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5 10:17
이번 설 연휴 전에 조카의 방문이 좀 부담이 된다고 글을 하나 썼었죠. 제 동생 부부와 조카가 함께 방문했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조카는 저나 부모님 눈치를 보면서도 방방거리기 시작했는데 별 거 아닌거 같으면서도 맞장구를 쳐주느라 에너지가 다 빨렸습니다. 친정과 시댁이 모두 같은 도시에 있어서 동생 가족이 왔다갔다 했는데 이번에는 그 틈이 생기면 저희 아버지도 한숨을 몰아내쉬더라구요. 모든 생활패턴이 조카에게 맞춰지기 때문에 집의 주인인 아버지는 그게 별로 편하지 않을 수 밖에요. 어머니는 그저 손자 귀여워하는 마음이 큽니다만.
이를테면, 제 동생은 조카 앞에서 절대 동영상을 켜지 못하게 합니다. 티비를 틀지 않는 건 당연하고 핸드폰 동영상 시청도 안됩니다. 한 네다섯살까지는 이런 디지털 영상을 접하지 않게끔 할 거라고 하는데 저는 그 정책(?)에 아주 대찬성입니다. 어른들도 정신못차리고 숏폼 및 10분 단위의 영상에 정신못차리고 중독되는데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저는 이런 부분에 큰 불편이 없는데 아버지는 조금 갑갑해하시죠. 밥먹으면서 뉴스도 보고 싶고 재미없는 외화도 멍하니 보고 싶은데 그걸 못하시니까요. 그러니까 조카와 시간을 보내면 조카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며 계속 교류를 하는 것인데 이게 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긴 시간을 지속하면서 하기엔 쉽지 않죠. 그러니 기쁨보다도 노동이 훨씬 크게 됩니다.
거기에 제 동생의 태도가 조금 꺼끌거린다고 느꼈습니다. 제 동생은 타인에게 어떤 요구를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믿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생이 가게 주인에게 아이스크림 값을 흥정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소상공인들 남겨먹는 거 없으니 그렇게 부담주지 말라고 해서 한번 다툰 적이 있거든요. 이런 태도가 본인 자식의 양육과 결부되고 그 사람들이 가족이면 더 당연하게 요구를 합니다. 이를테면 조카는 계란 알러지가 있으니 음식을 조리할 때 조심해야하는데, 동생이 그걸 엄마에게 시험관처럼 캐묻고 야단치는 형식의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죠. 세대차이가 있다보니 어머니는 알러지에 덜 민감할 수 밖에 없고 원래도 막 그렇게 칼같이 딱딱 구분하는 성격도 아닙니다. 그러니 동생이 엄마를 약간 '부리는' 식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이런 건 저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조카가 저를 보고 혼자 울면서 땡깡부리길래 제가 방에 들어가자 제가 조카에게 사과를 하고 풀어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시간이 좀 흐르고 조카랑 또 같이 방방거리면서도 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의 조카가 집에 온다는 건 결국 온 가족이 육아의 책임을 나눠야한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명절 연휴 때에는 좀 편히 쉬고 싶습니다ㅎㅎ 조카를 귀여워할 수는 있지만 이런 저런 일들에 적극적인 책임까지 질 준비는 아직 되어있지 않습니다. 차라리 어딜 데리고 놀러가면 모르겠는데 생활 패턴 자체를 조카에게 맞춰야 한다는 게 좀 번거롭긴 하더군요. 나중에 조금 더 커서 제가 맡아줄 상황이 되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아이를 이뻐하는 마음을 사촌동생에게 다 써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카가 귀엽긴 해도 큰 책임이나 애착이 아직까지 생기진 않군요. 이것도 시간 지나면서 생각해볼 일이지만 '첫 애기친척'이란 정이 또 따로 있는 건 아닌가 혼자 의심해봅니다. 그냥 제가 아이들을 안좋아하게 된 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인정하고 싶지 않군요 ㅠ
@ 그래도 조카가 귀여운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배를 먹으면서 강아지 인형에게 "이거 정말 맛있어~"라고 말하는 건 촬영을 못해서 아쉬웠네요.
2024.02.15 11:04
2024.02.15 12:05
2024.02.15 12:13
밑에서 두 번째 문장 '첫 얘기친척'은 '애기'겠죠? 그런 게 있는 거 같았어요. 제 주변을 봐도 집에 처음 태어난 손이나 조카에 대해 좀 각별하더라고요. 너무 각별해서 진을 뺐는지 다음부터는 점점 덜해지는.ㅎㅎ
아기 사진 넘 예쁘고 좋습니다. 원래 아기는 자고 있으면 최고 귀엽고 아쉽고, 깨서 돌아다니면 좀 버겁고 그런 거 같아요.
2024.02.15 13:10
앗!! 수정했습니다 ㅎㅎ
사촌동생은 저를 좋아해서 더 꺄르르 논 것도 있어서 그런지... 조카는 아직 그만치 못어울려요 ㅋㅋ 제가 무서운 척 하면 꺄르르 하면서 숨긴 하는데 ㅋㅋ
말씀대로 아기는 자고 있을 때 제일 귀여운 것 같아요 걸어다니기 시작하면 정말 아웃 오브 컨트롤입니다
2024.02.15 16:44
미묘한 부분을 짚어주셨네요. 아주 미묘하지만 정확한 묘사입니다. 주양육자와 주변인들과 묘하게 대립되는 정서가 있어요. 그건 주양육자 사이에도 일어나는 일이구요.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미디어를 배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대립되는 정서가 어떻게 융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오만잡다한 것을 예민하게 다 느끼니까요.
2024.02.15 18:25
2024.02.15 20:32
2024.02.15 22:43
저는 제 조카에게 툰드라 아이처럼 알아서 척척척하라고 할 순 없지만...ㅎㅎ 그럼에도 양육이라는 게 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매우 피곤하다는 걸 느끼고 말았네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그 말씀을 예전에는 끄덕이는 수준이었는데 이제 어떤 각오를 하게 됩니다. 쉽지 않겠구나~ 하는...
2024.02.15 21:21
저희는 3세대(그러니까 제 입장에서는 조카)가 이제 세 명으로 늘었는데 귀엽지만 피곤한 그 심정은 정말 이해합니다 ㅋㅋㅋㅋ 저희 아버지도 이번 명절에 보니 손주들이 방문해서 만날 때 한번 즐겁고 시간을 보낸 뒤에 손주들이 돌아가니 아이고 편코 좋다 하고 한번 더 즐거워하시더라고요(어찌됐든 즐거워 하시니 좋은 일이긴 합니다만) 조카 1호와 2호는 주양육자가 못 하게 하는 게 워낙 많은데 나머지 가족들은 거기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니 귀여움과 별개로 번거롭긴 합니다 조카 3호는 그보다는 좀 느슨하게 키우는 듯 한데 아직 아기라 또 번거롭고요 ㅋㅋㅋ 그래도 아직 이모 고모 삼촌 하고 엉길 때가 좋은 거 아닐까요 다 커서 만날 일도 없고 딱히 통하는 점도 없어서 차츰 멀어지는 경우도 저와 저의 손위로 3촌지간을 생각해보면 너무 흔하기도 하니까요
2024.02.15 22:46
이게 손자를 둔 할머니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더 그럴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은 이미 자신들의 자식을 키워낸 분들이잖아요. 그런데 한 세대를 건너뛴 존재에게 또 양육이라는 수고를 반복해야하니 조금 더 진력이 날만하겠지요. 해삼너구리님의 아버님 반응이 아마 제 아버지 반응과 그리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ㅋ
그래도 말씀주신 것처럼 뿌 하면 꺄갹 하는 어릴 때가 삼촌에게도 더 좋긴 하겠지요?
하게 되는 말의 대부분이 "하지 마" "위험해" "조심해" "건드리지 마" 뭐 이렇더라고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