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1 23:52
오늘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단백질을 섭취하고 싶어서 생선구이를 먹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가기 전부터 걱정이 되더군요. 전에 한 번 가보았던 곳이라 음식이 어느 정도 양으로 나오는지 알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여기는 반찬들이 꽤 맛있습니다. 안그래도 반찬 남기는 걸 싫어하는 저에게는 정말 낭비없이 먹을 수 없는 곳인데, 그만큼 과식을 하게 됩니다. 두부조림도 맛있고 미역국이나 나물도 맛있어요. 그리고 솥밥으로 밥이 나와서 뭔가 두번 먹는 기분마저 듭니다. 한번은 맨밥으로 먹고 그러다가 또 불려놓은 누룽지를 먹고...
밥을 다 먹으면 배가 너무 부를 것 같아서 아예 예전에 반찬가게에서 샀던 죽이 담겨있는 둥근 플라스틱 통을 싸갔습니다. 거기에다가 밥을 따로 챙겨놓고 고등어구이만 먹는데 어이구... 제가 위가 줄은 건지 어쩐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배부르더군요. 밥까지 다 먹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게 실감이 났습니다. 그날 다른 자리에도 손님들이 많았는데 다들 밑반찬이나 생선구이를 남겼더군요. 이게 단순히 개인의 식욕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선을 다 먹은 사람들은 덩치가 좀 있던 20대 남자 대여섯명의 테이블뿐이었고 나머지는 정말 생선들을 먹다가 다 1/3 쯤은 남겼어요. 이 식당이 1인분을 넘어서는 양으로 팔고 있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꼭 이 식당만의 문제도 아니겠지만요.
한국인의 밥상이란 걸 생각해보게 됩니다. 쌀밥을 주식으로 해서 여러가지 밑반찬과 주 반찬을 하나 두고 먹는데, 이게 과연 1인 정량인지 좀 의문이 들더군요. 일단 밥그릇 하나를 꽉 채우는 쌀밥이 과연 1인이 다 소화가능한 양인지 좀 의구심이 생깁니다. 제가 덩치가 작지 않은데 쌀밥 하나를 먹을 때 항상 부대끼더군요. 소화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걸수도 있겠지만, 다수의 표준적인 양이 정말 이 한그릇인지 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도 밥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 거기다가 밑반찬들로 미니부침개나 옛날 소세지같은 게 나오면 그것도 생각보다 꽤나 배가 차는 음식들이고... 생선양도 1인분이라기엔 뭔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두명이서 딱 반마리씩 나눠먹으면 좋을 양같더군요.
이런 식으로 먹으면 살이 안찔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체형이나 외적인 미의 기준이야 알아서들 할 일이지만, 과식을 해서 배가 더부룩해지고 하루의 컨디션이 헝클어지는 건 누구라도 싫은 일일테니까요. 거디가가 과식으로 위가 늘어나고 또 염분이 적지 않은 음식들을 섭취하면서 몸이 붓는 건 건강의 문제이기도 할테니까요. 전반적으로 이 백반 식당이라는 것들이 다 과식을 권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스뎅그릇을 채우는 밥의 양이 표준으로 정해져있다보니 전국민이 다 과식을 해야하는 느낌?
거기다가 음식 쓰레기도 생각을 안할 수가 없더군요. 모두가 기본적으로 밑반찬을 남깁니다. 저는 김치류를 안먹어서 그런 음식들은 아예 안내오게끔 하거나 다시 가져가시면 된다고 하는데, 이게 일일이 신경을 안쓰면 자연스레 먹고 남기고 버리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음식점에서 반찬 재활용 문제들이 꽤나 대두가 되는데 전 이게 음식점 사장의 양심 문제도 있겠지만 엄연히 식재료에 포함되는 밑반찬을 너무 당연하게 소비하는 한국식 식단의 문제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먹고 버리는 걸로 소비자들은 너무 당연하게들 생각하지만 파는 입장에서는 그걸 버리자니 또 아까운 느낌? '손님이 먹고 남은 음식은 당연히 버려야한다'는 이 전제에서 소비자의 책임은 아예 생략된 느낌입니다. 음식을 먹고 남겨서 버리면 되는 문제일지요. 애초에 자기 정량만큼만 딱 먹고 안남겨야하는 손님의 책임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구요.
이래저래 한국식 식단이 건강으로나 환경의 측면에서 좀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가지 반찬을 동시에 먹을 수 있는 것은 좋지만 그 자체가 뭔가 요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식단 같은 느낌이랄까요. 반찬도 나중에는 따로 추가값을 받고, 또 버리지 않게끔 음식쓰레기 비용도 따로 받아야 환경문제같은 것도 좀 해결되면서 과식의 문제도 해결하게 되지 않을련지...
2023.03.12 00:09
2023.03.12 21:04
그게 자본주의가 환경문제와 맞닥트리는 딜레마인 것 같아요. 조금 팔면 조금 판다고 인심이 짜다는 이야기가 나올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을 자본주의에 맡기는 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소비자 역시도 반찬재활용이라든가 저품질 고용량의 식품 같은 걸로 그 업보를 당하게 될 것 같고...
저도 자율배식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또 인건비 때문에 서빙하는 것보다는 알아서 챙겨먹게끔 하는 데도 많더군요
2023.03.12 00:34
나물반찬을 만들어본 1인으로 반찬 여러개 차려놓는 백반세트가 상당히 맘에 안들어요. 아니 이 나물 금방 무쳐 먹으면 얼마나 맛있고 손질해서 데치고 무치기까지 정성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주인공이 될수 있는 나물을 엑스트라급으로 격하시키다닛
그런 문제도 있을겁니다. 50원어치 팔아서 20원 남기는것 보다 100원어치 팔아서 30원 남기는게 낫지요. 그게 무서운 자본주의라는것
2023.03.12 21:06
그러니까요. 저도 예전에 나물반찬을 몇번 만들어본 적이 있는데 만드는 정성에 비해서 너무 헐값에 팔려나가거나 사람들이 남겨도 당연한 찬거리로 취급당하는 걸 보면 안타깝습니다.
2023.03.12 01:00
그런 식당은 점차 사라질거같아요
신도시로 이사 온지 4~5년 됐는데
다양한 반찬을 손수 조리해서 내주는 그런 백반집은 아예 없더라구요
한식 파는 식당은 있는데
나오는 반찬은 김치, 깍두기, 양파절임, 이 정도고 이런 반찬도 셀프로 갖다 먹는데도 많구요
가끔 서울 가거나 여행 다니다보면 재래시장 근처에 있는 식당이나 요즘 유행하는 노포집처럼 개업한지 오래된 식당같은데서는
그 날 그 날 장봐서 나물도 손수 무치고 제철 음식 나오면 그걸로 반찬 만들어주는 식당도 있긴한데
이런 식당들이 얼마나 더 유지될까 싶습니다
수십년간 찬반 논란에 휩싸였던 보신탕집이 사라지고 있듯이
이런 식당들도 서서히 사라질거같아요
20층짜리 신축 오피스텔 건물 1층에 백반집이 들어오진 않을테니..
개인저으로는 좀 아쉽긴 하지만
식당에서 손수 메주 띄워서 담근 된장 안쓰고
시판 된장 사서 쓴다고 욕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금방 적응하겠죠 ㅎㅎ
2023.03.12 21:37
저도 그런 흐름을 느낍니다. 이제 가성비 때문에라도 이런 식당들은 더 이상 유지를 할 수가 없겠더군요. 그 때 되면 사람들은 또 자기기만처럼 옛날이 좋았지~ 하면서 추억에 젖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고향 쪽에서는 아직도 한상 푸짐하게 차려주는데 그 가짓수도 엄청난데다가 양도 많아서 먹다가 질릴 지경이더군요. 가족들이랑 같이 갔는데 다들 걱정만 했어요. 이렇게 해서 장사는 되는지, 이렇게 나온 음식들을 다 못먹을 땐 그게 어디로 가는지...
2023.03.12 01:11
1인 정량 의문은 저도 평소에 항상 가지던 거라서 반갑(?)네요. ㅋㅋㅋ 전 독립한 후로는 항상 밥 한그릇에 메인요리 하나, 샐러드, 밑반찬 1~2개 정도로만 간단하게 차려먹는데도 배가 꽉차더군요. 물론 제가 양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긴 한데 일반적인 한식이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너무 많고 양이 상당한 건 맞아요. 국이나 찌개도 꼭 곁들이고
2023.03.12 21:38
먹는 사람도 과식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한식의 정량이나 메뉴 가짓수가 좀 줄어야 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을... 이것도 일종의 오마카세가 아닐지요 ㅋㅋ
2023.03.12 13:53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108 이 글이 생각나는군요. 솔직히 노포 백반집은 대부분 노인 착취형 식당이라서요. 물론 저야 손님 입장에서 아주 좋아합니다만 박찬일 말대로 미구에 사라져 유물이 될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 지금 현장에 계신 60대 70대 분들이 이제 은퇴하시면, 십년, 길어야 십오년. 그래서 아직 있는 사이에는 부지런히 다닙니다.
그리고 저는 반찬 위주로 먹는 사람이라 밥을 2/3공기쯤 먹고 나머지 반찬 중에 너무 짜고 매운 종류 제외하면 나머지는 충분히 다 먹겠던데요. 물론 저 글에 나오는 수준으로 상다리가 부러지는 그런 차림은 버겁지만, 보통 서울 시내의 백반집 반찬 수준이라면야. 나물 종류는 한두젓가락 집으면 끝이라 맛있는 건 가끔 리필도 하는데요. 흠 제가 많이 먹는 걸까요.
2023.03.12 14:49
골고루 먹는 바람직한 식습관을 가지신 분인 게 아닐까요?
저 같은 편식쟁이는 반찬이 그렇게 다양하게 올라오면 거기에서 원래 좋아하는 것 몇 개만 깔짝거리다 말거든요. ㅋㅋㅋ 그래서 손도 안 댔는데 버려질 나머지 반찬들을 보며 아까워 하고 그러는 거죠.
2023.03.12 21:41
이 기사 봤었네요... 어쩌면 인건비 문제가 아니라 노동인권 측면에서도 사라질 수 있겠지요.
리필은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ㅋ 저는 반찬값을 따로 받아야한다고는 생각하지만...ㅋㅋ
일단 흥하는 식당이 되려면 최소한 '상당히 잘 먹는' 성인 남성 1인을 상정하고 음식 양을 정해야 하겠죠. 뭐 음식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국밥이나 백반집 같은 경우엔 완전 고급 식당이 아닌 이상에야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래야 잘 먹는 사람들은 포만감에 만족하고, 많이 못 먹는 사람들도 '그 식당은 참 양이 푸짐해!'라는 입소문을 남길 테니까요.
밑반찬 얘기는 저도 공감을 하는데 (원래 밑반찬을 잘 안 먹습니다) 차라리 부페식으로 차려 놓고 자율 배식을 하면 좀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정성들여 차려주는 한 상' 느낌이 안 난다고 또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할 것 같긴 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