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 좋아하세요?

2011.01.18 22:40

아이리스 조회 수:2119

 

지난 주말 생애 처음 겨울바다를 보고 왔어요.

원래도 부지런한 성격이 아니고,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죠. 추운날씨를 핑계로 방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어요. 겨울잠자는 짐승처럼.

 

근데 동생한테 전화가 왔어요. 겨울바다로 가자고. 푸른하늘의 노래가 갑자기 기억저편에서 흘러나왔어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냉큼 짐을 챙겨 따라나섰죠. 구스다운 점퍼와 목도리 장갑은 잊지 않았어요.

 

눈이 내리는 중부를 벗어나 대관령에서 바람소리를 듣고 강릉에 도착하니 하늘은 너무나 파랗고, 바다는 하얗고, 그리고 추웠어요. 쩝.

 

근데 겨울 바다 말예요. 누가 겨울에 바다를 보러 가나 그런 건 드라마속이나 노래속에나 있는거지 했던 게으름뱅이에게 생생한 충격을 줬어요.

이건 내가 익히 아는 질리고질린, 마냥 푸근한 바다가 아니라 너무나 차갑고, 도도하고, 고독한 바다인거예요.

그 속엔 스무살의 나도, 스물다섯살의 나도, 서른살의 나도 있었어요.

대상을 알수없는 열정, 밟힐수록 꼿꼿하던 자존심과,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혼자이기를 열망했던 젊은 날의 나.. 나는 어떤 세월을 거쳐 포기와 타협을 알아왔나.

그리고 어른이 되어 이 안락한 삶속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나. 어떤.. 꿈을. 

 

맨날 던킨도넛만 먹던 사람이 어느날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먹어보고 맛의 경지를 알아낸 것처럼

겨울바다는 제게 바다가, 자연이, 세상이 이렇게 다른 느낌일 수가 있구나를 일깨워줬어요.

뭔가에 홀린듯이 셔터를 눌러댔고, 차디찬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겨울바다의 풍경을 눈에 담았어요.

눈이 내리면 어떨까 문득 궁금했지만 날씨는 너무나도 맑았어요. 아. 써놓고 나니 너무나 궁금해요. 눈내리는.. 바다란?

 

묵호항의 대게찜, 주문진의 생선회, 아름다웠던 사천의 팬션 베니스하우스, 오색온천, 속초의 생선구이와 닭강정, 바닷가 미술관 여행의 추억은 너무나도 많지만

여행이 끝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찬바람이 살갛에 닿고, 어느새 파도치는 겨울바닷가에 내가 서 있어요.

이제 저는 겨울바다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립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은 겨울바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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