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기...(성장, 잠재력)

2019.06.13 02:21

안유미 조회 수:654


 1.요즘 내가 주워섬기는 말을 가만히 보면 결국 3가지에 관한 이야기예요. 잠재력, 실체, 존재감에 관한 이야기죠.


 여기서 말하는 존재감은 '평가'라는 말로 바꿔도 되겠죠. 왜냐면 본인이 본인 스스로의 존재감을 결정할 수는 없잖아요. 존재감이라는 건 타인에 의한 평가, 감정에 의해 결정되니까요. 존재감의 종류도 크기도 말이죠.



 2.어쨌든 남자들은 시기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평가를 받죠. 인생의 일정 시기까지는 잠재력에 의해 가치를 감정받아요. 무엇이 될 수 있을 것 같은지...얼마만큼 될 수 있을 것 같은지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죠. 그래서 다소 불분명하고 직관과 편견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죠. 


 그러다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슬슬 무엇을 달성했는지도 중요하게 여겨져요. 그야 여전히 잠재력은 중요하지만 '달성도'도 중요하게 돼요. 아직 완전히 만개하지 않았어도 제 나이에 맞는 단계의 달성을 일궈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를 판단당해야 하죠. 


 그리고 계속 나이를 먹다 보면 어느 순간 잠재력이 평가의 기준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순간이 오는 거예요. 내가 무엇이 될 것 같은지가 아니라 무엇이 됐는지, 무얼 가졌는지에 관한 거 말이죠. 내가 달성한 실적이 그대로 나의 실체가 되어버리는 거죠. 미래가 아닌 오늘의 현실이 말이죠.


 그런 날이 오면 인정해야만 하죠. 이제는 오늘의 내가 진짜 실체...내가 될 수 있던 진정한 나라는 걸 말이예요.



 3.사실 그런 나이가 되면 기분이 그리 좋지 않겠죠. 언젠가의 내가 아니라 오늘의 내가 진짜 나...최고의 나라니 말이죠. 그런 날이 와버리다니 말이죠. 좀더 노력할걸 하고 후회해봐야 소용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예전에는 이해가 안 되던 관용구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나이든 예술가들이나 석학들이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라고 말하는 게 이해가 안됐거든요. 특히 예술가라면, 자기 작품 만들기만도 바빠야 할텐데 어린 놈들이나 붙잡고 가르치고 앉아있다니 한심했어요.


 하지만 역시...그런거예요. 인생의 일정 시기가 되어버리면 인간은 정점을 찍고, 나머지 세월은 안간힘을 쓰며 정점을 유지하던가 퇴화하던가밖에 없거든요. 그곳에 성장은 더이상 없는 거죠.



 4.휴.



 5.결국 전성기를 맞아버린 사람은 성장에 관여하고 싶다면 에너지를 자신에게 쏟지 않게 되는 거예요. 아직 실체와 실적은 미비하지만 잠재력은 지닌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쏟게 되는 거죠.


 아무래도 내가 돈 얘기를 자주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죠. 왜냐면 인간의 성장기에는 분명 리미트가 있지만 돈에는 그게 없잖아요. 현대 사회에서 돈은 교환가치기도 하지만 개념이기도 하니까요. 스스로를 자기자본화 삼아 끊임없이 스노우볼링이 가능한 개념 말이죠. 


 나는 이제 우주비행사나 축구 선수가 될 가능성이 0이지만, 나의 계좌는 그렇지 않거든요. 가능성은 낮겠지만 1000억이 될 수도 있고 1200억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야 1000억이나 1200억은 너무도 큰 숫자지만 적어도 가능성이 0%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늘 희망이 있는거예요. 나 자신은 우주비행사나 프리미어리거가 될 가능성이 완전히 0%이니까요. 말하자면 돈이란 건 늘 '꿈과 희망'을 품고 있다는 거죠. 인간과는 달리 말이죠.


 전에 썼듯이 인간은 나이가 먹어봐야 에고만 커지거든요. 더이상 잠재력도 없고...희망도 없어져버린 에고의 덩어리가 열량만을 가진 채로 늙어 죽을 때까지 행성의 표면을 기어다닐 뿐이죠.


 그러니까 결국 인간은 나이를 먹으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거나, 다른 사람의 성장에 개입하거나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거죠.



 6.아 이런, 또 삼천포로 빠졌네요. 어쨌든 그래요.


 사실 이 '잠재력과 실체'또한 부익부 빈익빈의 성격이 강하긴 해요. 왜냐면 인간의 성장에 가장 크게 작용하는 건 인맥이거든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또래집단에 들어가서 단계적으로 인간간의 교류에 능숙해지고 또다시 다른 집단에 들어가서 경험과 베네핏을 쌓는 걸 반복하다보면, 그렇지 못한 놈들에 비해 상당히 앞서가게 되니까요. 잠재력을 현실화시키고 실체를 얻는 게 더 쉬운 거죠. 인간의 생리와 조직의 생리에 대해서도 배울 기회가 많아지고요.


 문제는 '집단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아닌, '가입을 시키는' 사람들도 사람이잖아요. 프레쉬맨을 가입시킬 때 미래에 잘될 것 같은 놈에게 신호를 보내죠. 어눌하고 우중충한 놈에게 굳이 같이 어울리자고 하지는 않아요. 이건 어쩔 수 없죠. 우리들은 어른이 되면 사회에서 살지만 어린 시절엔 정글에서 살아야 하니까요. 어린 시절에는 달성한 것이 아닌, 타고난 것들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고요.


 그래서 대체로는 타인에게서 잠재력을 인정받는 놈이 나중에 잘될 기회 또한 많긴 해요. 왜냐면 잠재력을 인정받아야 푸쉬 또한 받으니까요. 어쩔 수 없이 기회의 스노우볼링이 생기는 거죠.


 뭐 이건 어쩔 수 없어요. 인맥이든 돈이든 매력이든 원래부터 많이 가진 놈이 그걸 잘만 굴리기 시작하면 더 빨리 더 쉽게 불어나니까요.



 7.물론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보면 흔히 말하는 그릇이 큰 놈이 꼭 잘된 법은 없어요. 왜냐면 어른이 되면 위에 썼듯이 타고난 그릇의 크기로 평가받지 않거든요. 그릇에 뭘 채웠는가, 얼마나 채웠는가가 중요하죠. 나이를 먹으면 그릇이 곧 그 사람인 게 아니거든요. 그릇에 든 내용물이 곧 그 사람이니까요.


 어른들을 보면 그래요. 타고난 허우대도 좋고...눈빛도 쎄고 목소리도 좋고 눈칫밥도 쌩쌩 잘 돌아가는 놈이지만 가진 거나 달성한 게 별거 없는 놈들도 많단 말이죠. 그런 사람들의 문제는 해낸 것에 비해 자의식은 여전히 세다는 거예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걔네들이 될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걔네들이 된 사람이 이제는 걔네들의 실체인데 말이죠. 어른이 됐으니 잘나가는 만큼만 나대야죠.


 반대인 경우도 있어요. 어린 시절의 정글에서는 분명 소외받았을 것 같은 타입이지만 만나서 1시간쯤 얘기해 보면 놀랄 만큼 내용물을 많이 쌓은 사람들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대체로 가진 공통점은 대체로 비슷해요. 냉정하고 건조하면서도 얼마간의 긍정적인 면...이 세가지 면모가 좋은 밸런스를 이루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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