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당했어요.

2012.12.05 09:28

그리워영 조회 수:29668

종로에 있는 백상사우나였어요. 기형도 시인이 생각 나는 '종로'라는 공간의 특성상 
입구에서도 확인하고, 신발장 아저씨께도 물어보았지요. 


.

그런 곳 아니라고. 


.

집으로 가는 택시비보다 싸게 먹힐 것 같아서, 1000원에 이불을 대여 하고, 입욕 후, 수면실 직행. 

아이폰 충전기를 꼽을 곳을 찾아 해메다가, 구석지고, 안전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해외에 있는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이불을 덮고 자는 걸 깜빡하고, 베고 잤어요. 


.


그게 실수였나. 

고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요즈음이기에 곤히 잠히 들었는데, 

아침에 깼어요. 묘한 기분으로. 


.


누가 제 신체의 일부분을 만지고 있더군요. 

정신이 들자마자 그 손을 덮썩 잡고, 그 사람의 찜질방키 번호를 확인하려 했어요. 

왠지 써있어야 정상일 것 같아서, 격렬하게 저항하는 그 분. 서로 힘자랑했네여. 

그렇게 10여분간의 사투를 벌이고, 회유도 하고, 다른 분들 수면중이니 (새벽 6:30경.) 

좋은 말로 할 때 나가서 얘기하자 했지만, 계속 자는 척 시도, 여전히 손으로는 그 키를 굳세게 쥐고 있네요. 

어쩌지 어쩌지 고민을 하다가, 카운터에 말했는데, 


'현장에서 잡으셔야 하는데요.' 


'현장에서 잡았는데요.'


'그럼 신고를 하던지 하세요.'


자기 전에 분명히... 영업방해 행위와 성추행으로 엄단한다고 되어 있는데... 백상사우나 개빡치더군요.

따위의 생각들을 하면서 112에 신고. 20분 뒤에 경찰이 왔어요. 

경찰분들이 들고 다니는 그 쪼고마난 하얀 빛의 손전등으로 그 분을 가르키며 나오라 하자 3분 쯤 자는 척 하다 나오는 그 분. 


헐. 저 보다 어린 사람이더군요. 거기에 한 번 놀라고 경찰분들이 제 주민번호와 이름을 먼저 받아 적는 것에 두 번 놀라고


'이 사람의 혐의를 밝힐 수 없으면 제가 처벌 받나요?'


'그건 서에 가서 얘기하십시오.'


불쾌감을 한 번 더 느끼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분 손가락에 냄새를 킁킁대며 맡아봤어요; 뭐 소용 없는 일 같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조직 검사라도 해야하나요?'


아아.. 과학 수사의 세계는 아름다워라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빨리 옷 갈아입고 서로 가자는 경찰분들(두 분 출동)의 말에 아랑 곳 않으며 아침입욕 감행


아무튼, 그렇게 느긋 느긋하게 종로파출소? 종로기동대? 뭐 그런 아주 작은 파출소에 가서 진술서를 쓰고, 그러고나서도 여전히 그 분은 발 뺌을 하기에 

경관님들께 담배피면서, 둘이서 얘기하겠다고 허락 받고, 서 바깥에서 둘이서 이야기했어요. 경찰분들의 시선이 닿는 멀찍이 떨어진 가로수에서... 

경찰 분들이 보는 앞에서는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라면서 굉장히 약오르게 하더군요. '사과 드렸잖아요? 하이 참' 막 이러면서. 어떤 건지 아시죠? -.-

그거 보고 너무 빡이쳐가지고, 


.


'진짜 경찰서로 갈래요? 지금 장난하는 것 같아요?'


.


라면서 위에 써 놓은 대로 멀찍이 떨어진 가로수에 가서 담배피며 대화 시도.
물론, 녹음 시작. (2자간 대화녹음은 법적 효력이 있고, 동의 없이 녹음해도, 위법이 아니에요.)

그래서 5분여간 자신의 혐의 인정과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내고, 룰루랄라 경관님들께 갔어요. -.-

그 분 들으라는 듯이 2자간 대화 녹음에 대한 부분을 물어보는 척 하면서 제가 약올리기 시작. -.-

아무튼, 그러자 그 분이 또 아까와 같은 태도를 취하시기에 '제가 그럼 이상황에서 그렇게 말하지 뭐라고 말하겠어요.'

라며 끝까지 혐의 부인에 들어가네요.... 너무 빡이 쳤지만, 9시 정시 출근에 실패하는 게 더 싫어서. 


.


(처음에 사우나에서 서로 갈 때 총 2시간 쯤 걸린다고 했을 때 부터, 그냥 사과받고 끝낼 생각이었어요.) 


.


결국 사과다운 사과는 받지 못하고, 사과 받은 걸로 치고 직장에 왔습니다. 아직 까지 좀 분이 가라 앉지는 않네요. 

혼자서 직장까지 걸어가다가, 조금 뒤돌아서, 스타벅스에 갔더니 그 분이 아메리카노 주문을 하는 거에요. 

거기에 또 세번 빡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영상 촬영 키고 프로파일정도는 담아 두었네요. 개인소장용으로. 

아아... 성추행범은 맘편히 커피마시고, 저는 아직도 분이 식지 않아서, 이렇게 듀나무숲?에 찌질거리고 있네요. 


.


아. 빡쳐요..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32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360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029
126973 작년보다 증상이 심해진 대통령의 광복절 전 인사 임명 [5] 상수 2024.08.13 397
126972 PSG 소액 주주가 된 케빈 듀란트 daviddain 2024.08.13 58
126971 그런 게 괜찮은지 묻고 싶어서 쓰는 글 [10] Sonny 2024.08.13 611
126970 [넷플릭스]닐 게이먼식 십대 드라마 ‘데드 보이 탐정단’ [6] 쏘맥 2024.08.13 239
126969 프레임드 #886 [4] Lunagazer 2024.08.13 45
126968 잡담...인생의 고점, 그리움 [1] 여은성 2024.08.13 145
126967 '펌프킨헤드 2' [1] 돌도끼 2024.08.13 79
126966 바낭 - 야외사우나 나가는 기분, 태양을 피하는 법(지하보도의 미덕), 외국인에게 외국인인 한국인 [5] 상수 2024.08.13 170
126965 아침에 생각난 노래 daviddain 2024.08.13 45
126964 베스트 키드와 한국 무술 [2] 돌도끼 2024.08.13 125
126963 피네간의 경야 14p catgotmy 2024.08.13 66
126962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4] 조성용 2024.08.13 253
126961 20240810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 촛불집회 다녀왔습니다 [4] Sonny 2024.08.13 142
126960 [왓챠바낭] 원제가 궁금해지는 제목,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잡담입니다 [15] 로이배티 2024.08.13 300
126959 08 베이징 올림픽 폐회식 지미 페이지, 베컴/올림픽 공식 계정 톰 크루즈 [3] daviddain 2024.08.12 191
126958 에피소드 #102 [2] Lunagazer 2024.08.12 48
126957 프레임드 #885 [4] Lunagazer 2024.08.12 52
126956 피네간의 경야 13페이지 [2] catgotmy 2024.08.12 124
126955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전곡 감상 moviedick 2024.08.12 100
126954 이삼각 위진 지옥문 [1] 돌도끼 2024.08.12 12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