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4 17:03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분통 터지는 일이 하나 있어 글 하나 올립니다. 원래 다른 곳에 올렸던 글인지라 존대어가 아닌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금 인터넷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는 선동글이 있으니 이른바 '47억 짜리 지도'이다.
http://www.pikicast.com/#!/menu=landing&content_id=140675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국민의 혈세를 47억이나 들여 역사 지도를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독도는 누락시키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는 어처구니 없는 물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글이 소개된 각 사이트의 반응은 매우 험악하다. 동북아역사재단과 역사학자들에 대한 욕설이 난무하고 있으니, 선동치고는 아주 성공적인 선동인 셈이다.
사실 인터넷에 퍼진 해당 글은 이덕일이 최근 출판한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만권당, 2015)의 내용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처음 등장한 것은 피키캐스트인 것 같은데, 작성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단순히 이덕일의 팬일 수도 있겠고, 이덕일이 밑에 부리는 사람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출판사의 홍보 담당자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이런 건 다 접어 두고, 과연 이 내용이 타당한가를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해당 글을 보면 동북아역사재단 및 지도 작성에 관여했다는 역사학자들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을 그대로 믿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국가 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저명한 학자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행동으로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일반 국민들이 봐도 명명백백하고 자명한 것을 과연 동북아역사재단과 학자들이 몰랐을까? 혹시 사실을 전달하는 중간 과정에서 정보의 왜곡이나 과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로 그렇다. 해당 내용은 이덕일이 자행한 사기극이자 낚시질에 불과하다. 이덕일이 과연 어떻게 사기를 치고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시작부터 '47억 원'짜리 역사 지도라는 점을 강조한다. 도대체 지도 그리는데 47억이라는 엄청난 돈이 들어갈 일이 있겠느냐는 문제 제기인 셈이다. 그런데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드는 동북아역사지도는 현재의 지도에다 대충 옛날 지명을 써 넣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천 년에 걸친 모든 역사 지리 정보를 데이터 베이스화해 구축한 후 GIS 프로그램을 이용해 디지털화해 구현하는 방대한 작업이다(김유철, 2010 '동북아역사지도의 편찬 현황과 방법', "문화역사지리" 제22권 제3호 통권42호. 참조).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한 방식이기 때문에 연 단위, 혹은 월 단위까지 역사 지리적 변화가 다 반영된다. 원래 사업 기간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개년이었으나, 3년 정도 연장되어서 지금에 이르렀다. 따라서 사업의 적정 예산이 얼마인가에 대해서 따져볼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돈이 많이 들었다고 뭐라 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 그럼 이렇게 방대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왜 독도를 빼먹었을까. 이덕일의 주장은 이게 의도적이라는 것인데, 그가 뭐라고 하는지 보자.
"동북아역사지도"는 독도를 절대 '실수'로 누락시킨 것이 아니다. 100퍼센트 의도된 것이다. ......이들에게 독도는 일본 시마네 현 소속의 섬이지 대한민국 강역이 아니다.
(이덕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만권당, 2015, 307-308쪽)
100퍼센트 의도된 것이라니,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선, 이덕일이 문제 삼고 있는 동북아역사지도 자체가 완성본이 아니다. 이것은 내부 검토용으로 지명의 위치 비정이나 경계선 등의 타당성을 자문받거나 작업 진행 상황을 보고하기 위한 용도로 수십 장을 임의 출력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 내부 자료를 이덕일이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덕일과 선이 닿아 있는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 누군가이거나 국회의원 누군가가 넘겨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 지도는 GIS 프로그램을 이용해 디지털화한 지도이고, 따라서 원하는만큼 출력 범위를 지정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지도가 사실상 하나의 덩어리로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있고, 종이 출력물을 만들 때는 필요에 따라 위도와 경도 수치를 입력해 구역을 지정하여 출력하는 방식이다. 그 중 하나의 지도가 출력 당시 경도 설정에 실수가 있어 독도 서쪽에서 잘려서 표기되지 않게 된 것일 뿐 데이터베이스 상에는 멀쩡히 존재하고 있으니, 독도를 지웠다는 주장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덕일이 문제 삼은 지도가 바로 다음 지도이다.
이덕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만권당, 2015, 303쪽.
이덕일은 동북아역사지도를 비난하려는 목적으로 자기 책에 이 지도를 실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지도 상에는 지금 한반도 중 경상도와 강원도 일부만 표기되고 있기도 하다. 필요에 따라 임의로 다른 부분을 잘라내고 특정 지역만 나타낸 탓이다. 그렇다면 이 지도는 경상도만 남기고 한반도 서부와 북부를 누락시켜서 우리 영토에서 지워버린 망동으로 보아야 할까. 당연히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실상을 알고 보면 허무한 이야기이지만, 이덕일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이덕일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동북아역사재단과 역사학자들에게 흠집을 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지도뿐 아니라 다른 시대의 지도들을 보아도 모두 독도가 누락되고 지워져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인지 한 번 살펴보자.
이덕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만권당, 2015, 306-307쪽.
위의 지도는 모두 이덕일의 책에 소개된 것을 스캔한 것이다.
만약 동북아 역사지도가 의도성을 가지고 일부러 독도를 누락시킨 것이라면, 당연히 다른 시대의 지도에도 독도가 누락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지도들에는 사실 독도가 멀쩡히 있다. 책에 흐릿하게 인쇄된 그림을 다시 스캔한 것이다보니 해상도가 떨어져 잘 보이지 않지만, 내가 붉은 색 원으로 표시한 부분에 멀쩡하게 독도가 그려져 있다.
놀라운 점은 저렇게 지도상에 확실하게 표시된 것을 보고도 이덕일은 독도가 지워졌고 누락되어 있다고 끝까지 우기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그림 아래 빨간 박스 안의 글을 보라. 이덕일은 독도가 이 지도상에 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독도 부근의 흐릿한 점'이니, 이것은 'GIS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 표기된 것에 불과'하다느니 하면서 얼버무리며 넘어가고 있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물론 이 지도 상에 '독도'라는 지명은 표기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독도가 굉장히 작은 섬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위의 지도 22를 보라. 경상남도 일대의 작은 섬들은 모두 독도와 마찬가지로 섬의 형태만 표시되고 있을 뿐 이름까지 표기되지는 않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동북아역사지도는 데이터베이스화한 정보를 지도 상에 뿌려 주는 방식이라 설정값에 따라 지명이 다른 층위로 표시된다. 예컨데 '레벨 1'은 시군구, '레벨 2'는 읍면동, '레벨 3'은 리 같은 식이다. 이중 레벨 1만 표시하도록 선택하면 지도상에 '시군구' 단위의 지명만 표기되는 방식이다. 독도는 매우 작은 섬이기 때문에 아마도 가장 낮은 레벨 값을 부여받았을 것이고, 이 지도 상에서 설정한 지명 표기 레벨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독도는 상징성이 있는 섬인만큼 레벨 값을 무시하고 모든 축척 지도에 지명이 표기되도록 하자고 제안할 수는 있다. 그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고, 충분히 논의가 가능한 건설적인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덕일의 지적은 그런 수위가 아니다.
이덕일은 위 지도들이 "검은 상자를 만들어 울릉도를 표기해놓고는 독도를 누락시켰다. 우리의 강역이 아니라는 뜻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망상이고 어거지이다. 지도 작성자가 독도를 우리 강역에서 제외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검은 박스 자체를 직사각형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독도 따위 무시하고 그냥 울릉도만 표기하면 되기 때문이다(아래 지도에서 본인이 그려 넣은 빨간 색 네모 박스 참조). 그러나 해당 지도들은 모두 박스를 직사각형으로 좌우로 길게 만들어 놓고 있다. 왜 그랬을까. 박스 안에 동일한 축척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함께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굳이 네모 박스 안에 집어 넣어서 두 섬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지도에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서 우리 강역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독도의 주소지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37"이니만큼,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취급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인식이기도 하다. 이 즈음에서 피키캐스트에 실렸던 글 중 이 부분을 다시 보도록 하자.
보이는가. 독도가 그려져 있는 부분이 잘려져 안 보이게 해놨다. '의도적'이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다. 그야말로 악의적인 편집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밑에 떡하니 박혀 있는 '출처: 도서출판 만권당 제공'. 바로 이덕일의 책을 출판한 회사이다.
이번 해프닝의 결론은 이렇다. 다시 한번 이덕일의 망상과 낚시질에 세상 사람들이 놀아났다는 것이다. 이덕일의 터무니없는 주장과 달리 동북아역사지도에 독도는 있다. 오히려 없는 것은 이덕일의 양심이다.
또 한가지 지적할 점. 8년간 47억 원을 투입해 진행했던 국가 연구 프로젝트가 한 얼치기 사기꾼의 농간에 놀아나며 무산되게 생겼다는 것이다. 이게 다 사기꾼의 말에 사리판단 못하고 놀아나는 무능한 국회의원들 탓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 탓이기도 하다. 이덕일의 해악이 이렇게 크다.
2015.10.04 17:49
2015.10.04 18:03
그동안 이덕일이 문제가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요즘 행보를 보면 그야말로 재앙 수준입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절대악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에요. 평생 동안 임나일본부설을 논파하는
작업을 해온 노학자를 식민사학자에 임나일본부 추종자로 모함하지를 않나, 모자란 국회의원들 옆에 끼고 앉아서 학자들의 연구 성과물을 박살내지를 않나.
사기꾼에게 놀아나는 줄도 모르고 부화뇌동하고 있는 진보 계열 언론이나 인사들도 끔찍합니다. 지금 국회 동북아역사지도 특위에 소속된 국회의원들 보면
새누리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이덕일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더군요. 갑갑합니다.
2015.10.04 18:12
불팬의 글은 단순히 저 피키캐스트의 이미지였는데, 독도에 대한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저도 이게 뭔 소린가 했거든요;; 거기다 새누리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아주 난리가 났던데…동북아역사재단이랑 대체 무슨 웬수를 진건지…참…―,.―
2015.10.04 18:18
그나저나 김현구 교수의 소송건은 어떻게 됐나요? 그 분 저서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별안간 이분이 임나일본부 추종자로 몰리고 있더군요;; 물론 그렇게 나팔 불고 다니는건 이덕일 교수(전통문화대학교)....그래서 격분한 김교수가 이덕일 교수를 고소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2015.10.04 18:30
김현구 교수 건은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김현구 교수가 이덕일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였고, 얼마 전에 첫 공판이 열렸지요. 이덕일은 핍박받는 독립운동가 코스프레를 하며 지지자들을 선동해 세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무려 박찬종.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이덕일이 김현구 교수에게 가한 비판 내용을 보면 비열할 정도로 텍스트를 뒤틀고 왜곡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 같기도 합니다. 일종의 과대망상이지요.
2015.10.04 19:00
음모론만큼 재밌는 것도 없고 대중을 현혹하기에도 정말 '음모론'만한게 없더군요. 이덕일 교수의 책들 팔리는 것 좀 보세요ㅋ 김현구 교수는 대체 이게 뭔 날벼락인지…다리를 문 미친 개가 하필 국내 최고 베스트셀러 역사 소설가라니……―,.―
2015.10.04 23:01
2015.10.04 23:37
그냥 자기 내세우려고 아무거나 걸어서 내용 무시하고 왜곡해서 까는 듯 하더군요. 김현구 교수 저서만 읽어봐도 알 수 있죠.
2015.10.05 01:34
일단은 돈 버는 게 목적이죠. 이슈화되면 책팔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자기 입으로 자랑하는 걸 봐도 수입이 쏠쏠한 모양입니다. 여기에 전통적인 쇼비니스트들과 결합해서 과대망상 수준의 선지자 코스프레 중입니다. 제일 골치 아픈 건 이 사람이 대중적 인기를 발판으로 국회의원이나 고위 관료층과도 결합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 대중사학계의 황우석 내지 괴벨스라 보면 됩니다.
2015.10.04 23:22
문제가 된 김현구 교수의 책입니다. 임나일본부에 대한 최신 연구성과를 잘 반영했더군요. 한국 고대사나 한일고대관계사에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이렇게 전문 학자들이 쓴 책을 대중들이 좀 많이 읽어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없을텐데 말입니다;;
2015.10.05 06:04
2015.10.05 08:07
2015.10.05 08:36
2015.10.0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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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까 오전에 불팬에서 보고 저도 속이 터져서;; 듀게에 퍼올려고 했었는데, 글 쓰신 분께서 직접 가져오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