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이게 순화된 거면 앞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최소한 극장에서 더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걸 저렇게 밀어붙이네 싶은 좋은 면도 봤지만, 그래도 너무 버겁네요.

압도적인 영화의 폭력성에 짓눌려 독특한 미적 체험을 하기도 했는데, 끝나고 나니 이게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건 아닌가 의심이 들고, 그래서 영화의 폭력성에 대해 이 생각 저 생각 해봅니다.


예전에 양익준의 똥파리가 상을 탄 것을 보고,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어요.

유럽이 자국의 규제를 피해 굴뚝산업을 제3세계로 이전하듯이, 끈적끈적하고 원초적인 날감정과 폭력을 한국에 아웃소싱해서 즐기는 거 아니냐고요.

그때는 그냥 농담이었는데 김기덕 영화를 보니 진지하게 그 쪽으로 이야기 살을 붙여보게 되더라고요.

고의로 심사위원들이 그런다는 음모론은 아니고 예술영화 산업의 세계적 분업이라고 해야 하나요.


중국에 제조업이 들어설 이유가 있듯이, 한국도 피에타 같은 영화를 낳을 토양이 있다고 봅니다.

공공연한 폭력, 여성에 대한 편견과 강압, 어떨 때 보면 엽기적으로 집착하는 모자관계, 인내심인지 피학성인지 모를 수준까지 견디는 사람들을 쥐어짜는 구조 같은 거요.

거기에 김기덕 감독 특유의 날 선 감각과 미감이 얹어져 독특한 영화가 나온 거겠죠.


그런 면에서 피에타는 잘 만든 한국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동시에 이건 한국 사람을 위한 영화라는 의미의 한국 영화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는 내내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면 더 즐겁고 감탄하면서 봤을 거란 생각을 몇 번이나 했으니까요. 

대사 처리나,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방식 같은 것들을 볼 때 그 묘한 유치함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벗어나면서 봤습니다. 희한한 경험이었어요.


한국인이 왜 외국인을 의식한 영화를 만드냐는 식의 힐난은 아니고요.

감각은 펄펄 뛰는데 이야기의 꾸밈새가 하나의 완성품을 낳을 수 없는 탓에 발붙인 곳이, 도발적인 면을 환영한 세계분업 체계의 품이 아닌가 하는 "급진적" 망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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