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승 시인

2019.07.24 17:42

가끔영화 조회 수:1279

뭐든 와 데려가게 마련이지만 동료시인 말대로 기일도 알리지 않고 술심으로 지상에서 탈출 명복을 빕니다 그의 시 가려워진 등짝을 보니 좋은사람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다 작년 이맘때는 실연失戀을 했는데 비 내리는 우체국 계단에서 사랑스런 내 강아지 짜부가 위로해주었지 '괜찮아 울지 마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짜부는 넘어지지 않고 계단을 잘도 뛰어내려갔지 나는 골치가 아프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짜부야 짜부야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엄마가 그랬을 텐데!" 소리치기도 귀찮아서 하늘이 절로 무너져내렸으면 하고 바랐지 작년 이맘때에는 짜부도 나도 기진맥진한 얼굴로 시골집에 불쑥 찾아가 삶은 옥수수를 먹기도 했지 채마밭에 앉아 병색이 짙은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걱정하지마 아직은 안 죽어' 배시시 웃다가 검은 옥수수 알갱이를 발등에 흘렸었는데 어느덧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 또다시 와서 지나간 날들이 우습고 간지러워서 백내장에 걸린 늙은 짜부를 들쳐업고 짜부가 짜부가 부드러운 앞발로 살 살 살 등짝이나 긁어주었으면 하고 바랐지 1970년 서울 출생 2003년 <파라para21>로 등단 시집 『여장 남자 시코쿠』 『트랙과 들판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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