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까?_에드워드 호퍼의 경우

2012.11.22 16:49

칼리토 조회 수:5053

문득 멜랑콜리한 기분이 온몸을 감쌀때가 있죠.

 

왜 살까?? 싶은 기분이랄까요. 날씨가 흐릿하니.. 센치하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중에 알랭 드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라는 수필집이 있어요. 그 책의 맨 첫머리에서 그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언급하며 슬프지만 슬프게 하지 않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마치 바흐의 음악이나 레너드 코헨의 노래처럼 말이죠.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호퍼 그림의 주제는 일관되게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지탱하는 삶의 이유라는 것이 늘 끊어지기 쉬운 연줄 같은 위태로운 것이라서 그런 걸까요? 우리는 툭하면 외롭고 상처받기 쉽고 고독하며 시간만 나면 그걸 메꿔 보려고 딴 것을 찾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788e4a46195a8199fed7a04965267d84.jpg

 

호퍼의 그림에서 딱히 쓸쓸한 여운을 발견하는 것은 역시 보는 사람의 몫입니다. 건조한 느낌이 드는 이런 풍경화를 보더라도 뭔가 고독의 뉘앙스가 묻어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도시로 들어가는 터널, 어딘가로 이어지기는 했으나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수는 없죠.

 

b36c23735e37e4fbbc87da48fe729209.jpg

 

그건 가정을 이룬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가정 생활의 여러가지 면을 고려할때 부부사이가 돈독하거나 행복에 가득찬 순간도 분명 있을겁니다. 하지만 호퍼의 눈은 대화가 끊어지고 부부라는 이름의 굴레를 벗어나 한 인간으로 존재할때 각자가 필연적으로 가질수 밖에 없는 고독의 순간을 포착하죠. 옆에 있어도 늘 그리운 뭔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원죄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인간이라는 원죄말이죠.

 

4de5c47c9a80842a7f3ea371481533e0.jpg

 

밤은 깊고 밖은 춥고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지 않을 것을 처음부터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여자의 얼굴에는 체념과 피로가 함께 묻어있습니다.

 

c810e0539881a0b0fc1cbd49785b9e7e.jpg

 

황량하지만 밝고 깨끗하지만 낯설고 모두가 각자의 짐을 지고 밤을 새우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늘 왜 살까? 왜 살지? 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는 그런 존재는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도 해줄 수 없는 대답을 말이죠.

 

16047406f60dc1399255ef2d8c98d605.jpg

 

영화의 열린 결말처럼 이 그림을 끝으로 오늘의 넋두리를 마칩니다. 바다로 열린 문밖으로 넘실대는 파도가 보입니다. 햇살은 알맞게 쏟아져 들어오고 저 문밖으로 나간것인지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는지 알수 없는 묘한 분위기의 이 그림을 보며 저는 인간의 한계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언젠가 필연적으로 해결될 거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그게 비극일지 희극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요.

 

왜 사느냐는 질문에 에드워드 호퍼는 이렇게 대답해주고 있는것 같습니다. 당신의 내면에서 울려퍼지는 의문과 고독과 외로움과 슬픔은 이미 앞서간 누군가의 것이기도 하였고 그것도 이내 끝날 것이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서 순간순간을 최대한 열심히 살라. 그 순간 순간이 모여 인생을 이룬다. 어쩌면 그것이 삶의 목적이고 신이 의도한 모자이크의 한조각일지도 모른다...라구요.

 

뜬금없이 센치해지는 목요일의 오후에 조용히 되뇌어 보는 자문자답입니다. 좋은 저녁들 맞으세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32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361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039
239 <오마이뉴스>에서 뽑은 21세기 첫 10년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책. [20] iammilktea 2010.07.23 5029
238 이명박정권보다 노무현 정권이 더 삶이 힘들고 비참했었다는 분 [30] soboo 2012.12.03 5030
237 상사가 직장인에게 하는 칭찬의 의미 (2ch 개그 번역 펌) [8] 호레이쇼 2010.08.03 5041
236 미스 에이 'Breathe' 퍼포먼스 장난 아닌데요? [12] kiwiphobic 2010.10.17 5043
235 말로만 듣던 친한 친구의 다단계 권유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_- (이야기 다소 깁니다) [10] 루이스 2010.08.15 5049
» 왜 살까?_에드워드 호퍼의 경우 [29] 칼리토 2012.11.22 5053
233 게시판 분위기가 화기애매(?)할때 고전 자료 뿌립니다? 김성모 화백 작품 대량 방출 입니다? [9] chobo 2012.03.09 5055
232 (다이어트 바낭) 중국음식의 칼로리 양은 정말 장난이 아닌가봐요. [15] 소전마리자 2012.08.27 5058
231 우리집 주소는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국부은하군 은하수은하 태양계 지구 한국... [5] 데메킨 2014.09.11 5062
230 바낭 중의 상바낭 : 화장실 가기 왜 이렇게 싫을까요? 애증의 김희애 [48] Koudelka 2014.03.20 5069
229 [자랑글] 생일 선물 [40] 로이배티 2012.10.18 5070
228 승전선언 합시다 [9] 룽게 2010.06.03 5073
227 귀신같은 작사능력을 가지고 있는 소녀감성 50대 아저씨의 가사들 [8] 소전마리자 2012.08.23 5078
226 엄기영 후보의 펜션 사무소 [19] 후루룩™ 2011.04.22 5081
225 재미로 보는 스마트폰 계급표 [8] 달빛처럼 2011.09.19 5083
224 제가 살아가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13] 낭랑 2010.09.13 5091
223 옛날에 비싸고 귀했고 엄청 맛있었는데 현재는 흔한 음식 [38] 자두맛사탕 2010.11.16 5098
222 제가 유일하게 끝까지 다 못보고 포기한 영화는 단 하나입니다. [16] 지루박 2010.08.12 5101
221 [듀나인] 비 오는 날 크록스 플랫 슈즈는 어떤가요? [17] 아실랑아실랑 2012.07.12 5104
220 백화유 하고 호랑이 연고 아시는 분? [9] Apfel 2011.01.30 510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