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이 홍대생이 됩니다!

2022.12.27 22:58

Sonny 조회 수:713

어제 고모한테 카톡이 왔습니다. 사촌동생이 홍대에 붙었다네요. 깜짝 놀랐습니다. 이 친구의 성적을 디테일하게는 모르지만 인서울을 쉽게 노릴만한 성적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모두의 예상을 깨트리고 그는 홍대에 붙었습니다. 본인 말로는 5차까지 추가합격을 기다린 끝에 얻어낸 결과라고 합니다. 역시 중꺾마인가요. 합격을 확인하고는 눈물을 흘렸다던데...한국은 월드컵 16강을 갔고 제 사촌은 홍대를 갔네요. 누군가에게 2022년은 소원성취의 해인가 봅니다.


사촌동생이 과거 속썪였던 이야기를 고모와 나눴습니다. 중학생이던 사촌동생이 공고를 가겠다는 겁니다. 공부를 곧잘 하는 친구라 저희 고모는 대경실색했죠. 그 이유란 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맹랑한 게,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공고를 가면 상대적으로 공부에 터치를 덜하니 학교를 다니면서 프로게이머의 꿈에 매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꿈 자체도 기가 막힌데 그 청사진을 짜준게 아는 동네 형이었답니다. 어린 게 벌써 담배를 피우고 다닌다는, 별로 평이 안좋다는 아이라는데 이 말을 듣는 저도 괜히 딥빡... 저도 이런 데 더 옛날 사람인 고모는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죠. 공부를 잘 하는데 굳이 공고를 가겠다는 건 제 기준에서는 서태지급이 아니면 안될 일이었습니다.


사촌동생은 늦둥이에다가 외동아들이어서 좀 건방진 도련님 기질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부모와 세대 차이가 나다보니 택도 없는 꿈을 으름장을 놓으며 선포를 하곤 했죠. 그래서 고모가 제게 헬프를 요청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고모와 같이 있을 때 종종 티비로 스타크래프트를 봤거든요ㅋㅋ)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폭풍훈계를 늘어놓았습니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있지도 않을 때부터 임요환이랑 홍진호가 겜방에서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고 개같이 굴렀던 프로게이머 1세대를 내가 팬질한 사람인데 어디서 이런 말도 안되는 허풍을...!! (엄밀히 말하면 임요환은 1.5세대쯤 되고 홍진호는 2세대 게이머입니다 ㅋ) 너가 롤을 잘하는 건 알겠다만 그 정도 가지고는 택도 없다, 프로게이머 한답시고 도전한 애들 연습생만 하다가 꿈 접고 내려온 애들이 한둘이 아니다, 너가 진짜 프로게이머가 꿈이라면 차라리 자퇴를 할 것이지 무슨 애매한 공고 진학이냐 등등... 사촌동생은 설득은 안당했는데 저의 잔소리에 좀 질려서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인문계로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저 때문은 아니고, 학원 수학 선생님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줬다네요. 그 때 이야기를 하니까 좀 멋적어하더군요. 그 땐 내가 좀 미쳤었지~~ 말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헤헤~ 지금은 그냥 방에서 혼자 게임하는 평범한 즐겜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겜방을 가면 홍대 겜방을 가겠지요. 롤을 좀 하니 친구 사귀는데 수월하려나요. 이런 것도 좀 세대차이입니다. 요새는 게임을 잘하면 뭔가 오오!! 하면서 바로 인정을 받으니 말이에요. 


---


서울에 가면 이것저것 알려달라는데, 제가 뭐 아는 게 있어야지요. 저는 맛집 찾아다니는 걸 별로 안좋아합니다. 어차피 홍대 기숙사에서 살 것 같으니 사촌동생 본인이 홍대, 합정, 상수, 연남, 연희 쪽 알아서 다 꿰고 다니겠죠. 전시회는 좀 데리고 가볼 생각입니다. 서울 사는 특전은 문화생활 아니겠습니까. 이런 건 좀 낯설어해도 제가 강제로 쑤셔박아주고 싶습니다. 애석하게도 사촌동생은 영화 보는 건 그렇게 안좋아해서 극장 데리고 갈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네요. 


한편으로는 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경제적으로든, 인격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사촌동생한테 뭐라도 좀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동시에 유사 아버지처럼 자신의 한을 풀 대리자로 이 친구를 부캐삼아 이것저것 잔소리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댑니다. 운동을 해라! 책을 읽어라! 영어공부를 해라! ㅋㅋ 하지만 저도 열심히 안하고 있는 것을 어찌 감놔라배놔라 하겠습니까. 그러니 제 삶이라도 부지런히 챙겨야죠...


이제 어른으로서 잘난 척 할 수 있는 유효기간이 슬슬 끝나가는 것 같다는 위기감도 느낍니다ㅋ 그도 곧 술을 마실 줄 알게 되고, 서울생활을 통해 견문을 넓히면서 어느 순간 저보다 아는 게 더 많고 인생의 방향이 더 뚜렷해지는 변곡점을 맞이하겠죠. 그래도 저를 너무 늙다리 취급만 안했으면 좋겠군요ㅋ 일단 축하를 위해 미슐랭에 나온 적당한 식당 하나를 데리고 가봐야겠습니다. 이런 걸로 으스대는 시간이 얼마 안남았으니 은공을 최대한 베풀어놔야합니다 ㅋ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72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27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449
122044 [jtbc] 비긴어게인 인터미션 첫방송 [2] 쏘맥 2023.01.06 386
122043 [티빙바낭] 제목에 혹해서 본,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잡담입니다 [10] 로이배티 2023.01.06 534
122042 프레임드 #301 [4] Lunagazer 2023.01.06 118
122041 퍼스트 슬램덩크 1감 소감 [3] 라인하르트012 2023.01.06 510
122040 뒤늦게 보는 가족 영화 패딩턴 [7] Kaffesaurus 2023.01.06 537
122039 [왓챠바낭] 영화 '꽃잎'을 보다가 만 짧은 잡담 [17] 로이배티 2023.01.05 812
122038 '바바라'와 넷플릭스 '이 세상의 한구석에' [9] thoma 2023.01.05 545
122037 슬램덩크 신극장판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4] ND 2023.01.05 690
122036 (노스포) [더 퍼스트 슬램덩크] 보고 왔습니다 [10] Sonny 2023.01.05 782
122035 프레임드 #300 [8] Lunagazer 2023.01.05 155
122034 유튜브 조회수 올리려고 쌩사람을 죽었다고 [2] 가끔영화 2023.01.04 748
122033 Vanessa Carlton - A thousand miles [1] catgotmy 2023.01.04 181
122032 4월 부활절 계획 [6] Kaffesaurus 2023.01.04 357
122031 프레임드 #299 [4] Lunagazer 2023.01.04 124
122030 펌글-손흥민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케인-맨유/호날두 [2] daviddain 2023.01.04 471
122029 더 퍼스트 슬램덩크 짧은 감상 [5] 예상수 2023.01.04 680
122028 합스부르크전 다녀왔습니다 [4] Sonny 2023.01.03 728
122027 프레임드 #298 [4] Lunagazer 2023.01.03 144
122026 Led Zeppelin - Whole Lotta Love catgotmy 2023.01.03 138
122025 새해 첫 영화로 ‘코다’ 를 봤어요. [6] soboo 2023.01.03 68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