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와 "민"심

2024.06.03 22:22

Sonny 조회 수:630

@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 바랍니다.


민희진의 1차 기자회견 이후 뉴진스의 버블검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버블검은 민희진 특유의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미감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 뉴진스의 팬들이 이 뮤직비디오를 더 특별하게 보는 것은 당연했다. 아련한 노스텔지어를 담은 화면은, 이것이 뉴진스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건드렸다. 많은 이들은 "수납"이라는 단어를 꺼내며 뉴진스의 암울한 미래를 단정지었다. 

방시혁은 걸그룹 운영에 있어서 호인도 능력자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자사 레이블의 다른 여자아이돌의 활동을 중지해놓았고 해당멤버는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많은 이들은 아일릿과 르세라핌이라는 방시혁의 음악적 "친딸"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는 의혹을 품었다. 이런 정황에서 민희진 때문에 찍힌 뉴진스가 무사히 활동을 이어갈 거란 보장은 거의 없었다. 혹은 방시혁이 직접 손을 대면서 뭔가를 망쳐버리는, 단명 혹은 오염의 나쁘거나 더 나쁜 선택지만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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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검 뮤직비디오에 이상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민희진의 기자회견 이후 4050, 그 이상의 세대들이 댓글을 달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다거나, 뉴진스를 노래만 알고 있었다거나, 기자회견으로 처음 관심을 갖고 뮤직비디오를 찾아봤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었다. 뉴진스는 본질적으로 1020을 소비자로 노리는 아이돌이었고 이미 팬층은 거의 다 발굴된 것 같았다. 레트로 감성의 효과로만 보기에 나이든 팬들의 등장은 너무 늦었고 또 민희진의 기자회견 이후라는 점에서만 시간적으로 정확했다. "삼촌"과 "이모"팬, "큰아빠"와 "큰엄마"들이 열성적으로 뉴진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왜 뉴진스의 팬들은 갑자기 세대적으로 확장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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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과 방시혁의 갈등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일방적 피해자라기에 민희진이 어떤 계획을 꾸몄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자회견에서 뉴진스를 언급하며 민희진이 흘린 눈물은 어떤 사람들을 건드렸다. 방시혁이 마녀를 보여주려고 하는데 누군가는 거기서 '엄마'를 보았다. 이제 민희진의 옳고 그름은 두번째 문제였다. 이것은 구도의 문제였다. 민희진을 껄끄러워하는 사람들조차 뉴진스가 연좌제를 당해선 안된다고 믿었다. 뉴진스가 아무리 씩씩해도 누군가는 이들의 그림자를 걱정했다.  


방시혁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민희진을 원하는 대로 욕보이고, 쫓아내고, 뉴진스를 자기가 거둬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민희진이 마녀라는 기사를 터트리는 순간, 방시혁은 민희진뿐 아니라 뉴진스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말았다. 마녀를 엄마로 둔 딸들, 엄마가 마녀라는 이유로 헤어져야 하는 딸들, 그리고 곧 유폐되거나 날개를 뜯겨야 하는 딸들. 이 순간 방시혁은 억압자가 되었고 뉴진스는 핍박받는 딸들이 되었다. 


민희진은 직접 소리내어 말했다. 자기가 콩쥐라고. 이것은 당연히 뉴진스에게도 연계되는 정체성이었다. 뉴진스가 콩쥐였다. 세상 어느 누구도 차별을 받으며 씩씩하게 일하는 콩쥐를 미워할 수 없다. 그리고 뉴진스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정교한 소녀 페티시즘을 가진 (소아성애가 아니다. 이 글을 오해할까봐 못박아놓는다) 민희진이 직접 발탁하고 길러낸 아이들이다. 뉴진스는 한국에서 제일 예쁘고 재능있고 성실하고 착한 콩쥐들이다. 뉴진스는 거구의 악당에게 위협을 당할 때조차 반짝임을 잃지 않는 요정이 되었다. 방시혁은 자신의 분노를 민희진과 뉴진스에 관심없는 몇몇 남자들에게만 설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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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지 못한 것은, 죽을 수 없던 것으로 되돌아온다. 무덤에 완전히 묻지 못하면 그것은 흙더미를 깨부수며 기어올라온다. 방시혁은 뉴진스를 동정받는 존재로 만들었고 민희진을 불사의 존재로 만들었다. 민희진이 살아돌아오자 수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이 케이팝의 세계에 관련없는 남자들만이 욕지거리와 침을 뱉었다. 방시혁은 스스로 최악의 악몽을 그려내고 말았다. 거구의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들을 하대하며 괴롭히다가 자신만 망신을 당한다는, 이런 이야기는 너무 완벽한 디즈니 스타일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이브 대 민희진의 갈등에서 사람들은 크고 힘센 남자와 그에 굴복하지 않는 여자들의 구도를 찾아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딸들이 엄마와 재회하는 구도에 스스로 빠져든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아름답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민희진과 방시혁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서있는 것이 뉴진스라면? 뉴진스는 원래도 현 세대 걸그룹 중 제일 인기있는 그룹이었다. 뉴진스가 별일 없이 그 상태를 유지했다면, 지금처럼 '애틋한' 존재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미적 표현에 불과하던 뮤직비디오의 노스텔지어는 이제 뉴진스의 존재로 증명한 실화 기반의 질감마저 부여한다. 50대와 60대조차도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는 존재가 되려고 뉴진스에게 지금 이 시련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 대학축제마다 뉴진스를 향한 수많은 떼창이 이어지고 몇만명의 인원이 결집한다. 우리가 지켜주고 싶어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서사의 주인공이다. 뉴진스가 주인공인 이야기의 두번째 챕터가 이제 막 시작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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