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12 09:45
라민 바흐라니의 단편영화 [플라스틱 백]은 환경보호 메시지를 담은 공익 광고입니다.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썩지 않는 비닐 봉지를 만들지 맙시다. 일단 환경에 해롭습니다. 그리고 그 봉지는 우리가 생각 없이 준 불멸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며 괴로워 할 것입니다.
이 주제는 영화 속에서 완벽하게 진지합니다. 바흐라니가 주인공인 비닐 봉지의 내레이션을 위해 베르너 헤르조크를 기용했을 때부터 그 괴상한 진지함은 정해진 거죠. 그의 독일어 억양이 섞인 느리고 진중한 영어 내레이션이 들리기 시작하면, 관객들은 이 비닐 봉지 철학자의 이야기를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주인을 찾으러 나서는 무생물이나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 같습니다. 주인공인 비닐 봉지는 쇼핑 센터에서 물건을 담아가기 위해 자신을 선택한 여자를 창조주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비닐 봉지를 수차례 재활용한 뒤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매립장에서 탈출한 비닐 봉지는 창조주를 만나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나는데, 그 여정 중 봉지는 자신의 맹목적인 신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세상과 신, 내세,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묵상합니다.
앞에서 전 영화의 완벽한 진지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비닐 봉지의 묵상이 신과 존재에 집착하는 서구 철학사의 패러디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비닐 봉지가 그 익숙한 이야기를 따른다고 진지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요. 오히려 그런 반복과 패러디는 비닐 봉지의 비극적 숙명을 더 강화시킵니다. 그의 고민은 물리적 불멸과 마찬가지로 결코 그가 빠져나올 수 없는 실존적 감옥과 같습니다.
[플라스틱 백]은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알베르 라모리스의 [빨간 풍선]과 견줄만 해요. 컴퓨터 그래픽 없이 오로지 바람과 날아가는 플라스틱 백만을 이용한 작품인데도, 영화는 특수효과가 얼마나 강렬한 시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런 시는 종종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전 최근에 이 영화만큼 섹스신을 아름답게 그린 작품을 본 적이 없어요. (10/04/10)
★★★★
기타등등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감독: Ramin Bahrani 출연: Werner Herzog, Barbara Wee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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