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 가오리

2010.07.13 09:10

걍태공 조회 수:1900

피어 위의 산책로에는 유난히 낚시줄을 드리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낮게 드리운 구름과 바닷바람 덕분에 은근히 쌀쌀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지요. 느릿느릿 걸어가며 강태공들이 물고기를 담아두는 통을 기웃거렸지만 대부분 비어있더군요.


2-30미터 앞에서 강태공 둘이 부산하게 낚시를 걷어올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느릿하고 조금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피어의 풍경과 대조되어 조금은 우스웠습니다. 그들 옆에 도착해서 낚시줄 끝을 홀낏 쳐다보았어요. 갈색의 커다란 물고기가 꿈틀거리며 매달려 올라오고 있더군요. 구경꾼들이 차츰 모여드는 가운데 마침내 달려온 물고기는 피어 바닥에 철퍼덕 소리를 내며 널부러집니다. 길이가 1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가오리였습니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가오리는 폐호흡을 할리도 없을텐데 마치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의기양양한 낚시꾼들이 가오리의 꼬리를 잡아 들어올리자 낚시바늘에 찢어진 상처에서 조금씩 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핸드폰을 든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하는 가운데, 사람의 얼굴을 닮은 가오리의 피묻은 얼굴을 보면서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어요.


자리를 떠서 피어를 한바퀴 돌아 그 자리로 돌아오자 구경꾼들은 이미 사라진 가운데 가오리만 외롭게 남아 여전히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다시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돌아오면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취해야 한다는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했어요.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도 없지만 왠지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더군요. 아마도 가오리의 얼굴이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느껴져서 더 그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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