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리뷰랄라랄라] 청설

2010.06.11 14:57

DJUNA 조회 수:3460

어쩔 수 없이 예쁜 젊은이들이 만나 연애를 하고 갈등하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연애를 하며 끝날 수밖에 없는 '청춘로맨스' 장르 안에서 차별성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청설]은 상당히 멋진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영화는 그 뻔한 이야기를 수화를 통해 합니다. 이 영화의 대사 절반 이상이 수화예요. 그냥 말로 하면 평범하기 짝이 없을 이야기도 수화를 거치니까 재미있어집니다. 보다 무성영화스러워진달까요. 게다가 그 과정 중 은근히 일반 유성영화에서는 당연시 되었던 영화적 장치들이 전혀 새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감동적인 대사를 읊는 동안 뒤에 배경음악이 깔립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영화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오로지 음악만 들린단 말이죠! 느낌이 전혀 달라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요? 당연히 청각장애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하는 도시락 전문점 배달일을 돕고 있는 티엔커는 장애인 올림픽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수영선수 샤오펑을 응원하기 위해 온 동생 양양을 만나 첫눈에 반합니다. 티엔커는 수화를 할 줄 알기 때문에 둘 사이엔 언어 장벽은 없죠. 단지 다른 장애가 있습니다. 일단 양양은 언니를 보살피기 위해 알바 뛰느라 정신없이 바빠요. 티엔커랑 놀 시간이 전혀 없습니다. 잠시 데이트를 하러 나간 동안 언니가 사고를 당한 뒤로는 죄의식 때문에 더 못 만나죠. 티엔커 역시 부모가 청각장애인인 여자친구를 허락해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청설]은 참하고 귀여운 영화입니다. 일단 양양, 티엔커, 샤오펑은 모두 호감가는 젊은이들이에요. 시나리오만 보면 너무 바람직해서 오히려 심심할 수도 있는 애들인데, 여기에 배우들의 개인적 매력이 살짝 녹아드니까 그냥 예쁘네요. 이들의 고민은 단순하고 나이브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한 진실성을 부여받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캐릭터들의 감정에 대해 티끌만큼의 의심도 하지 않고 그냥 몰입합니다. 그만큼 정직한 영화예요. 여기에 위에서도 언급한 수화와 같은 신선한 설정이 들어가니까 뻔한 영화를 본다는 느낌도 확 사라져버리죠. 


단지 영화의 설정 하나는 불만입니다. 왜 그런 걸 넣을 생각이었는지는 짐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 시작 10분만에 정리될 줄 알았던 설정이 끝날 때까지 끄니까 전 좀 지치더군요. 그 때문에 영화의 정직한 매력이 조금 날아가버리기도 했고 결말이 지나치게 길어지기도 했어요. 굳이 그렇게 무리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은 충분히 만족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타등등

1. 착한 사람만 나오는 이 영화에서 저에게 유일한 악당처럼 보였던 사람은 바로 샤오펑과 양양의 아빠였죠. 저런 딸들을 빚과 함께 남겨두고 아프리카로 선교하러 떠나는 건 그냥 직무유기란 말입니다. 


2. 양양이 동전 때문에 티엔커와 싸우다 헤어지는 장면은 [롤러코스터]의 [헐]을 그대로 따온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3. 양양역의 천이한은 김아중을 닮았더군요. 마르고 작고 어리고 조금 조미 닮은 김아중. 특히 45도 각도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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