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6 00:34
- 2020년작입니다. 1시간 46분이구요. 장르는 그냥 '드라마'에요. 스포일러랄 게 없는 이야기라 그냥 편하게 막 씁니다.
(확실히 대세는 인스타로 넘어간지 한참 됐죠. 제 페북 친구들 중 요즘 꾸준히 글 올리는 사람은 대략 40대 이상들 뿐...;)
- '실비아'라는 피트니스 강사 컨셉 인스타 유명인의 일상을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으로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에너지 넘치는 오프라인 피트니스 이벤트 장면으로 시작해서 쓸쓸하고 좀 궁상맞은 '나 혼자 산다' 느낌으로 흘러가며 그 와중에 스토커를 마주친다거나, 기억도 안 나는 옛 친구(라고 본인은 주장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는)에게 붙들려 한참 엄한 인생 이야길 듣게 된다거나, 엄마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다거나 하는 소소한 일상들이 쭉 흘러 나오구요. 막판엔 좀 거칠고 위험한 이벤트가 지나간 후에 생방송에 출연해 예상치 못했던 난감한 질문을 받고... 뭐 그냥 이게 다에요. 그러니까 sns에 집착하는 현대인들, 그 중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한 '인플루언서'의 생활과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그런 드라마입니다.
(아주 막 에너지가 폭발하고 긍정과 행복이 넘치는 오프닝으로 시작합니다만)
- 제가 뭘 착각했는진 대충 짐작이 가시겠죠. ㅋㅋㅋ 시놉시스와 포스터 이미지만 보고선 당연히 호러/스릴러일 줄 알고 봤거든요. 컨셉이 그렇잖아요. sns에 목숨 걸고 어떻게든 가식적으로 멋지게 사는 모습을 전시하면서 성공과 더 큰 관심에 집착하는 독신 녀성! 그의 곁에 나타나는 사실은 딱 한 번 지나가듯 언급만 되지만 라이벌과 스토커!! 그녀의 집착이 낳을 피투성이 결과물!!! 피투성이는 한 번 나오긴 합니다 뭐 이런 영화일 줄 기대하고 틀었는데... 아니 이런. 이렇게 궁서체로 진지한 드라마라니. ㅋㅋㅋㅋㅋ
(이렇게 곧바로 쭈굴쭈굴... 그리고 남은 런닝타임 내내 이런 모습만 보게 됩니다. ㅋㅋ)
- 그러니까 설정이 딱 뻔하지 않습니까? 영화의 내용을 보면 이 실비아씨는 정말 궁상맞도록 고독한 사람입니다. 가까운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고 유일한 가족인 엄마와는 사이가 안 좋아요. 이 양반의 sns 성공과 인기에 대한 집착은 결국 그런 고독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팔로워가 오르고 올라 60만이 넘어도 결국 그 갈증은 채워지지 않아서 혼자 불행해지구요. 이런 상황을 쭉 하나씩 짚어가며 보여주고 있다면 그 영화가 결말에서 던져줄 메시지가 무엇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생을 살아라.' 내지는 '온라인 상의 교류는 헛되고 헛되며...' 뭐 이런 것 아니겠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구체적인 대사까진 언급하지 않겠지만 암튼 영화는 주인공 실비아의 발언을 통해 이런 류의 삶에 연민과 더불어 공감을 표하며 끝이 납니다.
(실비아에겐 현실 세계에서 긍정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엄마와의 관계는 거의 최악이구요.)
사실 제가 적은 마지막 문장은 좀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요. 이런 삶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는 그 반대에 가까워요. 요즘 세상을 휩쓸고 있는 그런 '인플루언서' 문화에 대해 상당히 건조하게 접근하면서 부정적인 부분, 비판 받을만한 부분들을 아주 심각하게 보여주거든요. 설사 거기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긍정한다 하더라도 그 문화 자체에는 비판적이라는 거.
앞서 말한 마지막 장면도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실비아의 발언을 보고서 그걸 뭔가 감동적인 '성장'의 순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냥 인스타에 인생 몰빵한 사람의 정신 승리 퍼포먼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과장 않고 이런 비슷한 구도의 사진을 이미 수백번은 넘게 본 것 같습니다. ㅋㅋ)
- 근데 생각해보면 그래요. 이건 영화랑 관계 없는 그냥 제 생각입니다만.
현생을 살아라. 그 안의 관계는 진짜 관계가 아니란다. 뭐 말은 쉽죠. 근데 소셜 네트워크에 빠져들어 그 곳에서 새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런 걸 몰라서 그러는 걸까요. 현생이 너무 빡세서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 사는 데 별 어려움은 없지만 현생보다 그 쪽에 더 소질이 있어서 그런 사람들도 있겠죠. 그런 사람들에게 현생이 어쩌니 운운하는 건 마치 고딩들 앞에 앉혀 놓고 국영수 위주로 빡세게 공부하면 다 잘 될 거란다. 라고 훈수 두는 영양가 없는 꼰대질이랑 다를 게 없을 수 있겠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뭐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뭣보다 영화의 주인공 실비아는 분명히 그런 사람입니다. 현실에서보다 인스타 창 안에서 더 빛나고. 또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해요. 게다가 그걸로 돈도 잘 법니다(...) 그렇다면 굳이 이런 사람들을 붙들고 잔소리를 할 이유가 뭐가 있나요.
(하지만 잠자리에서 불 끄고 핸드폰 화면을 보는 것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 막 재밌는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국적이 폴란드/스웨덴인데 그 특유의 '노르딕'스런 퍽퍽함이 있구요. 내용 자체도 대부분 실비아의 바삭바삭한 현생 모습들을 큰 사건 없이 따라가는 식이라 흥미진진하고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어요. 유머는 약에 쓸래도 없는 수준이구요.
솔직히 결말 직전까진 '아 뭐 이런 뻔한 얘길 이렇게 정색하고 하고 있나...' 싶었지만 마지막 장면이 좋았어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빠져나가서 뭔가 좀 생각해 볼 여지를 던져주는 것도 좋았고, 그냥 그 장면 연출이 꽤 좋았습니다. 배우 연기도 아주 훌륭했구요. 그래서 호의적인 기분으로 마무리하긴 했는데...
그래도 막 재밌는 영화는 아닙니다. ㅋㅋㅋㅋ 그러니 이런 주제를 다룬 이야기에 흥미 있는 분들만 보셔도 되겠습니다. 끝.
+ 근데 다 보고 나서 돌이켜보니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들 같은 데서 sns에 전념하는 사람들을 뭔가 결핍된 사람으로 묘사하는 건 좀 애매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아는 젊은이들 중에 실제로 페북, 인스타 빡세게 해서 결국 그걸로 성공한 경우가 둘 정도 있어요. 정말 '차단해 버릴까...' 했을 정도로 빡세게 하루 종일 영상 수십개 올리고 라이브 하고 사진 올리고 하면서 활동하더니 결국 그걸로 돈 와방 벌어서 틈틈이 플렉스(...) 게시물도 올리며 잘 삽니다. ㅋㅋ 근데 얘들은 실비아와 다르게 어릴 적부터 핵인싸 캐릭터였고 집안도 유복하구요. 그냥 그게 적성에 맞는 경우였던 거죠. 꼭 본인의 현생에 불만이 있어야만 인스타 지박령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
++ 아. 배우님 칭찬을 빼먹을 뻔 했군요. 이전까지 단편 영화 두어편과 티비 시리즈 단역을 몇 번 해 본 게 전부인 상태로 나이 30이 되어 이 영화로 첫 주연을 맡은 분인데요. 되게 잘 합니다. 보는 내내 이미 널리 연기력을 인정 받는 경력 쩌는 폴란드 유명 배우일 거라 생각했어요. ㅋㅋㅋ 세상엔 참 재능있는 사람도 많죠.
2023.01.16 02:10
2023.01.16 02:57
임팩트는 그 스토커와 피트니스 파트너 관련 장면들이 가장 강했지만 제일 흥미로웠던 건 그 옛 친구(?) 만나는 장면이랑 엄마 생일 잔치 장면이었어요. 그 친구 만나는 부분은 볼 때는 그냥 넘겼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정말 친구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눈물 영상 보고 감동 받은 팬이 어거지로 붙들고 자기 얘기 들려주고 싶어서 거짓말 하고, 주인공은 또 자기 위치상 차마 의심하는 말을 못 하고. 그런 상황으로 생각하면 좀 흥미로워지던. sns 유명세가 만들어내는 괴상한 상황들의 예시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엄마 생일 잔치 장면은, 거기에서 주인공이 계속 관종 본능(...)을 억제 못해서 엄마 기분을 망쳐 버리는 게 재밌었어요. 게다가 가만 보면 엄마도 딸 못지 않게 관심에 목마르신 분이라 웃겼... ㅋㅋㅋ
엔딩 장면은 뭐. 감독의 장면 연출을 봐도 그렇고 정신 승리보단 그래도 뭔가 긍정적인 깨달음을 얻었다는 쪽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더라구요. 전자로 해석해도 반박할 말은 없지만, 그냥 제 느낌이요. 하하.
이 영화가 깐느 초청도 받고 나름 꽤 주목을 받은 덕을 봤는지 이후로 필모그래피가 좀 많아지셨더라구요. 주연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잘 하신 분이니 오래오래 롱런하시길.
2023.01.16 10:23
옛 친구는 그런 쪽으로 의심은 못해봤는데 말씀을 듣고나니 혹시? 하는 부분도 있네요.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자기는 외로운데 엄마는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더 괜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참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한 작품이었어요.
2023.01.16 11:36
그런 의심을 하고 나서 다시 확인해봤더니 그 친구(?)가 실비아에게 둘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정보를 아무 것도 말을 안 하더라구요. 자기 이름도 얘기 안 하고, '같이 학교 다니던 시절' 이란 말은 하지만 학교 이름이든 둘이 어떤 관계였는지든 아무 말도 안 하고 자기 남편 이름이랑 유산 경험 얘기만 하고 헤어져요.
그리고 좀 쌩뚱맞은 부분인데. 살짝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하얀 글자로 적을게요.
그 자칭 '옛친구'의 남편 이름이 마지막에 병원에서 밝혀지는 스토커 이름과 같습니다(...) 인스타 라이브로 사과할 땐 다른 이름을 말했는데, 마지막에 병원에서 접수 직원이 신분증 보고 말하는 이름이 그래요.
2023.01.16 13:03
????!!!!! 정말 쌩뚱맞으면서 충격적이네요. 그냥 우연으로 그렇게 설정했을 것 같지는 않고 말이죠;;;
2023.01.16 15:20
전 싸이 미니홈피때가 가장 즐거운 SNS 생활이었는데 페북의 시대가 오면서 막~~~만남을 강요당하고,
친구맺은 사람들 소식은 시도때도없이 미친듯이 폭주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과 친추를 하다가 질렸죠.
"알 수도 있는 사람"은 왜 추천해주는지 도무지. 페북 아이디는 좋아하는 팟캐때문에 유지중이에요.
그보다 더 지나니까 "다 의미없다" 직접 만나든가, 카톡이나 전화통화라도 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면
딱히 SNS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을만큼 제가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지도 않고 심정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영화는 꽤 흥미 포인트가 있어보이는데,,,,앗, 할리우드가 아니네요. 북유럽 영화들 건조한 느낌이 너무 생소하니까요.
저는 일단 포스터의 붉은 배경과 주인공의 의상의 매치가 강렬해서 눈에 들어오길래 대충 정보를 미리 찾아봐서 호러/스릴러일 것이라고 짐작하진 않았습니다 ㅎㅎ 그냥 대충 SNS에서 잘나가지만 현실은 공허한 주인공의 캐릭터 스터디가 될 것 같더라구요. SNS 인플루언서가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 캐릭터로 등장하기 시작한지도 이제 꽤 된 것 같은데 대부분 코믹하게 풍자되는 경우가 많았다고나 할까요? 얼마 전 글래스 어니언에서도 그랬는데 제법 진지하게 궁서체로 다루는 작품을 보니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자기 외롭다고 눈물 글썽이는 영상 올려서 바이럴이 되버리는 거나 엄마 축하해주러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뻘쭘한 시츄에이션 만들어버리는 씬들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스토커가 등장하는 불쾌한 장면이나 나중에 누구랑 엮여서 그게 호러/스릴러적으로 충격적인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도 있긴 했죠. 그 플롯의 결말을 내는 방식이 나름 신선했어요. 엔딩은 정말 말씀대로 쟤 정신승리하는 거 아냐? 이렇게 볼 수도 있겠는데 저는 주인공이 그런 일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기 삶에서 긍정적인 부분들을 얻을 수 있는 곳도 여기이다보니 그냥 다 받아들였다?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배우님이 이게 첫 주연이었군요? 저는 너무 리얼하게 느껴지게 잘해서 실제 인플루언서를 섭외해서 연기를 시켰나 그런 추측도 했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