란에 대한 [10] soboo 2010.07.05 2611
124657 원래 등업고시 다른 사람꺼 읽을 수 있는 건가요? [3] 임바겔 2010.07.05 2681
124656 갑자기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을 때 어떻게 하세요? [8] eeny 2010.07.05 5534
124655 반복해서 듣고 있는, 보고 있는 노래 [3] 바오밥나무 2010.07.05 2261
124654 자각몽을 많이 꾸는 편입니다. [8] 스위트블랙 2010.07.05 3552
124653 개를 '개' 취급 받은 경험 [37] 프레데릭 2010.07.05 4729
124652 중국집 라이프 사이클 [4] 걍태공 2010.07.05 2547
124651 최근 장르문학 신간입니다. [4] 날개 2010.07.05 2636
124650 또 다른 세대갈등을 불러옴직한 드라마들 혹은 언론의 설레발 [4] soboo 2010.07.05 2445
124649 (듀in)아이폰관련 질문.. [6] 역시천재 2010.07.05 4534
124648 아침에바낭] 농담, 독신생활, 무취미, 주말반 [7] 가라 2010.07.05 3225
124647 에어컨이 싫어요...;ㅂ; [8] 장외인간 2010.07.05 2477
124646 [bap] 명동연극교실 '극장을 짓는 사나이' / '지식의 대융합' [3] bap 2010.07.05 1844
124645 어제 '인생은 아름다워'보면서 강렬하게 바라게 된 것.. [6] S.S.S. 2010.07.05 3953
124644 흑백화면이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가요. [6] 자두맛사탕 2010.07.05 2523
124643 그럼 어떤 점이 "아, 이 사람 미쳤다"라는 생각을 하게 하나요? [10] 셜록 2010.07.05 3407
124642 꿈 속에서는 죽을 수 없다는거 알고 계시는 분? [16] 사과식초 2010.07.05 3680
124641 숨은 요새의 세 악인 / 주정뱅이 천사 [10] GREY 2010.07.05 260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