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1 23:57
- 두 영화 모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링 신경 안 쓰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적을 계획이니 읽기 전에 참고하세요.
1. 갑작스레 무간도를 본 이유는... 뭐 넷플릭스 구독자분들이라면 짐작하시겠죠. 며칠 전에 넷플릭스에 업데이트 됐거든요. 그러니 사실은 이것도 넷플릭스 바낭... ㅋㅋㅋ
다시 보니 참으로 소박한 영화더군요. 뭐 80~90년대 액션 스릴러물들이 지금 보면 거의 다 그렇긴 하지만 이 영화는 좀 더 심합니다. 액션이란 게 거의 없는 영화잖아요. 로케이션 장소도 경찰서 아니면 길거리, 다 쓰러져가는 낡은 건물과 유덕화의 새 집 정도. 제작비 얼마 안 들었겠더라구요.
런닝 타임도 한 시간 오십분이 안 되고. 이야기가 되게 경제적으로 팍팍팍 속도감 있게 진행됩니다. 딱히 뭐 주인공들 처지를 공들여 묘사하며 감정 이입을 유도하려는 시도 같은 것도 안 보이는데, 그래서 오히려 마지막에 둘이 만나는 장면에서 유덕화의 진심을 확신할 수가 없어서 스릴이 생기더군요. 뭐 결국 1분도 안 지나서 진심이야 어쨌거나~ 라는 식으로 결말이 나버리니 상관은 없게 되어 버렸지만.
초반의 마약 거래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하나의 장면이 가장 길게 흘러가는 부분인데, 길이가 길지만 그 안에 오만가지 이야기들을 다 때려 박아 놓아서 길다는 느낌도 안 들더라구요. 경찰측과 삼합회측의 멤버 구성과 각각의 성격과 관계, 두 주인공의 처지와 앞으로의 향방까지 이 한 장면에 필요한 이야기가 거의 다 들어 있는 게 참 각본 열심히 잘 썼다 싶었어요.
결말이 내용만 정리해보면 좀 허탈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뭐 결국 양조위의 최후는 홍콩 느와르의 인장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유덕화의 최후는 영화의 제목과 어우러지면서 나름의 향취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80~90년대의 오우삼식 홍콩 느와르였다면 두 주인공간의 감정 교류와 공감 같은 게 흘러 넘쳤을 텐데, 그딴 거 전혀 없이 상대적으로 건조하게 연출된 부분이 신선함을 주면서 홍콩 느와르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기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뭐 결국은 그냥 이 영화로 끝이었지만요.
근데 이걸 무려 16년만에 보니 이야기의 구멍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판에 몰입이 깨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진실을 깨달은 후 양조위가 취하는 행동은 그냥 말이 안 되죠. 깨닫는 그 순간 아주아주 평화롭게 모든 걸 해결하고 행복하게 정신과 의사 젊은이와 살 수 있었는데 굉장히 괴상하게 행동을 해서 전 양조위가 국장의 복수로 유덕화를 죽여 버리려는 건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작 막판에 유덕화를 잡고서는 체포를 하겠다며...;
예전에 볼 땐 이런 걸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봤거든요. 나이 먹으면서 성격이 까칠해지는 건지 그 시절에 비해 요즘 영화들 각본이 비교적 개연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 건지 좀 궁금해졌습니다.
어쨌거나 재밌게 봤어요.
앞서 말한 그 소박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히트할만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실 전 젊은 시절 유덕화에 대해서는 인상적인 기억이 전혀 없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참 괜찮았습니다.
2. 디파티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영화의 길이였습니다. 오리지널인 무간도보다 거의 50분이 더 길어요. 처음에 원작에 없는 이야기들이 한참 나오길래 '기본 아이디어만 가져와서 그냥 새로 각본을 썼나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라 본게임 들어가기 전에 워밍업을 50분간 하더라는(...) 그리고 시작한지 한 시간쯤 지나니 무간도에서 5분만에 등장했던 장면이 그제서야 나오면서 이후로는 거의 충실하게 원작을 따라가더라구요. 허허허.
그런데 정말로 한 번 원작 따라가기 시작하니 뭐 세세하게 대사 하나하나까지 거의 그대로 재현을 하는데. 당연히 중간중간 디테일은 달라지지만 중요한 사건들은 거의 그대로 다 벌어지는 가운데... 원작에서 거슬렸던 스토리상의 구멍들이 하나도 해결이 안 돼 있습니다. ㅋㅋ 추가된 결말이 나오기 전까진 정말 그냥 충실한 재현이라는 느낌. 그래서 좀 삐딱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럴 거면 왜 리메이크를 한 거야? 50분동안 스콜세지 영감 좋아하는 밑바닥 인생 생태계 수다 떨고 싶어서? 흠...;
아 뭐 개연성 부분을 손을 댄 게 없진 않았어요. 지금 기억나는 게 무간도에서는 삼합회 보스가 죽은 후에 양조위가 유덕화 사무실에 가서 앉아 있는데, 경찰서 사람들은 양조위가 누군지, 왜 와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묘사가 되죠. 경찰서 나름 높은 사람 사무실에 그렇게 아무 일반인이 가서 앉아 있는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디파티드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잠복 요원이라는 걸 경찰들이 알고서 거기 앉혀 놨더라구요.
그런데 이로 인해서 바로 다음 전개에 더 큰 구멍이 생겨버렸죠. 자기가 잠복 요원이라고 말하고 와서 앉아 있었고 다들 그러려니 했으며 심지어 그를 기억하는 경찰학교 동기까지 있었는데 디카프리오씨는 면담 중에 그냥 자리를 떠 버리고, 그걸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하고, 우리의 디카프리오씨는 며칠 후 다시 만난 맛다몬군에게 '내 신분을 돌려줘!'라고 요구한단 말입니다? 대체 왜... 그럴 거면 그냥 앉아 있지 왜 갔어. orz
이렇게 투덜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주연&조연 배우들 다 연기 괜찮았고 (솔직히 맛다몬씨는 좀 미스캐스팅 같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연기는 괜찮았어요) 연출도 괜찮았고 결정적으로 추가된 결말이 참으로 미쿡 버전다워서 좋았습니다. 어차피 물 건너가 다른 문화권에서 리메이크된 것이면 원작과는 다른 해석이나 전개가 적절하게 들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결말을 그렇게 내 버리고 베란다 창가의 생쥐를 보여주니 뭔가 시원하게 찬물 끼얹는 느낌이라 좋더라구요.
아쉬운 부분은 오히려 원작을 너무 그대로 따라가면서 좀 허술한 부분까지 그대로 따라했다는 거. 그리고 기껏 시작 부분에서 한 시간을 투자해서 배경을 깔아 놓고 그게 그 후로 아무 쓸모가 없었다는 거... (원작의 의사와 유덕화 아내를 베라 파미가 한 명으로 합체 시켜 버리길래 무슨 특별한 전개가 있을 줄 알았는데...) 뭐 그랬습니다.
다 보고 나니 쌩뚱맞게 마이클 만의 '히트'가 생각났어요.
제가 본 중엔 전형적인 홍콩 느와르의 공식을 그대로 갖다 쓴 첫 헐리웃 영화였는데, 설정은 그렇게 가져가 놓고 홍콩 느와르의 감상주의를 싹 다 쳐내버리고 건조하고 팍팍한 미쿡 프로페셔널들의 싸움 이야기로 만들어 놓았었죠. 당시엔 그러한 이유로 보면서 실망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접근법이 옳았던 것 같아요. 디파티드도 그 정도로 빡세게 번안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지금의 이 영화는 '괜찮긴 한데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어'라는 느낌입니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디파티드가 원작보다 분명하게 나았던 점을 굳이 한 번 찾아본다면 음...
베라 파미가가 예뻤어요.
보다 중간에 접은 '베이츠 모텔'을 다시 봐야하나 싶을 정도.
네. 그러합니다.
끝.
2019.07.22 09:27
2019.07.22 19:56
2019.07.23 00:57
2019.07.22 10:17
무간도를 개봉 당시에 워낙 인상깊게 보아서 디파티드는 별 감흥이 없었어요.
무간도에서 양조위의 눈빛, 특히 (잠복근무를 끝내주고 경찰로 복귀하게 해줄) 국장이 눈앞에서 죽었을 때의 황망한 눈빛이 제일 인상깊었죠.
영화 자체도, 망해가는 홍콩영화를 완전히 세련되게 부활시킨 작품이었고요.
그에 반해 디파티드의 디카프리오는.. 물론 연기는 어느정도 했지만 양조위의 눈빛연기를 따라가지 못하였고 맷 데이먼보다는 유덕화의 결말이 나았죠..
2019.07.22 19:58
2019.07.22 22:41
그립네요 '합작' ..
오호 베라 파미가가 하정우랑 영화도 찍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