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 정도 밖에는 여기에 대해 언급하는 분이 안계셔서 제가 나서봅니다.


발달심리학이나 행동유전학, 진화심리학 등의 연구결과를 보면 부모의 양육환경이 자녀의 성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하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각기 다른 양육환경에서 길러진 일란성 쌍둥이를 연구한 결과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는 서로 유전적으로 100% 동일하기 때문에 태아의 발달상의 잡음(noise)에서 생기는 차이를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환경의 영향만을 변수로 두고 아이의 발달 과정에 대해 연구할 수가 있습니다(일란성 쌍둥이가 아닌 형제들에 대해서도 변수를 잘 통제하면 비슷한 연구를 할 수 있고 실제로도 하고 있지만 일란성 쌍둥이보다는 아무래도 연구가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같은 집안에서 자라난 일란성 쌍둥이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명이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어 자란 일란성 쌍둥이를 비교하면 양육환경이 아이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데, 결과는 같은 집안에서 자란 쌍둥이나 서로 다른 집안에서 자란 쌍둥이나 그 차이는 같다는 겁니다. 즉 같은 양육환경에서 자란 쌍둥이 간의 차이와 다른 양육환경에서 자란 쌍둥이 간의 차이는 비슷하다는거죠. 이 말은 같은 양육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간의 차이가 대략 50%라고 할 때 다른 양육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 간의 차이도 50%라는 얘기죠. 같은 양육 환경에서 자랐다고 더 비슷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부모가 자녀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신화는 이런 발달심리학에서의 쌍둥이 연구와 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쓴 '양육 가설'에 의해 상당 부분 깨어지게 됐습니다. 물론 지금도 학계에서 부모의 양육 환경에 대한 논쟁은 계속 되고 있지만 기존의 양육환경에 대한 사회학 이론의 수정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해리스는 유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성격의 차이가 가정에어서의 양육 환경 보다 또래끼리의 환경에서 결정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어느 정도 입증이 되고 있는 사실입니다(참고로 해리스의 저서는 '개성의 탄생(No Two Alike)'만 국내에 번역출간되었고 '양육 가설'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개성의 탄생도 양육 가설의 연장선상에서 쓴 책이기 때문에 관심있는 분은 이 책만 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겁니다).


부모의 양육 방법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성격도 신체적 특징처럼 유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폭력의 대물림이라든지 여러가지 성격적 특질들이 부모와 닮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양육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죠. 사실은 유전의 영향일 가능성이 큰데 말이죠.


그렇다고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주장에는 항상 "그러면 부모는 자녀를 방치하고 학대해도 괜찮다는 말이냐?"라는 극단적인 반박이 뒤따라오는데 이건 잘못 이해해도 한참 잘못 이해한거죠. 부모가 아이의 장기적인 성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해도 부모의 역할은 그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부모는 자식의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자신들의 양육방식이 아이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끼치든 못끼치든간에 아이를 불행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부모는 아무도 없을겁니다. 그리고 부모가 속한 사회적 환경이나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자녀의 또래 환경이 어느 정도 형성되기 때문에 부모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닙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351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276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3172
126478 [게임바낭] 조현병 체험 게임 두 번째 이야기, '세누아의 전설: 헬블레이드2'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4.06.16 192
126477 우주소녀 성소 중국어 catgotmy 2024.06.16 122
126476 넷플-마담 웹, 짤막평 [4] theforce 2024.06.16 270
126475 야채듬뿍 더 진한 음료 catgotmy 2024.06.15 132
126474 영드 "더 더럴스(The Durrells)"와 비슷한 분위기의 가족 드라마 있을까요? [3] 산호초2010 2024.06.15 168
126473 Interview With the Vampire’ Director on Casting Tom Cruise Over Daniel Day-Lewis and the Backlash That Followed: ‘The Entire World’ Said ‘You Are Miscast/벤 스틸러의 탐 크루즈 패러디’ daviddain 2024.06.15 100
126472 프레임드 #827 [4] Lunagazer 2024.06.15 72
126471 TINI, Sebastián Yatra - Oye catgotmy 2024.06.15 46
126470 나와 평생 함께가는 것 [2] 상수 2024.06.14 269
126469 [KBS1 독립영화관] 버텨내고 존재하기 [1] underground 2024.06.14 142
126468 [영화바낭] 좀 이상한 학교와 교사 이야기. '클럽 제로'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4.06.14 341
126467 영어하는 음바페/벨링엄이 레알 마드리드에 적응 잘 한다는 베일 daviddain 2024.06.14 84
126466 프레임드 #826 [4] Lunagazer 2024.06.14 64
126465 유튜브 자동번역 재미있네요 daviddain 2024.06.14 181
126464 Mark Forster - Au Revoir [1] catgotmy 2024.06.14 96
126463 올해 오스카 명예상 수상자들은... [1] 조성용 2024.06.14 244
126462 [넷플릭스바낭] 오늘 본 영화의 장르를 나는 아직 알지 못... '신체찾기' 잡담 [2] 로이배티 2024.06.14 289
126461 [퍼옴] 200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사랑을 믿다] 도입부. [4] jeremy 2024.06.13 333
126460 [왓챠바낭] B급 취향이 아니라 그냥 B급 호러, '독솔져'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4.06.13 227
126459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7] 조성용 2024.06.13 45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