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28 12:45
http://www.djuna.kr/xe/6551705 이 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조회수도 높았고 댓글도 많이 달렸던 글이라 혹시나 아직까지 저 고민의 결말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으실까 해서 적어봅니다.
(전 평소에 고민 글 같은 거 읽고 나면 항상 뒷이야기가 궁금했거든요)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대가 교차지원 정책을 철회했고(이 우유부단한 놈들 쪽팔리지도 않나!),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이과 공부를 과탐부터 수2(요즘엔 이렇게 안 부르려나요)까지
완전히 새로 해서 수능을 다시 치고, 수의대 갈 성적을 받을 자신이 없어서 관뒀습니다.
듀게에 글 올리고 얼마 후에 같이 일했던 공중방역수의사(이하 공수의)한테 저녁 한끼 사면서 이것저것 물어봤고,
서점 가서 수학교재도 한번 훑어보고, 절대값 기호를 보고 "으엉 이게 뭐예요???" 이런 바보짓도 했습니다.
(절대값이라고 답을 들으니까 개념은 기억이 나던데 기호는 진짜 처음 보는 기분이었어요)
공수의 분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시기래 진짜 수학바보라서
부산대 게시판에 '절대값도 모르는 직장인 수학과외 해주실 분 구합니다'라고 공고라도 올려야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그럼 자기가 한달쯤 수학을 가르쳐주겠다셨어요.(그냥 동료직원이었지 개인적 친분이 있던 건 아니라서 좀 놀랐습니다)
일단 한달 해보고 계속 할 거면 그때 사람을 구해서 과외를 받든 학원을 다니든 하라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주에 고등학교 1학년 수학 문제집을 사들고 집합과 명제부터 과외를 시작했습니다.
유리수니 무리수니 실수니 허수니 즈음부터는 '아니 도대체 음수의 제곱근 이딴 건 어디다 쓰려고 만드는 거야 엉엉' 이렇게 됐고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책상에 앉았는데 문제가 안 풀리니까 딴짓을 하고, 시간은 늦어지고, 12시 넘어서까지 문제 풀었는데
막 1/3씩 틀리고 이러니까 억울하고 분하기까지 하더군요. 이게 뭔데 이렇게 나한테 스트레스를 주나 이런 심정요.
'아 나도 참 단순한 인간이구나. 한 10년 안봤다고 이 증오심을 잊다니' 이러면서 문자 그대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습니다.
친구 말마따나 고등학교 때 내가 바보라서 이과 안 간 게 아니구나, 이러니까 문과로 도망갔지 싶었어요.
여튼 일주일에 한번씩 과외를 받고, 네번짼가 다섯번째 수업을 마치면서 공수의분이 다음 수업은 내년에 하겠네요~ 하시길래
"잉? 한달 오픈베타 아니었어요?"라고 물으니 계속 공부할 거면 앞으로도 당분간 가르쳐주시겠다더군요.
그러고 며칠 동안 이 놈의 수학공부를 내가 계속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과연 최대 2등급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을 했는데 친구한테 카톡이 왔습니다. 서울대 교차지원 철회했다고.
이걸로 제 고민은 강제 종료 됐고요. 서울대가 이꼴 나는 걸 봤으니 어느 대학이 감히 교차지원 허용할 생각을 할까요.
당연히 수학과외도 끝났고, 한달여동안 수고하신 공수의분께는 저녁 한끼 사드렸습니다.
과감하게 지금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머리 밀고(완전 쓸데없는 짓이지만 원래 강백호 머리가 로망) 재수학원에라도 등록해서
이과 정시로 수의대에 들어가겠다! 라고 외칠 정도로 포부 넘치는 인간이었으면 좋겠는데 제가 그런 그릇은 못됩니다.
한달 전에 아 끝났구나 했을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글로 쓰고 보니 어쩐지 더 안타까워졌어요.
2014.01.28 12:49
2014.01.28 13:28
그 고민할 때가 좋은 시절이었어요.
2014.01.28 12:49
2014.01.28 13:28
네 이번엔 제 선택으로 포기한 게 아니니까 그나마 미련은 덜 남겠지요.
2014.01.28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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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8 13:27
으악 안 그래도 주변에서 퀴니님 댓글 내용으로 엄청난 설레발을 치고 있습니다. 남자사람 친구한테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랑 겨울 왕국 봤냐고 묻길래 봤다고 대답한 걸로 차단왕 소리까지 듣고요. 그런데 주변의 기대가 무색하게(?) 뒷이야기가 또 있을 것 같진 않아요.
2014.01.28 13:10
2014.01.28 13:24
전 현역(?)일 때도 수학 진짜 싫어하고 못했는데 찍는 문제가 하도 많아서 시간이 모자란 적이 없었어요. 실제 수능에서도 수리영역 틀린 게 언어+외국어+사탐 3과목 다 합친 거의 두배였어요. 진짜 이놈의 수학...
2014.01.28 13:29
저는 이과 체질이라 그런지 수학이 그렇게 괴롭진 않았는데ㅎㅎ
저도 다시 대학가서 공부하고 싶어요ㅠㅠ
2014.01.28 13:35
전 이번에 새로 하면서 피타고라스에게 살해충동을 느꼈습니다.
2014.01.28 13:42
꼭 제가 과학!!!!!! 우주!!!!!!!!!!!! 멋있어!!!!!!!!!!!!! 하고 뿅가서 교양과학책을 한 권 빌린 후의 상황같네요ㅠㅠ 저는 수학보다 과학을 더 증오해서-물리와 지구과학은 도통....흑 제 타입이 아니었어요- 과학을 전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전히 로망으로 남아있기는 해요 ㅎㅎ
2014.01.28 18:42
저도 수학 잘하는 사람 멋있어 보여요. 전남친이랑 터널을 지나가는데 4차선 도로를 2차선씩 분리해서 터널 두개를 뚫은 걸 보고 제가 "왜 하나로 안 뚫고 두개를 만들었지?"라고 궁금해하니까 단번에 "면적이 지름의 제곱으로 증가하니까"라는데 새삼 반했었더라죠. 우왕 멋있어 역시 공대생 이러고.
2014.01.28 13:52
저는 교차지원이 되는지 알아볼 생각도 못해보고 그냥 이과공부를 다시 시작했었는데, 예전에 학교다닐때 증오했던 것만큼은(?) 어렵지 않아서 놀랬던 기억이 납니다. 개념정리 라는 이름을 가진 참고서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학교 다닐때 그토록 괴롭혔던 수학의 정석이나 해법수학 이런 것들 보다는 훨씬 괜찮았습니다. 저만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2014.01.28 18:44
저도 수학의 정석보단(이건 참고서 주제에 하드커버인 것조차 못마땅했음) 개념원리가 더 좋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학창시절보단 훨씬 괜찮으셨다니 부러워요.
2014.01.28 14:09
2014.01.28 18:45
이젠 딱히 가고 싶은 길은 없고 그냥 제 자리에서 퇴직까지 한 35년(아 너무 길어요) 일하지 싶어요.
2014.01.28 14:14
아 너무 이해돼요. 공부말고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머리도 쌩쌩 돌아갈 때 이미 못했고 치워버렸던 걸 어른이 돼서 다시 잘 하기란 넘 어려운 일인 듯요ㅠ.ㅠ 제가 수능국어 가르치는 게 업인데 가끔 애들 수학책 들춰보곤 가슴이 선득해집니동...-_-진짜 중딩 수학문제도 못풀겠어요 이젠. 십년전에 78점이나 받았던 저 자신이 대견스러울 정도;;; 그나마 저 때는 미적분 없었어서 다행ㅠㅠ요즘은 문과도 미적분 해야 한다고...
2014.01.28 18:47
네 저도 미적분 들어온 거 보고 충격 먹었어요. 수학 공부하던 동안 고등학생 때 안되던 게 지금 될 거라고 생각하다니 난 얼마나 순진했나 이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2014.01.28 14:39
2014.01.28 18:49
인수분해는 좀 신기했고 도형쪽 응용 문제는 아주 약간 재밌기도 했어요. 전국 수의대 교차지원만 가능하면 어떻게든 애써보겠는데 제가 앞뒷발 들기도 전에 문이 닫혀버렸습니다.
2014.01.28 15:50
옛날에 저 과외해주던 형이 글씨는 악필인데 숫자는 참 이쁘게 쓰더라고요. 그 형 왈 '수학문제 죽어라 풀면 숫자가 이뻐져' 라고 ...(...)
2014.01.28 18:50
공수의분 숫자 필체가 어땠나... 기억이 안 납니다. 여튼 그 분도 결국 수학은 문제 많이 풀어본 사람이 잘 하는 거라고 그러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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