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어준 책, <보통의 존재>

2010.08.03 23:41

sophie 조회 수:2584

제목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에요. 사실 저자와 저는 삶의 배경, 경험, 이력 면에서 겹치는 면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도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모든 인간의 정신은 동일한 질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인지도 모르겠어요. (이 말을 김형경씨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제목은 기억이 안 나네요.)

 

사실 처음엔 "음악적으로 보면 당신도 결코 보통의 존재는 아니잖아?" 싶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개인사, 가족사, 내면에 깔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마다 굴곡있는 사연을 가지고 어떤 면에선 보통 이상이고, 어떤 면에선 보통 이하이고, 인격면에서도 특히 고매하거나 저열하지 않은 사람이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닐까 싶더군요.


저자 이석원은 희망을 쉽게 수혈받을 수 없는 자기같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공감대, 위로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저도 약간 위로받는 느낌이었어요. 그건 "잘 될거야. 걱정마." 같은 믿기 어려운 희망 대신에 그냥 덤덤하게 "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주는 솔직함 때문이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너만 그런 건 아니야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너무 고민하지 마.

고민되는 건 이해하지만 너만 그런 건 아니야.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들이

누구나 재능과 꿈이 한가지씩은 있는 법이라고

사기를 치는 바람에 그렇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은 음악을 하지 않냐고?

나, 음악 하는 거에 확신을 갖기까지 무려 15년 걸렸어.

38년 만에 겨우 하나 건진 거라구.

하고 싶은 일, 꿈, 생의 의미 이런 것들...

그렇게 쉽게 찾아지는 게 아니더라고.

 

동갑내기 친구 중에 런던에 유학 가 있는 애가 있어.

그 친구한테 내가 이 나이에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하니까 누구보다 축하를 건네는 거야. 자기는 아직도 찾고 있다며.

늦도록 공부하면서도 정말 이 길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이 맞는지 100% 확신하진 못하는 것 같더라구.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설마 내가 그렇게 살기야 하겠어?'  하던 많은 것들이 나이를 먹으니까 정말 현실이 되더라. 어른이 되면 자동으로 훈이나 철이처럼 주인공이 될 줄 알았는데 나는 그냥 여전히 석원이일 뿐이었어.

게다가 성공은 고사하고 도대체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야. 보통 고민이라는 게 꿈은 당연히 있고 그 꿈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놓고 고민이지 나처럼 '왜 난 하고 싶은 게 없는 걸까' 이런 고민은 어디 가서 쪽팔려서 말도 못하고 정말 내 자신만 한심하게 느껴지거든.

그러던 것이, 어느 날 38년 만에 겨우 하나 찾아지니까 솔직히 좀 허탈하더라. 그럼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은 뭘까 싶어서.

그냥 살은 거지. 그냥.

 

근데 말이야, 나는 이제 서야 겨우 작은 할 일을 찾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전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었어.

한때는 정말이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까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적도 있었거든.

근데 막상 이유가 생겨도 여전히 힘들고, 무료할 때도 많고, 일을 마치고 나면 허탈하고...

그런 건 똑같은 것 같애.

단지 마음 속에 예전에 없던 어떤 희미한 무언가, 그저 작은 거 하나 들어 있는 기분은 들어.

이게 바로 생의 의미라는 거겠지.

이 작은 걸 찾기 위해서 다들 그렇게 애쓰고 있는 걸까?

 

그런데 그 생의 의미, 하고 싶은 일, 꿈...이런 거 어떻게 보면 정말 신기루 같애.

그런 거창한 거 없이도 일상의 행복을 누리면셔 사는 사람들 얼마든지 많구, 생겼다고 좋아했다가 아닌가 싶어 다시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은 걸 보면, 확신이라는 걸 갖고 사는 사람들이 정말 몇이나 될까 싶어.

그러니 내가 볼 때 중요한 건 그게 있건 없건 자신이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애. 안 그러니?

 

아무튼 기운 내. 너만 그런 건 아니니까."

 

요즘은 이런 책을 찾게 되네요. 엄청난 비극을 겪고 나서 불굴의 의지로 인생 역전을 이루거나, 너무 고매해서 다가가기 힘든 사람들 이야기 말고, 그냥 보통 사람의 보통의 감성을 보여주는 책이요. 희망이나 교훈 없이  덤덤하게 자신의 일을 기술하는데, 그것이 일상에 대한 관찰력이나 통찰력을 보여주어서  읽는 사람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내용이요.

 

네. 저도 그냥 살고 있어요. 아직 희미한 무언가, 작은 거 하나 찾지 못한 채로요. 저만 그런 건 아닐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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