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미팅을 마치고 나오던 모 호텔에서였습니다. 꽤 넓은 엘리베이터였지만 스포츠 클럽을 이용하고 나오는 사람들로 금방 안이 가득차게 됐죠.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는 정도에서 막 문이 닫히려던 참인데 다시 문을 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좀 허술한 차림의 노인과 소년 커플이었어요. 그들은 타려는 태세로 발을 디밀었고 그러자 경고음이 울렸습니다. 노인은 타기를 망설였으나, 소년은 인원초과를 알리는 게 아니라 문이 오래 열려 있어 나는 소리라며 노인을 격려했어요. 노인이 주저주저하는 사이,  갑자기 안쪽 구석에 있던 삼십대 남자가 "만원이잖아, 만원!" 사납게 고함쳤습니다. 그 서슬에 놀란 소년과 노인은 황급히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엘리베이터 문은 안전히 닫혔습니다.

아무도 짜증낸 그 사람에게 뭐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누구든 기다리는 일은 싫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마련이지만, 순간적으로 그에게 저는 감정이 욱! 끓어올랐습니다. "여보세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죠. 꼭 그따위로 화를 내야겠어요? " 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부적절하게 화가 나서 너무 괴로웠어요. 그에게 다가가서 다짜고짜 어깨를 잡고 벽에다 쾅쾅 찧어주고 싶었습니다.  "만원이에요, 만원!". 그 외침에 담긴 자기 정당성에 대한 백퍼센트의 확신에 일격을 가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적 효율이나 능률 때문에 노인과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소리 질러도 된다고 믿는 그 생각에 균열을 내주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니, 요즘 저는 자주 감정이 과잉상태가 되네요. 이런 식으로 '오버'하는 제가, 저도 참 괴롭습니다.

자, 이제부터 웃긴 얘기입니다. 그렇게 감정 과잉 상태에서 들어간 오후 보고 자리에서 저는 할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꼴까닥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회사에서 이런 같잖은 꼴을 보인 게 입사 후 벌써 세번 째입니다. 의료팀이 와서 긴급 영양제를 투여했고 2 시간 이른 퇴근을 했습니다.
상사로부터 이번 주 내 출근하지 말라는 특혜 명령이 있었고, 동료들의 따뜻한 걱정의 마음들도 듬뿍 받았어요. 그래서 지금 더 부끄럽고 더더 슬프기까지 합니다. 

저는 디지털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도  평소 휴대폰으로 온라인의 글을 읽지 않아요. 글이 망막을 스칠 뿐 집중이 안 돼서요. 하물며 휴대폰으로는 덧글도 달아보지 않았는데, 이 긴 글을 휴대폰으로 타이핑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모든 일들은 대개 스스로 대견하죠. 뿌듯합니다.
날도 흐린데 듀게에 주황색 등이 하나도 없길래 켜봅니다. 횡설수설은 자체 필터링해 받아들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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