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가 그런 상황입니다.

 

첨엔 별 생각없이 맡은 일인데... (읽고 리뷰 쓰기)

이거 읽다보니까 재미없다 지루하다의 차원이 아니라 그냥 제가 아는 누군가가 자꾸 남자주인공하고 오버랩이 돼요.

소설 자체가 그 남자의 생애를 그리고 있는 건데.. 어릴적부터 늙은 남자가 될때까지.

그걸 회상형식과 현재의 독백을 마구 교차해가면서 글이 진행되는데

 

전반적으로 딱히 매력적이라거나 완성도 높은 소설은 아닙니다. 물론 아주 졸렬한 수준도 아니고요.

그놈의 '순문학'이라면 순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정도는 됩니다.

 

이 남자의 첫 여자, 첫 아내, 딸, 지금의 애인 뭐 이런 존재가 지구를 도는 달처럼 떠돌아다니고요.

세파에 찌든 수컷 예술가의 자기미화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이런가... 하며 괴로워하다가

문득 어느 시점에서 (중간 이후부터인가...) 깨닫고 만 거예요.

 

 

예전에 A라는 남자를 사귄 적이 있었습니다. 짧게 끝났던 연애였고 별로 좋은 기억으로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A도 얼치기 예술가인데 실상은 알바로 생활하며 '나를 몰라주는 이 세상은 개똥같아서 그래'라는 마인드였어요.

성공한 같은 분야의 예술가를 향해 드러내는 선망과 질투,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은 턱없이 약하고

세상에 대한 반항심은 큰 반면에 요상하게도 권위에의 복종은 잘 느껴지는 등 아주 상반된 감정의 응축체였던

그런 이미지로 제게는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근데 말이에요.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인 늙은 남자가 A하고 너무 닮아 있는 거예요.

만약에 A가 일이 잘 풀려서 예술가로 성공했다면, 그래서 서서히 나이를 먹어 그 바닥에서 경력을 잘 쌓고나면

말년에 이 남자주인공 같은 헛소리를 해대면서 자기 인생과 자기의 주변인을 회상하고 있을 것 같아요,.

얼핏 보기엔 자기 비하를 하는 것 같은데 본질은 무섭도록 자기합리화와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거죠.

진짜 소름 돋도록 흡사하거든요.

 

 

저는 지금도 A가 뭐하고 사는지 압니다. 여전히 성공하지 못하고 발버둥치고 있죠.

그리고 자기의 문제점이 뭐지 모르고 자기가 얼핏 보면 나름 인디 예술가의 멋을 지녔더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에게 얼마나 형편없어 보이는지도 인식 못하고 있더군요.

메인스트림에 진입하기를 욕망하면서도 막상 절박하게 달려들 용기는 못내고 비척비척 제스처만 취하고 살아요.

저는 사람의 과거가 현재를 규정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사람의 현재가 미래를 규정한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A 곁을 떠난 거지요.

 

 

그래도 억지로 참고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 해요. A 생각이 나서 머릿속과 몸이 불쾌해지는 기분을 참아가면서.

그래야 긴 분량의 리뷰를 쓸 테니까요.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안 읽은 책을 읽은 척 하면서 글쓰는 법은 모르거든요.

이 일을 맡은 것을 후회해요. 뒤늦은 일이지만 정말 이런 내용인줄 알았더라면 안 했어요.

 

 

왜 예술가들은 늙어서 유서와 같은 작품 하나를 남기겠다고 아둥바둥하는지도 저는 모르겠어요.

그냥 담백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는데.... 제가 프리마돈나의 기질이 전혀 없는 인간이라 이해를 못하나봐요.

그들은 그 정도의 자의식과 자기애와 자아도취와 몰입... 이런 게 가능했기에 어쨌거나 글을 쓴 거겠죠.

 

그러고보니 이런 식으로 주인공과 작가를 일부러 중첩시키는 소설가 중에서는 오에 겐자부로만 좋아하네요.

근데 그건 제가 오에 라는 인간 자체에 호감을 느끼기 때문일 거예요.

소설가이기 이전에 훌륭한 인간이라면, 그 소설가가 자신이 드러나는 소설을 쓴다고 해도 불편하지 않겠지요.

 

그와 사귈 때,

A가 훌륭한 예술가가 못 되었더라도 저는 아무 상관없었어요.

하지만 좋은 사람, 좋은 남자는 되어주길 바랐지요.

그런데 A가 훌륭한 예술가도, 훌륭한 사람도, 훌륭한 남자도 그 어느 것도 아니며, 앞으로도 못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정말로 벼락같은 각성의 순간) 저는 마구마구 도망갔어요.

 

 

그리고 몰랐는데... 제 친구들은 당시 A와 사귀는 저를 기둥서방 하나 키우고 있다고 봤더랍니다.

남자 보는 눈이 지지리도 없는 년이라고 혀를 차면서요.

아주 나중에 그 사실을 전해듣고 왠지 서글펐지요.

 

모르겠어요. 내 자신이 그런 소리를 들은 게 서글픈 게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 제3자가 보기에는 감정적 착취라든가... 한량을 먹여살리는 노동자 여성쯤으로 규정되는 관계였을까 해서요.

 

 

 

완전 횡설수설이네요.

이 소설 대충 읽고 오늘 밤 안으로 리뷰 써서 보내고 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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