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전 이기고 나서 언론이나 인터넷상에서 아르헨티나도 잡을 수 있는 것처럼 호기를 부리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마 그리스전에서 보여준 우리팀의 경기력이 꽤나 인상적이었고, 마라도나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나 아르헨티나가 남미예선에서 힘겹게 올라온 걸 보고 그런 거 같긴 합니다만, 아무리 허접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도 메시는 메시고, 이과인은 이과인이죠. 축구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다 90%다 말들이 많지만 그것도 비슷한 레벨의 팀들끼리 붙을 때 얘기입니다. 히딩크가 네팔 감독 되면 네팔을 월드컵에 진출시킬 수 있을까요?


또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팀이라면 감독(코칭스텝 포함)이 전술적 역량이 뛰어날 필요도 없어요. 물론 그렇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그냥 팀내에 별 문제없이 선수들 정신만 다잡아 놓고 팀내에 불화라든가 하는 문제점만 안 일어나게 만들어도 16강은 기본으로 진출하는 팀들입니다. 예선에서 좀 고전했다고 해도 본선무대에 오면 일단 선수들의 집중력부터 달라지기 마련이죠. 월드컵은 보는 사람들 이전에 출전하는 선수들부터 최고라고 생각하는 무대입니다.


이런 팀을 상대로 수비축구-요새 안티풋볼이라고도 불리더군요-를 기본 전술로 잡고 나온 건 당연한 거죠. 결과적으로 실패하긴 했지만 이 전술로 북한이 꽤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하루전에 스위스는 이번 대회 최고의 이변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전술은 선제골 먹는 순간부터 무의미해집니다. 왕자의 키스가 마법에 빠진 공주를 깨우듯 선제골은 안티풋볼의 마법을 깨 버립니다. 박지성이나 오범석의 인터뷰를 봐도 선제골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더군요. 거기다 상대가 잘 해서 허용한 실점도 아니고 자책골이었으니 심리적 타격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그 순간 저는 그냥 한골 안 먹었다고 치고 원래 전술대로 가길 바랬습니다. 2006년 월드컵 프랑스전에서 그랬듯이 말입니다. 최대한 버틸만큼 버티면서 추가실점 안 한 채로 경기를 마쳐도 1승 1패에 득실차 +1인 상태가 되고, 상대의 체력이 저하되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후반 중반 이후 교체카드를 써서 기회를 만들어낸다면 무승부도 노려봄직 했으니까요.


하지만 수비라인이 전진하고 미드필더도 수비에 대한 집중력을 잃은 상태에서 또 다시 추가실점을 허용하길래 확인사살까지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대의 실수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어서 기대를 갖고 봤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힘들더군요. 후반 초반 우리가 분위기를 잡았을 때 염기훈이 얻었던 찬스가 아깝긴 합니다만 그게 실력이고 또 더 이상 기회를 만들어 내지도 못했으니 패배가 억울할 건 없습니다.


나이지리아전에서 잘 해 주길 기원합니다. 특히 박주영 선수 심리적인 타격이 상당히 클 텐데 잘 추스리고 선전해 주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85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88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2272
125848 게임으로 역사 배우기 [2] catgotmy 2024.03.30 162
125847 Louis Gossett, Jr. 1936-2024 R.I.P. [5] 조성용 2024.03.30 170
125846 1979 빌보드 톱 50 챠트 [2] theforce 2024.03.30 169
125845 [넷플릭스바낭] 로맨스인가 스릴러인가, '피난처' 잡담입니다 [8] 로이배티 2024.03.30 339
125844 챗 gpt vs 구글 제미니 theforce 2024.03.29 152
125843 프레임드 #749 [6] Lunagazer 2024.03.29 78
125842 괴수의 키 [8] 돌도끼 2024.03.29 252
125841 명동에 갔다가 catgotmy 2024.03.29 169
125840 (바낭) 기둥뒤에 살아있어요. [6] 가라 2024.03.29 366
125839 이런저런 정치 잡담...(조국) 여은성 2024.03.29 398
125838 댓글부대 영화개봉에 부쳐(화면 속, 네트는 넓어서... 판타지스러움, 은종 게시판) 상수 2024.03.29 226
125837 정치 뉴스 몇개(호위무사 인요한, 진중권, 김경율) 왜냐하면 2024.03.29 337
125836 프레임드 #748 [5] Lunagazer 2024.03.28 88
125835 의사 증원 2000명이 천공 밈화 되는 걸 보면서.. [3] 으랏차 2024.03.28 811
125834 이미 망한 커뮤에 쓰는 실시간 망하는중인 커뮤 이야기 [7] bubble 2024.03.28 1009
125833 몬스터버스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1] 돌도끼 2024.03.28 208
125832 롯데 인스타에 [12] daviddain 2024.03.28 310
125831 고질라 곱하기 콩 봤어요 [5] 돌도끼 2024.03.28 360
125830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4] 조성용 2024.03.28 499
125829 프레임드 #747 [4] Lunagazer 2024.03.27 6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