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에 2년전쯤 이경실씨가 출연한 방송을 요즘 케이블에서 재방송해주는 걸 보고 안좋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경실씨의 체험담은 대학교 초년 시절 술을 마시고 밤에 집에 가는 길에 인적없는 차도에서 강도를 만났는데

강도가 강간을 시도하기 시작했고 이경실씨는 필사의 발악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거의 넋이 나간채로 택시를 잡아타고

그뒤 한달이 넘게 버스나 길거리에서 다른 남자들을 보아도 다 그 남자로 보여 눈물이 나고 얼굴을 들고 다닐수 없는 상태였다.. 하는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경악했던건 이 이야기가 (언제나 그렇듯이 이경실씨의 본인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상처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유머의 범주로 소개가 되었고

그 상황을 설명하는데 다른 게스트중 여자분 몇분을 빼고는 다들 이걸 정말 유머로 받아들여서 깔깔대며 웃었다는 겁니다..지금보아도 입맛이 씁니다.

그나마 여자분들은 경악하는 표정이었는데 남자게스트들은 어찌나 해맑게 웃던지...

이게 방송되기 직전에 제가 유사한 상황을 겪었기때문에 더욱 감정이 이입되기도 했구요..

 

대학시절 우리과는 남학우들이 모두 도덕적이었던건지 하여간 철없이 마셔대도 선후배나 동기들이 손끝하나 건드린적 없이 안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철이 없어진건가요? 하지만 전 술자리에 동석한다는게 내가 취하면 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의미라고는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

졸업후 술친구인 여자아이와 맥주나 한모금한다는게 그 애와 친한 사람들을 부르고 그사람들이 자기들과 친한 사람들을 부르고 점점 판이커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아무나 말아먹어도 된다는 골뱅이 상태가 된 제가 그 술자리에 있던 모르는 놈에게 끌려가고 있더군요.

손목을 비틀고 목을 졸라대고 양치도 안한 입술을 부벼대며(전 첫키스도 못해본 상태였는데요)...

청년인구가 많다는 대학가 근처이건만 울며불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고 목이 터져라 외쳐도 아무도 안도와주더군요.

저도 번화가에 술이 떡이 되서 이런 실랑이를 벌이는 여자들은 죄다 츳츳.. 하고 지나갔던게 사실입니다. 그게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요..

저는 멍이 여기저기 든채로 제발 다음에..라고 형법교과서에나 나옴직한 굴욕적인 애원끝에야 도망을 쳤던거 같습니다.

필름이 군데군데 끊겼지만 집에서 구토와 함께 깨어나자 마자 원룸 문이 잠겼는지부터 벌떡 일어나 확인을 했어요.

 

물리력으로 남자를 이길수 없다는게 그렇게 열받을수가 없더군요. 그 상황에서 너무나 화가 나도 당장 이 술취하고 꼭지가 돈놈을 자극해봤자

잘못하면 정말 목이 졸려서 죽겠구나.. 아니면 정말 두들겨 맞거나 힘으로 끌려가겠구나 싶어서 애원해야하는게 화가 났고

같은 학교이거나 하다못해 내가 대학을 아직 다니는 상태였다면 여학생회를 통해 문제제기라도 했을텐데 그러기도 애매한 상황이라는것도..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술자리에 있던 다른 그놈의 패거리들은 그 일을 알고도 아무일 없다는 듯 넘어갔지요. 저랑은 어차피 모르는 사이인데.

그들을 불러낸 단초가 된 저의 친구도 아무말도 없이 넘어갔어요. 결국 다 남의 일인데요.

사람이 싫어지더군요.

 

저도 한달이 넘게 그 동네를 돌아다닐수가 없었어요. 그냥 집에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날 입었던 옷이며 가방도 그놈이 나를 길에서 알아볼까봐 다시는 안입었었죠.

그리고 버스에서 누가 날 쳐다봐도 온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큰일 겪기 전에 도망친 저도 이럴진대 더 큰일 겪은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리고 이제 그냥 술먹는거 자체가 싫어졌어요.

제가 사랑하던 술을 멀리하게 만든 인간같지도 않은 놈이 싫네요. 

 

 

여자인 저조차도 개인적으로 이런 일이 없었다면 '왜 자기 양에 넘치게 술을 먹고 다녀 그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글쎄요 그냥 세상에 이렇게 저급한 인간들이 많은지 미처 몰랐거든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05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04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1369
124295 프레임드 #559 [4] Lunagazer 2023.09.21 108
124294 "오펜하이머"의 작은 궁금증(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6] 산호초2010 2023.09.21 361
124293 오펜하이머 리뷰 둘 [2] daviddain 2023.09.21 267
124292 [넷플릭스바낭] 더 우먼 킹 - 영화는 좋았으나.. [6] 폴라포 2023.09.21 428
124291 스튜디오 지브리, 일본텔레비(닛테레)의 자회사 화 [1] DAIN 2023.09.21 196
124290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0 25일 한국개봉 예정 소식 상수 2023.09.21 204
124289 인터넷 서점과 산 책 [4] thoma 2023.09.21 321
124288 더 크로우 리부트 [3] daviddain 2023.09.21 180
124287 [왓챠바낭] 또 한 번 재밌고 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잡담입니다 [21] 로이배티 2023.09.20 528
124286 '콜' 감독과 배우 신작 '발레리나' [4] LadyBird 2023.09.20 446
124285 신비한 동물사전 (2016) [2] catgotmy 2023.09.20 166
124284 홈커밍 1시즌 [5] daviddain 2023.09.20 250
124283 에피소드 #55 [2] Lunagazer 2023.09.20 101
124282 프레임드 #558 [6] Lunagazer 2023.09.20 105
124281 그랜드 호텔 (1932) [2] catgotmy 2023.09.20 176
124280 '유 캔 카운트 온 미' [4] thoma 2023.09.20 314
124279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3] 조성용 2023.09.20 539
124278 이세계의 여가부장관 지명자.. [7] 으랏차 2023.09.20 625
124277 듀게 오픈채팅방 멤버 모집 물휴지 2023.09.20 95
124276 [넷플릭스바낭] 재밌는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히트' 잡담 [13] 로이배티 2023.09.19 52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