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6 19:05
'뮌헨 (2005)'을 봤습니다.
2시간 40분 가량의 길이입니다. 재감상인데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몰라도 새로운 느낌으로 봤어요. 암튼 이번에는 왓챠에서 봤습니다.
듀게 분들은 줄거리를 다 아실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문장으로 요약을 하면 197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서 이스라엘 선수들이 팔레스타인 조직에 인질이 되어 끌려가는 와중에 11명이 목숨을 잃게 되고 이스라엘이 그 보복에 나선 작전을 다룬 것입니다. 이 작전은 비공식적인 스파이 활동을 통해 진행됩니다.
이 영화, 가을 감성에 젖고 싶은 용도로도 괜찮다 싶었어요. 70년대 초반의 비내리는 유럽 골목들이 나옵니다. 그 거리들을 배경으로 자켓의 옷깃을 올린 에릭 바나 비롯 스파이들의 비주얼을 즐기실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이 비주얼은 상당히 현실감 있는(투박하거나 왜소한) 외모의 조직원들도 포함되어 저에게는 더 멋지게 느껴졌고요.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중에 분위기상, 장르상 제일 취향에 맞는 영화입니다. 이번에 보면서 (역시나)제멋대로 느낀 점을 조금만 적어 봅니다.
말할 것도 없지만 배우들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다 자기 역할에 맞는, 더이상을 상상할 수 없는 적절한 외모와 연기를 보여 줍니다. 예를 들면 초반에 이스라엘 고위직들이 여럿 나오는데 제가 이스라엘 사람 1명도 현실에서 만난 적이 없으나 참으로 그럴 듯합니다.
아래 사진이 고위직 대책 회의 장면입니다. 저 여자분이 정부 수반으로 나옵니다. 외모, 연기 다 최고!!
작전의 주역인 5인조는 인물 각각에 고유한 신념과 성품이 부여되어 있어서 인격이 느껴집니다. 그야 중심 인물들이니 신경쓰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의 경우 어떤 영화들에서는 흔히 틀에 박힌 대사만 주어져서 관객이 그 인물을 무시하게 되고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실패를 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게 대단해 보입니다. 대사가 주어진 모든 인물이 존중받고 있었어요.
다섯 명의 구성원은 애국자들이지만 물리적인 능력만 보자면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요원들의 우수한 기능을 전시하는 것이 전혀 목적이 아니니까요. 자기 몫의 역할은 할 수 있는 이들이지만 비교적 평범한 인물들이 국가의 부름을 받고 활동을 하며 결국 구체적인 현실의 벽 여기저기에 치이게 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탁상에 앉아 민족이라는 신념에 의해 결정된 것, 그 이념이 현실 속에서 실물을 접하면서 어떻게 부서져 나가는지를 실무자의 눈으로 보게 되는데 한쪽 눈을 감지 않으면 차마 계속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두 눈 다 뜨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모두에게 모두의 사정이 있음을 안배하고 인간적인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서는 가려운 부위를 두꺼운 옷을 입고 긁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 그런 생각도 듭니다. 가려움증이 있는 사람이 손톱을 세워서 피부를 직접 긁어대면 도움이 될 것인가.
저도 이 감독님의 어떤 영화는 보면 현실과 사이에 하나의 막이 있는 듯한 태도가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원만하기만 해서 될 일인가 싶은 겁니다. 이 문장을 적고 보니 본 영화에서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맡은 캐릭터가 가차없고 직선적인 노선인데 영화 내적으로 그리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져 있지 않네요.
다양한 비주얼의 5인조가 회의하는 모습.
보는 동안 영화가 만들어진 시간으로부터 30년 전인 70년대를 흉내내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70년대 영화인 양 자연스럽습니다. 디테일에 그만큼 공을 들인다는 뜻일 겁니다. 이런 점이 감독을 영화 장인이라고 하는 큰 이유 같아요. 에릭 바나 캐릭터가 요리하기를 좋아하는데 정보원과 접선할 거리에서 주방이 세팅된 가게를 들여다 봅니다. 동지가 죽고 사람을 죽이기 위해 찾아다니는 과정에 이 장면이 나와요. 세심한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이 그 장면입니다.
스파이 영화 좋아하시거나 70년대 배경 영화, 에릭 바나의 외모, 길고 유려하면서 재미있는 영화, 이 중 해당되면 보시면 좋겠습니다.
2022.09.16 19:15
2022.09.16 19:29
그렇죠..폭력에 대한 영화적 대답 아닌가 싶어요. 엔딩으로 그걸 확실하게 하고.
2022.09.16 19:50
'쉰들러의 리스트'는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이 영화는 좋아합니다. 거의 도덕책 수준으로 건전하고 균형 잡힌 교훈을 전달하면서도 근사한 스파이물이고 꽤 감동적인 드라마이기도 하죠. 영화 말미에 슬쩍 배경으로 쌍둥이 빌딩을 비춰주는 장면도 인상 깊었구요.
좋아하는 영화가 워낙 많아서 최고는 못 꼽겠구요.
이런 리스트에 거의 들지 못하는 '워호스'를 극장에서 혼자 보며 울컥 눈물 글썽했더라는 고백에
전 '사랑과 영혼'보다 이 영화가 35배쯤 좋았다는 고백을 곁들여 봅니다. ㅋㅋ
2022.09.16 20:20
<죠스>나 <1941>을 보면서도 코를 훌쩍이는 판입니다...
2022.09.17 00:21
그 정도면 '미지와의 조우' 보실 때는 오열로 인한 실신이 우려됩니다. ㅋㅋㅋ
2022.09.16 20:54
'워호스'는 슬플 것 같아 피한 영화입니다. '영혼은 그대 곁에'는 tv에서 오래 전에 봤는데 가물가물합니다. 다시 봐야 할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스필버그 영화 중에 '워호스, 레디 플레이어 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아직 안 봤네요.
2022.09.17 00:21
셋 중에서 하나 고르자면 아무래도 '워호스' 같습니다. 사실 제가 안 좋아하는 류의 이야기인 걸 스필버그 이름 믿고 봤는데요. 당연히 후회는 없었습니다! ㅋㅋㅋ
2022.09.16 22:28
2022.09.17 00:22
사실 올웨이즈는 제가 사춘기 때 본 영화라 지금 보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ㅋㅋ 하지만 워 호스는 분명히 볼만한,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네요.
2022.09.16 21:14
뮌헨은 당시에도 아주 재밌게 본 영화네요. 근데 영화의 밀도가 높다고 해야 하나.. 다시 보게 되지는 않더라구요. 다시 보게 되는 건 A.I 볼 때마다 눈물바다.. ㅠㅠ
2022.09.16 21:22
저는 에이아이가 슬퍼서 잘 안 보게 되는 거 같습니다. 뮌헨은 사실 길이도 길고 내용도 가볍진 않은데 이번에 보고 나니 이제 중간에 마음에 드는 부분만 찔끔찔끔 틀어도 될 거 같다 싶습니다. 그냥 복식과 배경 구경할 용도로요.
2022.09.17 11:52
A.I 그 엄마랑 떨어지는 장면이 너무 보기 힘들어서 다시 볼 때는 그만 스킵해버렸어요.
저도 어쩐지 뮌헨은 다시 본 적이 없네요. 마나 넉넉할 때 각잡고 한번 재감상해야겠어요.
2022.09.16 21:17
2022.09.16 21:26
배우 이름이 린 코언이네요. 정말 잘 하더라고요. 그 가족적 분위기가 사람 잡는 것이죠.
2022.09.16 23:27
저도 간만에 이 영화 다시 보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에릭 바나와 마티유 카소비츠가 연기한 폭탄 제조하는 캐릭터가 좋았습니다. 맡은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믿었던 정의가 흔들리는 걸 느끼고 회의하는... 그에 비해 다니엘 크레이그 캐릭터는 말씀대로 너무 강성이고 마초적이라 매력이 떨어졌죠. 한쪽 입장에서 내용을 그리면서도 비교적 균형이 잘 잡힌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인데, 요즘 잔잔한 라디오 프로그램 서두 칼럼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허지웅씨가 이 작품과 [우주전쟁]에 대해서 엄청나게 험악한 칼럼을 쓴 적이 있었죠.ㅋㅋ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쓴 글이었는데 정작 영화를 보고 나서는 감상이 바뀌었는지 궁금했었습니다. 아마 지금은 창피해서 흑역사 취급하고 있을 듯.
"스필버그의 이미 확정된 차기작들을 보면 한숨은 깊어진다. 팔레스타인 게릴라 단체인 검은 9월단 8명이 선수촌을 침입,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습격했던 사건 - 뮌헨 올림픽 테러를 영화화하려는 것이다. 그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알 수 없으나, 이스라엘과 미국의 더러운 자본과 군사력에 처참히 찢어발겨진 팔레스타인들의 상황과 이들의 테러에 대한 최소한의 변명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이 세상이 어디로 굴러가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정의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 자본의 흐름과 논리에 함몰되어 흘러가고 아무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스필버그를 고발한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226277
2022.09.17 01:12
어이쿠 제가 다 민망하네요. 역시 설레발은....
2022.09.17 09:37
마티유 카소비츠 연기도, 역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완구업자가 어쩌다 익힌 기술로 폭탄 전문가가 되어야 했고... 마지막 제조 연습하던 날 방에 섬세한 철제 장난감들이 진열되어 있던 것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작은 한쪽 입장에서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다른 측면들 보게 하고 자신이 역할하는 폭력의 한 고리를 끊는 식의 선택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보다 영화 자체가 복합적으로 주는 즐거움이 컸어요.
2022.09.18 10:24
2022.09.16 23:48
Munich 다시 보고 싶네요, 추천과 평 감사합니다.
슈거랜드 익스프레스 (1974) 보셨는지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스필버그 영화지만, 전 참 즐겁게 봤습니다.
2022.09.17 01:34
2022.09.17 02:12
골디혼 맞습니다. 즐겁게 보세요~
2022.09.17 09:39
이 영화도 못 본 것이네요. 못 본 영화가 찾아 보니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기억해 놨다가 꼭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