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30 12:01
Happy End, 2017
포스터 문구가 반만 맞는 거 같아요. '올해 가장 우아하고 파격적인 끝'이라니 '파격'일 수는 있겠습니다. 저 포스터의 어린이와 늙은이의 막판 행태를 보면요. 하지만 우아한 거랑은 거리가 멀어요. 영화 보기 전에는 포스터 장소가 집이나 별장에서의 가족 모임인 줄 알았는데 바닷가의 식당이고 이자벨 위뻬르 여사의 약혼 모임이었어요. 다들 그닥 호의없이 어딘가를 누군가를 보네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직전 작품인 '아무르'와 내용이 살짝 연결되는데 영화의 성격은 많이 다릅니다. 전작이 인간의 말년에 대해, 최후의 시간에 대해 실존적으로 고민하는 작품이라고 거칠게 한 줄 요약한다면 이 작품은 프랑스의 한 부르주아 집안을 통해 망해가는 유럽의 모습을 파편적으로 전시하는 영화라고 봤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오래 전에 본 '히든'의 기억이 흐릿하게 나면서 통하는 지점이 있는 듯해 '히든'을 다시 보고 후기를 쓸까, 하다 말았어요. 늘 그렇듯 짧게 '이 영화 봤음' 정도로 메모하려고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는 엄청 지지하는 분들도 있고 불쾌해 하는 분들도 있는 걸로 아는데 저는 영화마다 조금 달랐습니다. '피아니스트, 히든, 아무르'는 좋아하는 쪽으로 가 있고 '하얀 리본'은 좋지 않은 느낌으로 남아 있네요. 다시 보면 어떨런지 모르겠어요. '퍼니 게임'은 그냥 건너 뛰었고요.
영화에서 특별한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데 - 아마 경제적 이유 때문이겠죠 - 삼대가 한 건물에서 지냅니다. 서로를 통해 진심이나 정서적 유대감 같은 건 못 느끼는 것 같고 필요와 습관으로 생활 공간을 함께 하고 있어요. 한참 경제적, 사회적으로 바쁘면서 그 지위를 누리는 시기인 중년의 두 자녀 앤과 토마스는 이 집안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어쨋거나 끌고 나가고 있고 이들의 늙은 아버지는 사는 게 지긋지긋한지 죽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앤에게는 정신적으로 사춘기를 못 벗어난 성인 아들이 하나 있고, 토마스는 이혼한 아내와 살던 딸을 전처의 입원으로 맡게 되었는데 이 집에서 가장 어린 캐릭터인 이 딸은 심각한 sns중독 같네요.
짐작하시겠지만 관객에게 호감을 줄만한 인물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 집안의 대표 활동가인 앤과 토마스는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열심히 사는 활동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일들이고 당연히 위선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점을 인식 못합니다. 얄팍함, 부박함, 내면의 황폐함이 세월이 흐르면 이들을 그들 아버지의 현재로 데려 가겠죠. 두 남매의 자식들은 이들의 위선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맡지만 한 명은 치기에 그칠 뿐으로 보이고 한 명은 내부로 더 곪아들어가는 양상입니다. 손자 손녀 둘 다 윗세대에 억눌려 살면서 쌓은 자산을 이용하며 타락하거나 자살하거나...뭐 이런 예상을 하게 되는 결말입니다. 이들의 내적, 인간적 고민에 공감할 여지를 영화가 주지 않습니다.
영화를 본 직후에는 전체를 꿰는 드라마가 없어 '히든' 보다 실망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계급 의식에 쩔어 있는 위선적인 부르주아'를 파편화된 인물들로 전시할 뿐인 거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선 위선에 대한 의식이 하나도 없는 인물들에 어떤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삭막한 현실이 있을 뿐,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그냥 그렇게 살다가 망하는 것이 다다, 라는 것이 감독 생각 아닌가 싶습니다.
1시간 40분 조금 넘는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 보는 재미와 화면이 만드는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흥미진진하다가 금방 끝이 난 느낌입니다. 훈훈한 연말용으로 추천하긴 어렵지만 저는 잘 봤습니다.
2022.12.30 13:28
2022.12.30 14:01
저도 하네케 감독 영화는 충격적이긴 해도 좋아하는 부분이 있어 품을 수 있는 영화와 제 내공으론 어려운 영화 정도인데 엄청 좋아하는 분도 있더라고요.
전작에 비해 평도 그렇고 화제가 덜 되었나 봐요.
말씀하신 독일 배우는 이 영화 뿐만 아니라 좋은 감독과 다수 작품을 하는 것 같아요. 장 루이 트랭티낭은 '남과 여, 순응자'로 많이 알려졌죠. 젊은 시절 독특한 카리스마가 있었는데 나이 많이 들어서도 작품을 꾸준히 하시다 가셨네요.
2022.12.30 14:25
원래 하네케 감독이 독하고 못되게 구는(?) 영화들이 제 취향이긴 한데. 희한하게 정작 하네케 감독 영화들은 재생하기가 좀 부담스럽달까 그렇습니다. ㅋㅋ 본문에서 언급하신 '히든'도 찜 눌러 놓고 아직도 안 봤구요. 이 글까지 읽고 나니 내년엔 이 양반 작품들 한 번 연달아 달려볼까 싶기도 하네요. 본 게 거의 없어요. 하하...
2022.12.30 16:29
부담스러움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히든' 재감상에 손이 안 갔어요. 다른 안 본 영화들이 대기하는 문제도 있지만 ㅎㅎ. 내년에 기대하겠습니다. 이틀 남았네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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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전도연, 최민식의 국내영화를 생각하고 클릭했네요 ^^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은 저한테는 지지하거나 불쾌한 작품으로 나뉜다기 보다는 좋아해도 그 불쾌함 때문에 완벽히 좋아할 수 없고 항상 뒷맛이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저도 좋아하는 편인 피아니스트, 히든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는 하얀 리본이 가장 날카로운 구석을 찔렀다고 생각해서 가장 아끼는 편입니다. 그런데 퍼니 게임은 그냥 불쾌함 자체에요. 쭉 괴로운 것만 보여주다가 이쯤에서 뭔가 그래도 보답을 해주려는 것 같다가 '이런 걸 기대했지? 근데 아니야 ㅋㅋ'하면서 대놓고 관객들에게 빅엿을 주는 영화라서....
이 해피엔드라는 작품은 분명 기대하긴 했었는데 뭔가 하네케 옹 작품 치고는 별다른 논란이나 화제가 되지 않고 묻힌 느낌이라 저도 까먹은 것 같아요. 포스터에 나온 인물들 말고도 프란츠 라고프스키라는 독일에서 요즘 최고 각광받는 연기파 배우까지 캐스팅이 엄청 쟁쟁하네요. 아무르의 남편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나오는데 뭔가 전작하고 연결되는 캐릭터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속편은 아닌 그런 설정이라고 어디서 들은 것 같아요. 이 분도 올해 타계하신 걸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