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3 13:08
2회차를 보니까 이 영화가 가진 장점과 단점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눈에 들어옵니다. 일단 이 영화는 원작을 보고 열광한 사람들을 주 타겟으로 삼고 있어서 슬램덩크의 내용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까지 와닿진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서태웅이 패스를 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기회에 강백호에게 패스를 하는 장면 (왼손은 거들 뿐)이 왜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인지는 산왕전 이전까지 축적된 서태웅의 마이페이스와 강백호를 인정도 하지 않는 둘의 불협화음 관계를 알고 있어야하니까요. 원작에서 신현철에게 고전하는 채치수와, 그런 채치수에게 도미와 가자미 비유를 하는 변덕규의 일화도 생략되었습니다. 단지 원작의 내용이 빠져서 아쉽다기보다는 이 산왕전이 북산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경기인지 선수 개개인별로 겪는 고뇌가 사라져버린 게 아쉬운 지점이죠.
산왕전 에피소드는 재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북산의 주전선수 다섯명은 모두 재능에 대한 자문자답을 하죠. 정대만이 3점 슛을 그렇게 잘 터트리는 것은 자기가 방황하던 시절 잃어버린 재능을 기어코 되찾고 싶어하는 싸움입니다. 서태웅은 정우성과 일대일로 맞닥트리며 자신의 모든 노력과 재능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질문받습니다. 채치수 역시 신현철이라는 천재를 만나 자신의 꿈과 노력에 대해 질문을 받습니다. 서태웅이 그럼에도 꺾이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면, 채치수는 스스로 자신의 실력이 절대 미치지 않는 상대를 납득하고 체념해버렸다는 게 다른 상황입니다. 강백호는 어리숙한 재능이 드디어 빛을 발하면서 천재라는 허풍이 증명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송태섭을 제외한 모두가 이 재능과 실력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름의 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대결 장면들이 박진감은 넘쳐도 뭐가 그렇게 놀랍거나 드라마틱한지 그 의미가 휘발됩니다.
원작자 이노우에는 송태섭만이 받지 않았던 재능과 노력의 질문을 개인사적인 드라마로 풀어내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송태섭이 어렸을 때 어떻게 농구를 시작했고 농구를 잘했던 친형의 죽음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걸 산왕전과 결합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이야기 두개가 억지로 붙어있는 상황입니다. 송태섭의 과거는 사연의 이야기입니다. 산왕전 경기는 실력의 이야기입니다. 재능과 노력에 대한 산왕전에, 형을 잃은 후 방황하던 송태섭의 인생을 덧붙인 형식이죠. 그래서 이 구성자체가 모순이 됩니다. 이노우에가 이번 극장판으로 산왕전 경기에서 되살리려고 했던 건 정말 순수하게 게임 내에서 펼쳐지는 공방과 그에 피지컬하게 반응하는 선수들의 모습이니까요. 농구경기 자체를 보다 건조하게 살리려했던 영화의 의도와 다르게 산왕전은 기구한 사연을 가진 송태섭의 개인적 드라마로 끌려들어갑니다.
그래서 송태섭의 플래시백에 산왕전 경기의 템포 자체가 자주 끊깁니다. 영화에서 의외로 산왕전 전반전은 금방 끝납니다. 그럼 남은 게임 시간은 딱 후반전 20분입니다. 그런데 그 20분의 경기 동안 계속해서 송태섭의 과거가 끼어듭니다. 당연히 게임 자체의 리얼타임을 영화가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산왕전의 격렬한 호흡이 송태섭의 과거 때문에 느려집니다. 어떤 면에서 영화가 산왕전의 엄청난 재미를 인질 삼아서 송태섭의 평이한 드라마를 풀어내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관객 입장에서의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여러개 떠오릅니다. 원작을 그대로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산왕이 제왕의 아우라를 뽐내며 등장하는 첫씬이 끝나면, 산왕이 얼마나 강팀인지 다른 선수들의 증언을 통해 다시 한번 짚어주는 것은 어땠을까요. 혹은 송태섭의 드라마를 조금 더 줄이고 산왕전의 템포를 최대한 길게 가져갔으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송태섭의 플래시백에 등장하는 과거들이 조금 더 리드미컬한 농구 경기들로 채워지면서 산왕전의 리듬과 이어지게끔 되었으면 어땠을까요.
특히나 아쉬운 것은 송태섭의 드라마가 순전히 개인의 동경과 상실감에만 그치고 있지 그게 농구의 의미, 산왕전의 의미에 전혀 녹아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북산에게 산왕전은 선구 개개인이 홀로 이길 수 없는 "팀플레이"의 의미를 되새기는 드라마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채치수가 신현철에게 일대일로 이기지 못해도, 다른 선수들이 그만큼을 해줄 걸 믿기에 채치수는 절망을 이겨내고 자신을 되찾습니다. 서태웅은 정우성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북산의 다른 선수들에게 패스를 하기 시작합니다. 특히나 서태웅이 강백호에게 패스를 하는 것은 팀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고집을 완전히 꺾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내가 못해도 상대방이 해줄 수 있다는 믿음, 내가 상대방에게 공을 건네기만 하면 뭔가 해줄 거라는 그 믿음이 송태섭의 개인적 드라마에도 있었으면 드라마적으로라도 산왕전은 훨씬 더 꽉찬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았었을까요. 송태섭의 과거사는 형으로부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별과 아들로서의 책임감을 갑자기 '패스를 받은'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풀어갔을 때 송태섭의 돌파와 패스가 산왕전에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불어넣어줬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농구도 혼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요. 산왕전은 송태섭에게 평생 동경의 대상이었던 형을 투영한 상대방을 이겨내는 경기인 동시에, 형의 꿈을 지고 형과 함께 농구를 하며 최강의 상대를 이겨나가는 경기가 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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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굉장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원작과 연결되는 의의라면, 농구 게임을 비로서 수평적 운동으로 전환했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만화 원작에서는 코트에서 벌어지는 수평적 운동이 그렇게 대두되지 않습니다. 결정적 장면이 되는 슛이나 리바운드를 강조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만 그려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농구라는 운동이 우우 하고 몰려가서 펄쩍 뛰는 것이 전부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드리블을 하며 공을 몰고 가는 것, 혹은 그 드리블로 상대를 속이거나 돌파해가는 것, 그리고 옆의 상대에게 공을 패스해주는 것... 이런 것들이 슛 자체로 이어지는 과정이 농구의 큰 부분일 것입니다. 원작에서는 만화적 매체의 한계 때문에 선수들이 수직으로 도약하는 장면들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이번 영화에서는 앞뒤옆으로 뛰어다니고 공이 왔다갔다는 하는 장면이 역동적으로 그려집니다. 어쩌면 이런 운동성 때문에 송태섭이 주인공으로 선택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마지막 역적은 위해 쫓아가는 씬은 원작이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속도를 담고 있습니다. 8초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선수들이 얼마나 재빠르게 움직이고 자신을 재촉하는지, 그 긴박한 순간에 패스를 하는 게 얼마나 의외의 선택인지가 여실히 느껴지죠. 이런 스포츠 만화에서 실시간의 움직임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야말로 이번 작품이 가지고 있는 스포츠 장르로서의 최고의 미덕일 것입니다. 모든 음성과 음악이 사라져버리는 그 연출 또한 소리가 담겨있지 않은 만화적 한계를 영화적으로 뛰어넘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서사적 흐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작이 갖고 있는 스포츠로서의 속도감과 드라마가 워낙 대단하기에, 원작 팬이라면 당연히 놓치지 말아야하고 원작에 익숙치 않은 분들이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아주 완벽하지는 않아도 장점이 워낙 두드러지는 작품인 것도 올라운더들이 아니라 장단이 뚜렷한 선수들이 모인 북산팀의 모습과 좀 닮아있는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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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상입니다.
보기 전에 봤던 감상평들이 얘기하던 것보다 훨씬 원작의 중요성이 큰 이야기라서 원작팬이거나 최소한 원작을 봤던 사람들이 아니면
굉장히 많은 걸 놓칠 수 밖에 없는 구조의 영화였습니다.
차라리 매버릭은 1편도 한 편 짜리 영화였고 사연이랄 것도 심플했고 주연도 하나지만
이 영화는 송태섭 주연이라고 해도 각각의 사연이 있는 팀원들에 심지어 상대팀의 서사도 얄팍하나마 있는 원작이다보니
니들도 다알잖아 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너무 많았죠.
모르고 봐도 재밌을 수야 있지만 느끼는 정보량이 너무 다를 것이 뻔하죠.
매버릭은 중요한 포인트는 대부분 매버릭에서 다뤄주기 때문에 그냥 영화의 간단한 서사를 따라서 스펙타클에 몸을 내맡기면 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수평질주의 쾌감을 보여줬죠.
속도감과 박력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다 수비를 제치고 튀어나가는 장면이었다는 건 우연이 아닌 연출의 방향성이었다고 보입니다.
아무래도 만화는 컷으로 표현을 해야하니 점프의 정점, 임팩트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으로 연출의 방향을 잡지만
애니메이션은 동세의 순간이 아닌 연속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농알못이라서 농달알분들의 감상은 다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만)
그리고 이런 속도전을 장해하는 건 말씀하신 송태섭의 과거회상이 너무 많이 흐름을 깨저린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도 어쩌면 감독을 한 이노우에가 만화가로 오래 활동을 해서 회당 연출에 익숙해서 생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만화에선 한회 빡세게 농구를 하고 임팩트 순간 회가 끝나고 다음 주엔 과거가 살짝 나오고 다시 경기로 돌아오는 그런 연출이란거죠.
그게 주간연재에선 괜찮은 장식이지만 2시간짜리 영화에선 전체의 흐름을 깨는 결과가 되는거죠.
비슷한 사례로 최근의 웹툰이나 웹소의 작법은 일일연재라는 스케줄에 특화된 스타일의 서사를 전개할 수 밖에 없어서
이걸 다른 미디어로 옮길 땐 필히 새로운 작법으로 각색을 해서 서사를 옮길 필요가 있죠.
그런데 이게 좀 안맞았던 것 같습니다. 장면의 미장센은 둘째치고 전체흐름이 루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전 송태섭의 과거, 아니 강백호, 서태웅의 과거도 사실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그런 신파과거를 넣어서 뭐 어쩌란건가 싶기도 하고요.
암튼 중언부언 줄이고 한 줄로 하면
추억을 극장에서 본 걸로 만족하지만 타인에게 추천하려면 전 먼저 슬램덩크를 잘아는 사람인지 물어보고 추천할 것 같다는 정도입니다.
모바일로 적다보니 오타도 많고 글 흐름도 이상하지만 수정하려니 역시 모바일이라 어렵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