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6 10:15
디즈니플러스에서 '쇼군'을 다 마쳤습니다.
지난번 글에 이거 보는 중인데 잘 만든 드라마이지만 재미를 못 느끼겠다고 했었지요. 반전은 없었어요.
수준이 확 떨어지는 일도 없었고 갑자기 확 끌리게 되는 변곡점도 없었어요. 이변 없이 끝까지 일관성 있게 수준을 유지하며 마무리하네요.
이 드라마가 왜 기대에 못 미치는지 재미가 부족한지 쪼금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인물들 표현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사극인데도 대규모의 와일드한 전투 장면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전장에서 마주서서 붙을 뻔하다가 말아요.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사극은 아닌 것입니다. 당시 지배계급 인물들 생각이 죽는 게 뭐 대수냐는 식이라 할복하고 머리가 분리되어 굴러가는 장면은 여러 번 나오지만요.
그러니 권력 투쟁에 휘말린 인물들 가지고 드라마를 엮어나가야 하는데 이 인물들의 매력이 부족합니다. 이 인물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는 기대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ㅋ 인물들 각자 나름의 사연을 안고 역할을 다하지만 입체감이 없달까요. 좋은 가문 출신 인물들의 나름의 사연이란 것도 남의 나라 현대 사람이 보기에는 공감이 안 됩니다. 사극이 이래서 어려운 장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쨌든 비극임을 강조하지만 그런가 보다, 할 뿐이고 인물 고유의 생동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립적인 입장에 서는 권력자의 카리스마조차 너무 부족했습니다.
영국인으로서 사무라이가 되는 안진이란 이가 중심 인물 중 하나인데 이 사람이 첫 회에선 특별한 활약을 할 것 같더니 회가 거듭되자 현지인화 되어 갑니다.ㅎ 일본 말 열심히 익히고 일본 여성을 사랑하고 가신이 됩니다. 이방인으로서 제일 역동적일 수 있는 역할이니 재미를 주는 이야기 부분을 만들어 주면 좋았을 텐데 로맨스에 국한된 거 같아요. 그 로맨스도 애틋하게 다가오질 않아서 마무리에서 마음을 움직이진 않더군요.
사나다 히로유키가 나옵니다. '황혼의 사무라이'의 그 가난한 하급 무사가 여기선 최고 권력자로 드라마를 이끄는 중심이 됩니다. '쇼군'에서 배우님 얼굴에 세월이 보였네요. '황혼의 사무라이'로부터 2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으니까요. 이번에도 연기는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생각난 김에 게시판에서 쓴 글을 찾아 봤더니 '황혼의 사무라이' 본 지 3년이 다 되었어요. 생각난 김에 다시 봤습니다. 넷플릭스에 여전히 있네요. 다시 봐도 참 잘 만든 영화이며 재미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재미있는 이유는 위에 적은 재미없는 이유와 같았습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는 다 살짝살짝 기대(일반적 예상)를 벗어나더라고요. 안 보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라 아래는 흰글자 처리했습니다.
( 사무라이 자체가 가난하고 제대로 씻고 단장할 수 없는 팍팍한 일상을 꾸려가는 중이라 몸에서 냄새가 나잖아요. 무슨 사무라이가 이런가 말이죠. 작은 할아버지가 싫다는 딸들 앞에서 자기도 싫다고 합니다. 딸들에게 표리부동의 훈계 같은 걸 하지 않는 시대를 앞서간 아버지입니다. 혼사 얘기도 친구가 제의하자 거절, 다음에는 본인이 큰 맘 먹고 고백하나 이미 늦음. 시종이라 하나요, 하인조차도 살짝 지능이 부족하여 짧은 말을 옮기는 심부름을 하는데도 잘 마칠지 긴장하며 보도록 만들고 말이죠. 명을 받아 나이든 사무라이를 처단하러 가서는 동병상련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요. 돌아와서 다 해결되어 가족이 행복하게 오래오래...인 줄 알았는데 3년 후 전쟁에서 죽음. )
대하드라마와 비교하는 건 여러 가지 무리가 따르지만 이 영화의 대본은 참 영리하게 잘 쓴 거 같아요.
혹시 안 보셨다면 '쇼군' 이야기로 시작했으나 '황혼의 사무라이'를 추천하며 줄입니다.
2024.05.06 10:26
2024.05.06 10:44
그렇군요. 사나다 히로유키가 제작에도 관여했다는데 그래서인지 저 시대 일본 신기하다는 식으로 전개한 건 아니었어요. 이제 이런 것이 안 통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입장이 분명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안진 시각으로만 그려도 오늘날 감수성에 맞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고.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있었습니다.
2024.05.06 20:14
역시나 '내 취향은 아니겠군' 이라는 생각에 상냥하게 쐐기를 박아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이 시리즈는 그냥 존재를 잊겠어요. ㅋㅋ
'황혼의 사무라이' 참 재밌었죠. 솔직히 재생 누르기 전엔 내가 이걸 왜 보려고 하나... 였는데 보고 나니 참 좋은 영화 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장 인물들이 다들 안 그런 척 은근히 귀여워서 좋았고, 엔딩 후 '그 설명'은 짠하고... 그랬습니다.
그러고보니 그 감독님 다른 영화를 찜만 해놓고 수년째 방치중이었네요. 그건 또 언제 보지;
2024.05.06 22:49
'황혼의 사무라이'는 로이배티 님 후기글 보고 저도 따라 본 거 같아요. 이번에 보니 영화가 무게 잡는 거 없이 소소하면서도 아기자기하면서도 편안하고 그러면서도 서민들 고통까지 보여줄 거 다 보여주는 것 같고요. 암튼 전체적으로 무리나 부담감 없는 느낌? 이런 영화가 드물다는 생각을 하면서 잘 봤습니다.
원작 소설, 그리고 채임벌린의 <쇼군>과 비교하면 원래는 이게 철저하게 안진상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합니다. 당대 최고 배우+당시에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일본의 신기한 모습을 섞어 인기를 끌었던 작품인데, 2024년의 쇼군은 때깔은 좋습니다만 그저 매끈하게 그리려다 밋밋하게 끝나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