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 시대> 중 역시 유태교 부분 (기원전 이야기이므로 기독교는 성립되기 전임-_-~)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그들의 땅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몇몇 예언자들이나 주요한 사람들에게 특정한 신이 내렸고 (무당이 신내림 받는 것 마냥 예언자들이 신내림을 받습니다. 신을 받기 싫어도 신이 몸과 마음을 지배해버려서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신의 의지로 끌려다니는 것도 비슷하더군요. ..-_-'') 다른 모든 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신 하나만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생소한 생각을 오랜 시간에 걸쳐 정례화 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당시에는 말도 안 되며, 심지어 신성 모독이기 까지 했던  '한 신만 섬겨야 한다'는 사상을 현실화시키려고 그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이유는 '그들(몇몇 중요한 사람들)이 실제로 신을 '봤/기/때/문'이랍니다. 사실일지 아닐지는 논하기 힘들지만, 하여간 그런 것에 준하는 파워풀한 자극이 있지 않았으면 그런 생소한 전례가 새로 조직되고 정착되고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그런 유일신의 전통을 하나 둘 만들어가는 와중에, 그들은 많은 고난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고난, 말도 안되고 의미도 없고 심지어 의롭고 착한 사람들마저 다 겪게 되는 끔찍한 고난을, 그들의 '정의롭고 의로우며 전지한 신'이라는 개념과 조화시키기 위해 자신(과 민족)의 모든 것을 건 혼신의 노력들을 기울입니다. 그런 수 많은 고민의 결과 각색과 끼어넣기와 짜집기와 편집과 주석과 재해석을 거치며 긴 긴 시간을 걸쳐 창조된 것이 구약이더군요. 그렇다는걸 배우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듣다 보니 '역시 그랬구나..'하는게 실감이 됩니다. 하여간  구약이 괜히 '종교인이든 아니든 한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니었어요. 그만한 가치가 충분해요. 그 창작(?) 배경을 알고 읽으면 비종교인도 충분히 흥미있어하며 읽을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제가 뭔가 정리할까 싶었는데...저 따위가 정리하느니 카렌 암스트롱이 쓴 부분을 직접 옮기는게 훨씬 나을 것 같아서, 서너페이지를 대강 옮깁니다. 심심하시고 할 일 없으신데 잠은 안 오시는 분 중 관심 있으신 분은 읽어보세요. (잼써요-ㅅ-)  대강 요약하면, 외부의 끔찍한 고난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와중에 내면의 영성에서 심오한 중심, 신성한 신, 현존을 발견하였다...뭐 그런.

 

욥기를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그러니까 욥은 '꾹 참고 신을 믿으면 결국 고난은 물러간다'는 이야기거나 '니가 고통받는건 니가 뭘 잘못해서 그래. 교만이 제일 큰 죄란다. 교만한 마음을 접고 회개(뭘?)하라..'라거나...뭐 이런 내용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긴 한건가보죠. 보통 교회에서는 이런 식으로 설교를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래 부터는 축의 시대에서 옮김..

 

 

추방당한 자들의 트라우마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그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성전을 부수고,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시드키야(당시 유다의 왕)는 아들들이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본 뒤에 눈이 뽑혔고, 5천명의 포로와 함께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 기원전 581년에는 세 번째 집단이 또 끌려갔다. 엄청난 고난의 시기였다......

 

(....)

 

예언자 예레미야는 추방당하지 않았다. 반항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 생각하여 일관되게 바빌로니아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 한국인이 일본지배를 지지한 것과 동급-_-) 어떤 예언자들은 야훼가 성전에 살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파괴당할 리 없다고 생각했으나,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그것은 위험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이곳은 야훼의 성전이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이 행실을 고치지 않는다면 야훼는 도시를 파괴할 것이다. (고치더라도 결국  파괴 당했을 것임-_-;;)

 

...  그는 옳았다...즉 사람들이 실제로 있는 그대로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겁이 난다 해도, 모래에 머리를 박고 진실을 마주하기를 거부한다면 영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

 

피난민 가운데 일부는 이제 야훼를 섬길 수가 없었다. 야훼가 바빌로니아의 신 마르두크에게 완전히 패배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빌론 유수를 일컬음) 고대의 민간 설화에 기초한 '욥기'는 망명기에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야훼는 신성한 신들 앞에서 사탄과 흥미로운 내기를 한다. 당시만 해도 사탄은 아직 맹렬한 악의 존재가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아들' 가운데 하나로서 신들의 모임의 정당한 '반대자'였다. 사탄은 야훼가 가장 사랑하는 인간 욥이 한 번도 진정으로 시험을 받은 적이 없으며, 단지 야훼가 그를 보호하고 번영을 허락했기 때문에 선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진 것을 다 잃으면 금세 눈앞에서 야훼를 저주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야훼가 대답했다. "이제 내가 그의 소유를 모두 네 손에 부친다." 사탄은 곧 욥의 소, 양, 낙타, 하인, 자식을 죽였고, 욥은 지저분한 여러 병으로 잇따라 고생을 했다. 결국 욥은 실제로 하느님에게 등을 돌렸고, 사탄은 내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저자는 일련의 긴 시와 이야기로 인간의 고난을 정의롭고, 자비롭고, 전능한 신이라는 개념에 맞추려 한다. 욥의 네 친구는 전통적인 논거들을 모두 동원하여 욥을 위로하려 한다. 야훼는 사악한 자들만 벌할 뿐이다. 우리는 그의 계획을 헤아릴 수 없다. 야훼는 온전히 의로우니 욥이 뭔가 잘못을 한 것이 틀림없다. 이 그럴듯하고 편리한 상투적 주장에 욥은 격분하여, 위러하러 온 친구들이 하느님처럼 행동하여 자신을 잔인하게 괴롭힌다고 비난한다. 야훼를 두고는, 눈에 보이지 않고, 전능하고, 자의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신, 검사 판사 집행자 노릇을 동시에 하는 신과 사리를 따져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마침내 야훼는 욥에게 응답을 하는데, 자신이 그렇게 잔인하게 대했던 사람에게는 아무런 동정심도 보이지 않고, 자신의 화려한 업적에 관해서만 긴 이야기를 늘어놓을 뿐이다. 자신이 땅의 기초를 놓고,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어놓았을 때 욥은 어디 있었는가? 욥은 낚시로 레비아단을 잡거나, 말이 메뚜기처럼 뛰게 하거나, 별자리를 자기 길로 인도할 수 있는가?

 

이 시는 웅장하지만 현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길고 자만에 찬 장광설은 진짜 쟁점은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어째서 무고한 사람들이 그들을 사랑한다고 하는 하느님의 손에 고난을 겪는가? 욥과는 달리 독자는 욥의 고통이 야훼의 초월적인 지혜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단지 경박한 내기의 결과일 뿐임을 알고 있다. 시의 끝에서 욥이 야훼의 과장된 힘의 과시에 완전히 패배하여 자신의 불평을 다 거두어들이고 먼지와 재를 쓰고 회개하자, 아훼는 욥의 건강과 운을 회복해준다.

 

그러나 이미 죽임을 당한 자시고가 하인은 되살려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정의도 보상도 없다.

 

  만일 '욥기'가 실제로 추방자 가운데 한 사람이 쓴 것이라면, 공동체의 일부는 야훼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을 가능서잉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부는 파국에 창의적으로 대응하여 완전히 새로운 종교적 전망을 펼치기 시작했다. 왕실 율법학자들은 계속 이전의 텍스트들을 편집했다. <신명기> 저자들은 불행을 설명하려고 역사에 여러 구절을 보탰고, 사제들은 예배도 신전도 없는 바빌로니아 생활에 맞추어 고대 전승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것, 즉 신전, 왕, 땅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그들은 집 없는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들은 역사를 다시 쓰고, 관습을 고치고, 전통적인 신성한 상징을 근본적으로 혁신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러한 축의 시대의 전망이 전개되는 과정을 젊은 사제 에스겔(에제키엘)의 예언자 인생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에스겔은 일련의 환상을 보았으며, 이것은 그가 괴로운 공포로부터 좀 더 평화롭고 내적인 영성으로 고통스럽게 이행해 갔음을 보여준다. ... 하느님은 불가해한 존재가 되었다. 에스겔이 텔아비브에서 느꼈던 것 만큼이나 이질적이었다. 추방의 트라우마는 <신명기> 저자들이 그린 단정하고 합리적인 하느님을 부수어버렸다. 이제 야훼를 아브라함과 함께 식사를 하던 친구나 신들의 모임을 강력하게 이끄는 왕으로 보기는 불가능했다. 에스겔의 환상은 말이 되지 않았다. 완전히 초월적인 것,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에게 건네진 두루마리에는 <신명기> 저자들의 율법의 서와는 달리 분명한 지침이 적혀있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전혀 없고, 정리되지 않은 슬픔과 고통의 외침 뿐이었다.......에스겔이 전달할 메세지는 협박에 가까웠다. "얼굴에는 쇠가죽을 쓴 고집이 센" 추방자들에게 "듣든 안 듣든 내 말을 전하는 자가 저희 가운데 있다는 것"을 경고할 뿐이었다. 친절이나 위로는 없었다. ..... 그러나 위로도 있었다. 에스겔이 두루마리를 먹고 그 엄청난 슬픔과 공포를 받아들이자, "그것을 받아먹으니 마치 꿀처럼 입에 달았다." 또 야훼가 아무런 위로를 주지 않았다 해도, 추방당한 그의 백성을 찾아왔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성전은 그대로 서 있었지만, 야훼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떠나 추방당한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했다. 에스겔은 나중에 환상에서 야훼가 뒤에 남은 유다 사람들의 우상 숭배와 부도덕 때문에 자신의 도시에서 쫒겨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추방 당한 사람들도 그런 재앙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품지 말아야 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회개하는 것이었고, 어떻게 해서든 바빌로니아에서 제대로 질서 잡힌 생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슬픔의 무게를 온전히 경험하기 전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그들은 이제 정상적인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들의 세계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도 긴장을 풀거나 편안할 수가 없었다. 추방당한 사람들이 이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면, 치유될 수가 없었다. 밝은 면을 보거나 곧 집에 돌아갈 것이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미망에서 벗어나야 했다.

 

... 개혁은 자신의 결점에 대한 객관적이고 분명한 검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에스겔도 추방의 고난이 더 깊은 전망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야훼는 약속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새 마음이 일도록 해주리라. 그들의 몸에 박혔던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피가 통하는 마음을 주리라. 그래서 나의 규정을 따르고 나의 법을 지켜 그대로 실행하도록 만들겠다. 그제야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야훼는 첫 번째 환상에서 에스겔에게 그의 심장을 화석처럼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에스겔이, 그리고 아마도 추방당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도, 고통을 소화하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심장이 부서지는 것을 감수했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적인 존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마 말년의 일이겠지만,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파괴된 뒤 아주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야훼 삼마 "야훼가 거기에 있다!"라고 부르는 도시의 환상을 보았다. ... 예루살렘과 성전은 폐허가 되었지만, 여전히 예언자의 마음에 살아 있으며, 에스겔은 그 신비한 의미를 보았다.(그러니까 외부 물질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 속에 신의 성소를 보았다는..) ... 도시 가운데 성전이 있었다. 성소 밑으로 물이 졸졸 흘러... 주위의 땅을 치유하고 생명을 안겨 주었다...성전은 온 세상의 핵이었다. 그곳에서 신성한 힘이 이스라엘 온 땅과 백성에게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출발점에서 멀어질 수록 신성함은 희석되었다.......인도 사람들이라면 만다라, 즉 명상을 위한 '이콘'이라고 부를만한 것으로서, 신을 중심에 둔 제대로 질서 잡힌 생활의 이미지였다.

 

... 신성함의 동심원을 명상하면서 자신의 '중심'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온전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었을 것이다. 이 추방당한 사람들은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처럼 정신을 엄격하게 분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 만다라를 명상하면서 그들 존재의 핵심에서 현존하는 신을 발견하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287~299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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