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4 01:01
데이빗 핀쳐의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라고 홍보하고 있는 그것입니다만.
한 시즌 1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정작 데이빗 핀쳐가 연출한 작품은 없습니다. 그냥 스튜디오가 핀쳐가 운영하는 거라든가 그렇네요.
제목을 보면 뭔가 확고한 주제를 공유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딴 거 없습니다.
진짜 로봇도 나오고 SF 분위기 깔고 그런 것도 있지만 어떤 건 그냥 환타지이고 어떤 건 그냥 짧은 농담이고 뭐.
그렇게 에피소드별로 소재와 주제가 다 확연히 달라요.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확실한 19금 표현의 다크한 스토리' 라는 것 정도가 되겠네요.
전체적으로 아주 훌륭하다기 보단 장단점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시리즈인데.
일단 확실한 장점은 비주얼입니다.
넷플릭스가 도대체 제작비를 얼마나 준 거야? 싶을 정도로 눈호강 수준의 비주얼들이 거의 매 편마다 펼쳐져요. 그 중 상당수는 스타일도 독특해서 더 보기 좋구요.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은 옴니버스식 단편 구성이라는 거죠. 이야기가 좀 허술하다 싶어도 워낙 짧으니 그냥저냥 계속 보게 됩니다.
단점이라면, 이미 위에서도 말 했듯이 이야기들이 좀... 흠... 뭐랄까.
일단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18편중 두 세 편 정도?
뭔가 스토리들이 대체로 SF 소설가 지망생들의 습작 느낌입니다. 아이디어 자체도 신선하지 않은데 대부분 마무리도 약해요. 재미있을만 하면 그냥 어? 하고 끝나버리는 느낌.
위에서 말했듯이 단편 모음식의 구성 덕에 술렁술렁 잘 넘어가긴 합니다만...
그리고 이건 장점도 단점도 아니지만, 19금이라는 컨셉에 부합하기 위해서인지 신체 노출 등의 성적인 장면과 폭력적 장면들이 꽤 자주 나오는데 수위도 아주 높습니다.
저야 뭐 둘 다 좋아하긴 합니다만 (쿨럭;) 그게 보다 보면 '19금 넣을 거야!! 아주 세게!!!!!' 라는 제작자의 의지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좀 그랬네요.
종합하면 시각적으로 아주 즐거운 경험인 동시에 이야기 측면에선 미진함이 느껴져서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옴니버스 형식이라 재미가 있어도 재미가 없어도 시간은 잘 가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시도해 보세요. ㅋㅋ
마지막으로, 각 에피소드별로 짤막하게 소감을 적자면.
1. 무적의 소니
고퀄의 cg, 무자비한 고어, 수위 높은 노출 씬으로 시작부터 시리즈의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줍니다만.
이야기는 영 재미가 없었습니다. 뭔가 '뱀파이어헌터D' 같은 아니메의 전투 장면 하나 정도로 들어갔음 딱 적절했을 것 같은 느낌.
2. 세 대의 로봇
인류가 멸망하고 남긴 폐허에 관광을 온 세 로봇의 이야기인데. 작고 귀여운 소품이고 가볍게 즐겼습니다.
그리고 아마... 가 아니라 거의 100%의 확률로 트위터에서 사랑 받을 것 같은 이야기네요. ㅋㅋㅋ
3. 목격자
시각적으로 정말 매력적인 에피소드이고 이야기는 별 거 없어도 그냥 적절하게 괜찮습니다만.
굳이 주인공을 스트리퍼로 설정해 놓고 스트립 장면을 기일게 보여주니 한국 애니 역사의 금자탑 '블루 시걸'도 잠깐 생각나고 뭐 그랬...
요즘 김혜수씨에게 블루 시걸 얘기 물어보면 화 내시려나요.
4. 슈트로 무장하고
걍 파워 슈트.... 아니 이걸 뭐라고 하더라. 암튼 농부 아저씨들이 강화복 스타일의 메카닉을 타고 몬스터 섬멸하는 액션이 이야기의 95%.
마지막의 반전이 5% 정도를 차지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액션씬은 나름 재밌었네요.
5. 무덤을 깨우다
음... 이 시리즈에서 가장 튀는 에피소드입니다. 난데 없는 드라큐라 백작이라니. =ㅅ=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지 않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6.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
제목 그대로의 상황을 그린 짤막한 농담입니다. 요거트로 인해 인간 세상이 특이점을 맞고 뭐... ㅋㅋㅋ
나름 참신한 구석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좀 허무했어요. 분명히 풍자극을 의도하고 있는데 그 풍자가 너무 얄팍하단 느낌.
7. 독수리자리 너머
아마 시리즈에서 가장 야한(...) 에피소드였던 같은데.
역시 흔하고 익숙한 아이디어를 활용한 반전이 핵심이긴 해도 그럭저럭 볼만했습니다.
8. 굿 헌팅
제가 좀 싫어하는 그림체인데, 이야기 측면에선 가장 좋았습니다.
사극처럼 출발해서 사이버 펑크로 변화해 나가는 전개도 맘에 들었고 마지막 장면의 씁쓸함도 좋았습니다.
뭔가 좀 건성건성 건너 뛰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 정도야 뭐.
9. 쓰레기더미
음...
그래서 뭐라구요?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ㅋㅋㅋ
10. 늑대인간
뭔 얘길 하려는지는 대충 알 것도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지만 그래도 보고 나면 '어쩔?'이라는 생각부터 듭니다.
그냥 가볍게 가는 깊이 없는 이야기로 보이긴 싫었는지 나름 무게 잡는 설정을 넣어뒀지만 얄팍하고 얄팍하면서 얄팍하기 그지 없는 가운데 비주얼은 화려하고 액션은 볼만해요. 하지만 별로 재미는 없었...
11. 구원의 손
나름 깔끔한 이야기입니다만 뭐 특별히 칭찬할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어요.
12. 해저의 밤
역시 이야기는 별 거 없지만 시각적인 즐거움 측면에선 괜찮았습니다.
이야기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냥 이야기가 별로 없어요(...)
13. 행운의 13
전쟁 이야기인데. 사실 SF가 아니라 2차대전이나 그 외 어떤 전쟁을 배경으로 해도 상관은 없었을 겁니다.
뻔하디 뻔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꽤 괜찮았습니다.
14. 지마 블루
인간같은 감수성을 갖게 된 로봇의 이야기라는 면에서 좀 진부하고 흘러간 느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각적으로 개성 있는 데다가 그게 이야기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괜찮았습니다.
15. 사각지대
극장판 장편 애니메이션에서 볼거리 많은 한 부분을 뽑아내 편집한 듯한 이야기입니다.
나쁘진 않았던 듯.
16. 아이스 에이지
실사 영화입니다. cg 애니메이션의 비중이 크니 이 앤솔로지에 못 넣을 것까진 아니구요.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가 나와서 좋았습니다. 토퍼 그레이스도 나왔지만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라서
남이 쓰다 두고 간 냉장고 안에서 수퍼 울트라 미니 초고속 문명을 발견한다는 이야기인데, 역시 뭐 특별할 건 없지만 아이디어가 좋고 전개도 귀여워서 재밌게 봤어요.
17. 또다른 역사
아... 뭐 어쩌라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ㅅ=
18. 숨겨진 전쟁
스나이퍼 엘리트라는 게임의 외전 '좀비 아미 트릴로지'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깁니다. 전쟁 중에 위기에 처한 러시아 사람들이 흑마술로 괴물을 불러내 조종해서 전쟁 역전을 노리다가 되려 공격을 당하고 수습하느라 진땀을 뺀다는 얘기죠.
한 시즌 18편 총합 제작비를 한 번에 조달한 후에 돈 아껴가며 17편까지 만들었다가 의외로 돈이 많이 남아서 마지막 편에 다 쏟아 버린 듯한 퀄리티의 비주얼을 자랑합니다. 실사풍의 그래픽인데 뒷배경의 대충 스쳐지나가는 장면, 풍경까지 디테일이 철철 넘쳐요.
분위기도 괜찮고 액션도 볼만하고. 스토리는 평범하지만 그래도 십여분의 시간 동안 지루하진 않았습니다.
아... 어쩌라고 이런 알멩이도 없는 소감들을 길게 늘어놨는지. ㅋㅋㅋ
암튼 기대만큼은 아니었어도 그럭저럭 시간 잘 보냈습니다.
다음 시즌이 만들어진다면 그 땐 작가진을 좀 보강하든가, 아님 아예 유명한 SF 단편들을 갖고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뭐 제작비의 한계로 쉽지 않겠지만, 그냥 제 소망입니다. 비주얼은 정말 더할나위 없이 좋았거든요.
2019.03.24 06:28
2019.03.24 12:55
이게 하루에 두어줄씩 며칠간 깨작깨작 쓴 글이라 '이거 다 올리기 전에 다른 분이 먼저 글 올려주실 듯 ㅋㅋ' 이러고 있었는데 결국 끝까지 하나도 안 올라와서 저도 좀 의외였습니다. 하하.
이야기들이 약하다고 글 내내 투덜거렸지만 사실 저도 즐겁게 봤어요. 일단 이런 기획 자체가 흔한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고마운 시리즈였고 비주얼은 18편 중 딱히 빠지는 것 하나 없을 정도로 훌륭했구요. 요즘 넷플릭스 보면 장사를 해도 참 센스 있게 하는 것 같아요.
2019.03.24 10:23
저와 평가가 거의 일치하시네요. 그나저나 19금 딱지를 붙이고 나온 작품들의 젠더/섹슈얼리티 묘사의 전형성에 늘 다른 의미에서 놀랍니다. 19금의 기준이 누구인지가 명확해서 말이죠. 그걸 좀 누르고 본다면 그럭저럭 재밌게 봤습니다. 가장 좋았던 건 <굿 헌팅>, 그외 볼만 했던 건 <목격자>, <슈트로 무장하고>, <독수리자리 너머>, <행운의 13>,<지마 블루>, <숨겨진 전쟁> 정도네요. <굿 헌팅>은 전개며 아이디어가 좋더니 역시 원작이 있었더군요.
<목격자>는 언급하신 것처럼 시각적 연출이 꽤 좋아요. 스토리는 별 게 없는데 정말 그걸로만 끌고 나가는 힘이 대단. <독수리 자리 너머>의 CG에는 정말 깜놀했습니다. CG로는 가장 돋보인 에피였던 듯. 찾아보니 제작사가 게임 트레일러 영상에서 명성이 있는 곳 같더군요. 특히 주인공의 엑스로 나오는 여자 캐릭터의 경우에는 실사인가 아닌가 한참 헷갈렸네요. <무적의 소니>는 별로던데 평가들이 좋아서 의외였고요.
2019.03.24 13:15
맞아요. 그래서 저도 블루시걸 이야길 했죠. ㅋㅋ 이게 야한 게 나와도 자연스럽기만 하면 되는데 좀 쌩뚱맞게 선명한 의도를 품고 튀어 나오는 느낌이라 조금 거슬렸습니다.
말씀대로 저와 거의 비슷하게 보셨네요. 저도 굿 헌팅이 가장 좋았고 목격자 비주얼이 가장 인상적이었으며 그 외 언급하신 작품들에 대한 소감도 거의 같아요. 괜히 반가운 느낌이!!!
2019.03.24 13:35
2019.03.26 11:04
2019.03.24 14:36
저는 전체적으로 만족스럽게 봤는데요,
기존의 영화를 오마쥬..내지는 패러디한 부분들도 눈에 띄더군요
"슈트로 무장하고"는 매트릭스 3편의 쏟아지는 센티넬 vs APU 전투도 생각나지만..
괴물들 디자인이나 레이더로 몰려오는 괴물들을 보는 장면이나.. 외골격슈트의 원조격(?)을 생각해도 에일리언2의 노골적인 인용이 보입니다..
"늑대인간"은 닐마샬의 독솔져가 연상되는 내용이긴 했지만.. 뭐 이건 그렇게까지 연관성이 큰 건 아니니..
"구원의 손"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를 보면서 한번쯤 상상했을 법한 고어 버전을 보여준 것 같고요ㅎ
"해저의 밤"은 아리조나 드림?ㅎㅎ
"사각지대"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액션시퀀스를 로봇버전으로 변주한 것 같았습니다ㅎ
그리고 위에 감상하신 댓글들을 보니 역시 취향은 천차만별이다 싶습니다ㅎ
저는 숨겨진 전쟁..의 경우는 애초의 아이디어를 영상화하려면 러닝타임을 꽤 잡아먹었을텐데 짧게 만드려고 중간중간 뛰어넘으면서 편집해놓은 게 좀 튀는 느낌이었고..
차라리 마지막 에피소드이니만큼 구애받지 않고 좀 길게 하고 싶은 이야기 했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그 외 제일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무적의 소니, 목격자, 독수리자리 너머.. 꼽고보니 디테일한 CG로 묘사한 작품들이네요 다들ㅎㅎ
세 대의 로봇에서의 만담(?)도 무척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ㅎ
굿헌팅에서 자연스럽게 스팀펑크로 이어지는 부분도 무척 좋았고요ㅎㅎ
2019.03.26 11:58
숨겨진 전쟁을 저는 좋게 봤지만 말씀하신 부분이 아쉽긴 했어요. 좀 더 긴 호흡으로 가야할 이야기였죠.
다만 어차피 장편으로 만들려고 하면 아무도 투자 안 해 줄 이야기라 그냥 그러려니... ㅋㅋ
해저의 밤 보면서 저도 아리조나 드림 떠올랐습니다. 정확히는 아리조나 드림의 그 포스터요. 영화 포스터들로 카페 인테리어 하는 게 유행이던 시절에 꽤 인기 많은 포스터였죠. ㅋㅋ
2019.03.24 19:18
유명 SF 단편을 가지고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굿 헌팅이 SF 단편에서 가져온거죠. 켄 리우의 단편집 [종이 동물원]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인데 단편집에서 인상깊게 본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고대의 마법이 스팀펑크 시대의 새로운 마법으로 재탄생하는 묘사가 인상적이었는데 애니메이션에서는 그 과정이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옌(염)이 울음소리를 내며 떠나는 장면으로 끝나는 원작과 달리 사냥을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 지은 것도 사족처럼 보였고요. 그것 말고는 원작을 충실히 옮긴 편이었고요. 이 작품이 나오는 지 전혀 모르고 보다가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화 되었다는 걸 깨닫고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봤습니다.
2019.03.25 10:12
원작 단편의 장점이 8, 단점이 2 존재한다면, 각색된 굿 헌팅은 그 장점의 절반 정도만을 취하고 단점을 극대화한 느낌이더라구요.
2019.03.26 12:00
원작은 안 읽어서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로도 이 앤솔로지에선 가장 이야기다운 이야기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들이 워낙 좀 원작이 더 좋다니 찾아 읽어 보고픈 맘이 생기네요.
듀게에서 왜 아무도 이걸 언급하지 않지 하고 조심스레 포스팅을 하려다가 로이배티님이 고맙게도 잘 정리해주셨네요. 전 넷플릭스에 올라오고 바로 봤는데 전혀 사전 지식없이, 어떤 기대도 없이 이게 뭐지 하고 봤다가 노다지를 발견한 기분이었네요. 말씀하신 대로 18편 모두 평균적으로 아주 높은 수준의 비주얼을 선사하지만 내용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죠.
개인적으로는 무적의 소니의 반전도 좋았고 세대의 로봇은 귀여웠고 목격자의 비주얼이 가장 놀라웠고 행운의 13이 인물의 표정 표현 등이 가장 자연스럽고 내용도 알찼던거 같고 지마 블루도 꽤 특색이 있고 좋았어요. 아이스 에이지는 아이디어가 참신했고요. 보자마자 몇번을 다시 봐야겠다는 느낌이 팍... 암튼 전 무조건 강추입니다. 19금 표현이 어떤 이들에겐 좀 불편할 수도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