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러갔습니다. 혼자 보러간 영화가 꽤 있습니다. 아모르, 그녀에게 말해요 (talk to her), 비포 선셋이 생각나네요. 그녀에게 말해요는 큰 극장에서 새해 초에 뒷줄이 앉은 저와 앞줄에 앉은 어느 다른 사람 둘 만이 본 기억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상영하는 때가 적길래 (이틀에 한번 씩 하루에 두번) 아무래도 일주일만 지나도 사라질 것 같아 (이게 대학도시냐?) 그냥 혼자 보러갔습니다. 애 봐줄 사람 찾기가 힘들어서 울로프를 선물이랑 두고요. 상영관에 들어가 사람들이 꽉 찬걸 보고 솔직히 놀랬어요. 상여시간 내내 조용함. 모든 사람들이 굉장히 집중해서 본다는 느낌. 정말 좋더군요. 그럴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야기가 굉장히 빠릅니다. 


첫 시작. 총발. 제 옆에 있던 남성분은 깜짝 놀래서 음료수를 쏫을 뻔. 


많은 평론가들이 히치콕을 이야기 하던데 전 화양연화가 생각나더군요. 차안에서의 장면도 그렇고 중간 중간 들리는 안개도 그렇고. 안개의 전주가 나오면 화양연화에서 냇 킹 콜의 노래가 나오던 장면이 겹치더군요. 


장해준의 살짝 엇나간 어투가 서래의 외국에 배우는 어투와 함께 하니까 하나의 세계를 만들더군요. 스웨덴 사람들은 못느꼈겠죠. 번역이 살짝 거슬리더군요.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줘는 머리를 가져다 줘로 번역되었어요.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는 내가 그렇게 약합니까로. 만만하다는 번역이 쉽지 않겠다 싶긴 하더군요. 


사실 박해일의 영화를 본게 별로 없어요. 대단한 매력을 못느꼈는데, 이 영화 어느 장면에서 서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너무 좋더군요. 유투브를 통해 본, 어느 시상식에서 그가 우는 탕웨이를 바라보는 눈빛이랑 비슷했어요. 


헤어질 결심. 제목이 참 좋다 생각했었는데 그 표현이 쓰이는 것도 좋았어요. 사실 두 사람은 헤어질 사이도 아니죠. 밖의 사람들이 보면 헤어질 거리가 있는 관계이기는 했나요? 그런데 두사람은 모두 확신하죠.  부산에서 '우리의 일을 그렇게 이야기 하지 말아요' 라고 서래가 말할때 해준은 부정하지 않아요. 우리일 무슨일이요 라고 하다가 그 대사 마지막은 당신을 끌어안고 행복하다고 속삭인 일이요? 라고 말하죠. 그일은 정말 이었을 수도 그의 머리속의 일일 수도 있죠. 상관없어요. 아마 서래의 머리에서도 일어났을 테니까요. 나중에 해준이 아내랑 '그래서 사람들이 우릴 싫어요' '우리?''경찰' 이라고 하는 대화를 비교하게 되더군요. 그 결심을 했을 때 해준은 이미 '헤어진'뒤였어요. 그런 의미에서 헤어질 결심은 서래와 서래의 감정이 아니었을 까. 성공하진 못했지만. 


이포에서의 서래는 부산에서의 서래와 다른데 아마 그 이유는 그의 사랑의 고백 때문이겠죠. 내가 언제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냐? 정말 몰라서 묻는 해준의 말에 서래가 보여주는 표정은 정말... 그냥 영화 한편을 만들더군요. 


미결이 되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피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시체도 보여주지 않고 사라지는 서래.


죽음과 감정이 넘치는 영화이더군요. 이번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은 책이 타인의 감정 그리고 작자의 타인에 대한 감정에 대한 기억이라 (왠지 쉽게 번역된 프로스트 읽는 기분) 남들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음은 사나워지고 기운빠지고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앉아서 나즈막하게 안개를 따라 불렀습니다. 아마 아무도 듣지 못했을 거에요. 

....

꿈에 서래를 만났습니다. 밤에 등산할 때 섰던 그 headlamp를 하고. 그 빛이 너무 눈부셔서 잠에서 깼습니다. 

...

영화를 보러가는 길에 저의 가족이 단골인 이탈리아 델리카테스 가게 청년을 지나갔습니다. 가게 주인의 아들인데, 아버지도 아들도 완벽한 스웨덴어를 구사합니다. 다만 아버지는 우리가 이탈리아 사람에게 기대하는 몸짓을 하는 방면 이 청년은 그냥 외향만 이탈리아인입니다. 소위 영화배우 해도 되겠다는 그런 얼굴. 보통 스웨덴 사람을 가질 수 없는 건강한 피부색에 숫이 많은 칠흑같은 웨이브 있는 검은 머리, 밤색의 눈.  그가 갑자기 자전거로 따라와 저를 멈추게 하더니, '시뇨라 제발 잠깐 멈추세요. 제가 사람을 잘못 보고 말했어요. 아까 제가 한말은 잊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어요' 라고 하더군요.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못알아듣는 제 얼굴 표정을 보고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뭔지 모르는 군요! 제가 한 말 못들었어요?" 제가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자 이제 이청년은 자기가 한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한지 어쩔줄 몰라 합니다 제가 소리내어 웃자 그는 조금은 편해진 얼굴로 '제가 지금 정신이 없어요' 라고 하더군요. 


무슨 말을 누구에게 할려고 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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