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1 12:51
오늘은 비가 안 오고 황사도 좀 옅어졌네요.
원체 기질인 게으름과 잡고 있는 책의 어려움이 조화를 이루어 독서 침체기입니다.
투르게네프 [사냥꾼의 수기]는 병행해서 조금씩 읽고 있으나 이 책도 와장창 진도를 빼며 달리게 되지는 않습니다. 화자가 사냥을 다니며 만난 사람과 일화들의 연작인데 읽는 재미는 있습니다. 자연 묘사가 자주 나올 수밖에 없으나 서술자가 동참을 바라는 정도, 이입에 필요한 정도이며 이 책의 자연 묘사는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이 책을 시작하고 저는 이문구 작가의 [우리 동네]가 떠올랐습니다. 20대 초반에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작가 님도 좋아하게 되었던 책입니다. 돌아가신지 20년 정도 되었네요. 제가 좋아하던 작가들이 거의 돌아가신 거 같아 이럴 때 강하게 세월 흐름을 느낍니다.
3월이 가기 전에 또 책을 샀습니다. 책이 안 읽힐 때는(잘 읽힐 때도...ㅋ) 책지름을 해야죠.
먼저 [에세]입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글을 통해 보관했다가 책 표지도 봄과 어울리고(?) 그래서 이번에 샀습니다. 민음사 책인데 받아 보니 안팎으로 참 잘 만든 책입니다. 비싼 값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민화, 최권행 두 분의 불문학자가 10년의 번역과 5년의 검수를 거쳐 15년만에 결실을 맺은 책이라고...감사합니다.
차례가 끝나면 한 페이지가 채 안 되는 '독자에게'가 나옵니다. 아래에 처음 몇 문장을 옮겨 봅니다.
'독자여, 여기 이 책은 진솔하게 쓴 것이다. 처음부터 내 집안에만 관련된 사적인 목적 이외에 다른 어떤 목적도 없었음을 밝혀 둔다. 그대를 위해서나 내 영광을 위해서 쓰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역량은 그런 계획을 세울 만하지 못하다.'
다음은 '독자에게'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러니 독자여, 나 자신이 내 책의 재료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경박하고 헛된 주제에 그대의 한가한 시간을 쓰는 것은 당치않다.
그럼 안녕, 몽테뉴로부터, 1580년 3월 1일 '
......두근두근하였습니다. 1580년의 몽테뉴가 저에게 다정하고 겸손하게 충고(경고)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으나 잘 샀다고 흐뭇해 하고 있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 [초대받은 여자]
보부아르의 글을 책으로 제대로 읽은 적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제2의 성]이었나를 빌렸다가 어려워 그냥 반납한 기억은 있네요. 다른 사람이 쓴 보부아르에 대한 조각 글만 읽은 것 같고 소문으로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이라 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다는 글도 보아서, 이번에 민음사에서 새로 나온 김에 읽어 보려고요. 1908년 생인 작가가 교사 일을 그만두고 1943년에 본격 작가로서 처음 낸 책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의 두 역사가 필리프 아리에스, 조르주 뒤비의 기획으로 나온 총 5권으로 된 [사생활의 역사] 중 마지막 권을 샀습니다. 현지에서는 1985-1987년 사이에 나왔고 우리는 2002년부터 2006년에 걸쳐 다섯 권이 나왔습니다. 출판사는 새물결, 역자는 김기림. 현재 1~4권은 품절인데 재고가 있었어도 저는 5권만 샀을 것 같습니다. 5권도 곧 품절이지 않을까 해서 바로 샀네요. 이 책은 1월 달에 사서 지금 읽고 있는 부르디외와의 대담을 정리한 얇은 책 [사회학자와 역사학자]에 대담을 나눈 샤르티에라는 역사가가 대중적이며(많이 팔렸다고 하니) '훌륭한 기획'으로 소개 하길래 찾아 보았고 우리도 번역이 되어 있어서 산 것입니다. 5권은 제1차세계대전부터 현재(80년대)까지의 '사생활의 역사'입니다. 이 책은 신간이 아니라 배송 시간이 좀 걸리네요. 내일이나 화요일에 도착할 거라 실물 책을 보진 못했는데 미리보기에 소개된 정도로 첨부 사진들이 선명하기를 기대합니다.
[사회학자와 역사학자]는 어째서 쉽게 생각했는지. 시간공간의 당대성과 그 분야들에 대한 저의 무지를 생각했을 때 쉬울 리가 없는데 말이죠. 지금 생각하니 예측 못한 어리석음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두께가 얇아 막연하게나마 헛다리를 짚어가며 내맘대로 추측해가며 때로 글자만 읽어가며 마치려고요. 새로운 책을 소개 받은 것만도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울 것이라고 피하다가는 평생 내 방에 갇혀 살겠죠...
2024.03.31 13:08
2024.03.31 13:17
아니 왜 그렇게 적조하셨나요. 바쁘셨는지.
이 정부들어 작은 도서관들 지원이 줄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회사에서 계획한다니 참 좋은 회사인가 봐요.
다들 칭송하는 제인 오스틴이지만 요즘 읽기엔 구멍이 너무 많아 보이긴 합니다. 저는 그냥 밀당과 멜로의 원조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2024.03.31 20:28
감사합니다. 잘읽었어요. 제가 다니던 대학에는 도서관에 문학 잡지가 많이 들어왔어요. 외국어로 된것도요. 도서관 내 휴게실 '소파'에서 읽었어요.
그때 읽은 이문구 선생님 대목이 기억나요. 문학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면서 다음날 아침 무슨 무슨 시위에서 만나기로 했데요. 그런네 나오는건 언제나 선생님 혼자셨데요.
저는 이 대목만 기억나요.
아버지가 좌익이어서 문단에 등단못할걸 은사인 김동리 선생님게서 보증을 하셨다고 해요. 이문구 선생님 글은 교과서에도 실리고 수능 문제에도 나온데요 :)
본인의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도 집필하셨고요. 예순이면 너무 일찍 돌아가셨네요.
2024.03.31 22:14
저도 도서관에 공부한다고 가서 정기간행물실에서 잡지만 종일 보던 게 생각나네요.ㅎㅎ
이문구 작가는 본인의 소설처럼 인품이 넉넉하셨다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큰형님 같은 느낌으로요.
2024.03.31 22:43
"어려울 것이라고 피하다가는 평생 내 방에 갇혀 살겠죠..."
끄악 잘 읽다가 갑자기 헤드샷을... ㅋㅋㅋㅋㅋ 정말 맨날 영화만 보지 말고 책도 좀 읽으며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참에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소심하게 검색해 봅니다. 근데 과연 이걸 사면 언제 읽을 것인가... 하하하;
2024.04.01 12:01
저는 책 시작하기 싫을 때 일단 50페이지까지만 읽어 보자고 자신을 살살 달랩니다. 안 통할 때도 많지만 다른 할 줄 아는 것도 취미도 계발해 놓지 못해서 헤드샷까진 아니지만 이거라도 붙잡아야 한다라고 (마음으로)머리에 주먹을 날리곤 합니다. ㅠㅠ
2024.04.01 09:41
10년의 번역과 5년의 감수... 2009년에 번역을 시작하고, 2019년에 감수를 시작. 어마어마한 세월의 책이군요. 책 등 색상을 보니 확실히 봄과 어울립니다 ㅋㅋ.
사생활의 역사는 1권과 2권 조금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상당히 두꺼웠던 것 같은데, 뒤에서부터 읽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2024.04.01 12:08
두 분 다 불문학 전공자인데 한 분은 그 중에서도 몽테뉴로 학위를 받으셨으니 자기 공부이기도 하지만 독자들이 감사를 하게 되는 결과인 거 같아요.
사생활의 역사는 지금 보니 1000페이지가 좀 넘네요. 5권만 이러니 시리즈를 꽂아두면 굉장하겠습니다. 경험상 근대, 중세 등등으로 가면 잘 안 읽게 되더라고요.
2024.04.01 09:57
오!! 보부아르의 책 재미있어 보여요.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있어서 바로 읽지는 못하겠지만 나중에 꼭 읽어보고 싶군요
2024.04.01 12:09
저도 얼른 읽고 싶습니다만 다른 책이 째려 보고 있네요.ㅎㅎ
2024.04.01 17:34
엇... 책 표지의 보부아르가 딴 곳을 보는 사이에... ㅎㅎㅎ
2024.04.01 21:08
표지 소녀 그림 좋죠? 카를 호퍼, '아마릴리스와 함께 있는 소녀'(1936)라네요.
2024.04.01 18:58
저도 보부아르의 책은 한번 읽어보려했다가 바로 포기한 기억이.. 고딩때였어요. 역시 똑똑한 여자는 하는 얘기가 다르구나 자괴감을 느꼈던 기억이..
저는 오히려 사르트르와의 연애 얘기를 풀어놓은, 책 소개하는 앞 몇 페이지를 제일 흥미롭게 읽었다죠. 사르트르 완전 못생겼던데 그런 그를 사랑했다니 역시 똑똑한 여자는 다르구나
잘생긴 남자들만 좋아했던 사춘기 소녀는 또 좌절. 아니 머리좋은 못생긴 남자를 좋아해야 똑똑한 여자가 되는거야 주먹 불끈했다죠.
2024.04.01 21:04
보부아르의 두뇌와 외모로 사르트르를 동반자 삼았다면 사르트르의 두뇌가 아무튼 어마어마했다고 쳐야 이해가 가죠...
저도 외모 보다 머리이긴 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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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주신 책 중에 어쩜 읽은 게 하나도 없나요.
그저 두껍다는 이유로 집어들었던 '맨스필드 파크' 를 끝내고 뭔가 좀 취향에 맞는 걸 읽고 싶어지기도 했고요. 이 소설은 영 재미가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