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테러리스트, 횡설수설

2010.08.07 18:29

LH 조회 수:2551

 

앞에서 모노님의 글 "김구는 테러리스트인가." 라는 글을 보고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서술했습니다.

아까는 약속이 있어서 급히 나가야 했기 때문에 댓글을 날려썼습니다만.
다녀왔더니 이제는 피곤해서 못 쓰겠습니다...

 

신중하게 쓰지 못하는 글이라 죄송합니다만. 일단 그 문장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 지를 순서를 붙여 정리해봤습니다.


1. 너무 어렵습니다. 

김구는 테러리스트인가? 라고 물음이 던져진다면 그저 예, 아니오로 짧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당시의 사회상, 김구의 개인사, 그리고 전 세계를 아우르고 있던 제국주의 및 여기에 대한 저항의 문제 역시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아는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할 때, 저는 몇 가지 조건을 설정해 둡니다.
내가 그 주제를 잘 알고 있는가, 대상자의 지적 수준 및 관심이 무엇이냐, 등등.
지적수준이라고 하면 좀 안 좋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간단히 말해 눈높이입니다. 어느 단계까지의 지식을 이해할 수 있는가는 지식을 전달할 때 정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조건입니다.

이를테면 역사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 가지게 되는 지식 수준과 관심이 어떤 것일까요.

 

"송시열이 정말 나쁜 사람인가?"
"드라마에 나오는 게 진짜냐?"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들에게 조선 후기 산림의 특징과 당파의 계보, 사림의 득세 등등을 설명한다면 2분만에 상대방의 뇌파를 알파파로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지식을 전달하려고 한 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하물며 지금 갓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김구는 테러리스트"라는 문장 하나를 던져주는 것은, 그 저변에 깔려있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항일 전선의 복잡한 사정과 테러리즘 및 아나키스트 등등의 모든 제반 지식을 습득하고 계속된 토론 및 생각을 통해 자신의 확고한 역사관을 가지고, 또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며 경청할 수 있는 태도마저 갖추라는 소리나 다름 없습니다.

지식은 상대방에게 쓸데없는 오해 없이 정확하게 전달했을 때 비로소 가치를 가집니다.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건 이제 엄마젖 먹는 아이에게 프랑스 정식을 먹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지요.
필요한 건 이유식이지 진수성찬이 아닙니다.

 

2, 학술의 세계와 일상의 용어는 엄연히 다릅니다.

어쩌면 1번의 문제는 바로 이 때문에 벌어집니다. 국어사전이나 학술적인 용어로 테러리스트의 의미가 어떻다 한들, 그 단어가 어떤 사회적인 함의를 가지고 통용되고 있는가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금 테러리스트는 거의 대부분의 세계에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통용되고 있습니다.
테러리스트라던가 기타등등 새로운 교과서에서 문제된 부분은 논문에 실려있다면야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테지만, 이것이 교과서이기에 문제가 됩니다.
 아무 이유없는 해프닝이 사회를 뒤흔드는 상징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이는 굳이 학술적인 용어 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적용되는 바입니다.
설령 그럴 의도가 전혀 없더라도 말 한 두 마디가 오해를 불러 분규를 겪는 일은 한 번 쯤은 겪어보셨을 겁니다.

하물며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라면, 비판을 목적으로 그 단어를 썼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다른 용어로 대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물론 테러리스트의 정의와 당시 시대적인 특수성과 기타등등의 가치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만. 말했듯이 그런 공정함과 집요함을 사회 모든 사람들에게 갖추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교과서는 가치중립적인 논문이 아니고,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매체도 아닙니다.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지 못했을 뿐더러, 자칫 오해와 논란을 야기할(게 뻔한) 내용이 교과서에 실려봤자 더 큰 혼란을 가중할 뿐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문구를 보았을 때는 분노부터 먼저하지, 그 내막과 논리과정의 추이를 밟아가며 고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해야하는 건 역사를 업으로 삼은 학자들이지요.

 

3. 어쩌면 이것은 원론적인 문제입니다만.
우리가 국사라는 학문을 가르칠 때 무엇을 기대합니까? 이걸 알고 배워서 상식을 늘리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기에 교과서로 만들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걸 생각한다면 김구는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되지요.
전세계의 역사교과서는 가장 우익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학술적인 공정함과 중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치찬란합니다)

 

사실 새로운 교과서 자체가 - 비록 그걸 만드는 동안 온갖 무리수와 강행이 있었고 거기에는 불쾌하게 생각합니다만 - 학술적인 측면에서는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너무 어렵고, 공감을 일으키기 어려우며 오해와 분란을 야기할 수 있기에 교과서에 들어갈 내용으로는 부적합합니다.


 

결론 : 졸립니다.

 

P.S : 이번 교과서 집필진이 어떤 분들인지 잘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꼰대교과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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