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8 08:38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를 보면 이 이야기가 이정이 수경을 고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정말로 이정이 수경을 고소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정은 피해자이고 수경은 가해자인 그런 구도로만 볼 수 있을까요. 영화는 수경을 감싸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의 입장은 균형있게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이 얼마나 "빻았든" 혹은 "또라이든" 누군가를 그저 악으로만 바라보는 건 너무 간편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두 여자"입니다. 내 속옷을 안사주는 엄마의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속옷을 나눠입는 두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첫장면에서 수경은 이정이 빨고 있는 팬티를 낚아채서 입고 나갑니다. 그걸 싸늘하게 바라보는 이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경은 전화통화를 하다가 휑 나가버립니다. 그렇게 축축한 속옷을 입고 자신의 쑥뜸방 가게로 간 수경은 친한 손님 앞에서 팬티를 입은 채로 말리려고 합니다. 수경은 딸한테만 괴팍하게 구는 여자는 아닙니다. 좀 친분이 있고 자기가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지나치게 자유분방해지는 사람입니다.
젖은 팬티를 입으면 성기 부분이 축축하고 차갑습니다. 그런데 수경은 이걸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는 어쩌면 팬티를 보여줘야할지도 모르는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조금은 비약적이지만 이 장면은 수경과 이정의 관계를 함축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수경은 자신의 성기, 즉 이정이 태어났던 곳을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 다음에 이정이 생리통으로 괴로워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두 모녀는 자신의 가장 내밀한 기관을 신경쓰는데 완전히 대조적입니다. 이 후에도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이정이 처음으로 생리를 했을 때 수경이 이에 완전히 무관심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대다수 어머니가 꽤나 민감해질 수 밖에 없는 딸의 신체적 징후에 대해서 수경은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습니다. '속옷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수경은 초지일관 무심합니다.
그래서 같은 속옷을 나눠입는다는 것이 수경에겐 딸이 자신의 속옷을 뺏어입는다는 것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수경은 자신의 성기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딸의 성기를 신경 쓸 이유가 없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아무리 엄마가 그래도 딸한테 속옷은 사줘야 되지 않느냐고 항의할 수 있겠죠. 영화는 수경이 그런 상식이 통하는 인간이 아니라고 못을 박아놓습니다. 아마 수경은 영화 후반에 나오는 자신의 대사처럼 생각할 것입니다. 여태껏 키워주고 먹여주고 학교 보내주고 다 해줬는데 그깟 속옷 좀 안챙겨준 게 그렇게 억울한 일이냐고. 두 여자 그 누구도 속옷을 나눠입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쪽은 구차하게 속옷을 빌려입고 한 쪽은 속옷을 강탈당합니다.
수경에게는 종열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종열은 수경을 꿀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대화를 보면 이 두 사람은 이미 꽤나 깊은 관계이고 어쩌면 결혼도 할 것 같습니다. 보는 관객은 짜증이 솟구칩니다. 수경이 딸은 저렇게 내팽개치면서 자기 연애에만 몰두하고 있으니까요. 수경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정에게 소리를 질러대면서 자신의 행복한 시간이 다 끝났다는 듯이 굽니다. 어떤 엄마에게 어떤 딸은 그저 거추장스럽고 귀찮기만 한 존재입니다. 모든 엄마에게 충분한 모성이 깃들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머니의 역할을 맡기에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미숙합니다.
종열의 존재는 수경과 이정의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놓습니다. 남의 시선을 신경쓰는 수경은 종열 앞에서 그래도 문제없는 엄마로 보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정을 차로 치어놓고도 그것이 급발진이었다며 계속 변명을 합니다. 그러나 이정이 수경을 고소해버리면서 그런 말은 통하지 않게 됩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종열은 이 두 사람 사이의 해묵은 원한을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깃집에서 식사자리를 마련하지만 이정은 엄청나게 비싼 고기를 수경의 이름으로 주문해버리고 그 자리를 떠나버립니다. 수경은 집에 돌아와서는 이정의 머리를 치며 또 악담을 쏟아붓습니다.
이정이 수경에게 완전히 질려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수경이 종열과 결혼하는 사건을 계기로 이정과 수경은 헤어지면 됩니다. 수경도 이제 엄마 노릇하기 귀찮다고 선언을 했고 이정의 독립을 강요하다시피 말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정은 이걸 그대로 놔둘수는 없습니다. 그에게는 이상한 집착이 있습니다. 이미 엄마로서의 사랑을 기대하지 않지만 최소한의 사과를 듣고 싶어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수경이 이정에게 사과를 할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정은 수경에게 엄마로서의 사과를 듣고 싶습니다. 자신을 차로 치어놓고 이대로 떠나서 잘 살겠다는 사람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겠습니다만, 이미 이정은 수경을 고소했습니다. 법적으로 복수를 성공했는데도 이정은 수경에게 아직 매달립니다.
수경에게도 딸은 간편하게 헤어질 수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자신의 딸 이정이 아니라 종열의 딸 소라가 들고 옵니다. 수경은 자신이 이정의 학교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다면서 그게 대단히 자유로운 삶인양 손님들에게 뻔뻔히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넌지시 너무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수경은 그걸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열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종열의 딸인 소라의 졸업식을 가야합니다. 자기 자신의 딸에게도 베푼 적이 없는 형태의 사랑을, 다른 사람의 딸에게 베풀어야합니다. 남의 딸 졸업식을 챙기는 수경의 모습이 가증스러워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가장 행위가 얼마나 못갈 것이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수경은 종열의 딸 소라에게 데면데면하게만 굴 뿐 어떤 살가움도 표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경과 '두번째 딸'의 갈등이 서서히 시작됩니다.
수경이 종열의 집에 가서 볼펜을 찾다가 소라의 방에 들어갑니다. 볼펜인줄 알고 꺼낸 것이 바이브레이터인 걸 알고 깜짝 놀란 수경은 이내 박장대소를 하며 그걸 미주알고주알 전화통화를 하던 사람에게 말합니다. 하필이면 소라가 그 통화내용을 듣습니다. 소라는 왜 남의 방에 들어와서 남의 물건을 손대냐고 마구 화를 냅니다. 이 상황에서 최소한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른 잘못을 사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경은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소라를 이상한 여자애로 몰아가며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뻐팅기고만 있습니다. 종열의 힘겨운 중재에도 소라와 수경의 관계는 벌써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그리고 이 관계의 파국은 묘하게도 수경과 이정의 파국의 모양과 닮아있습니다. 속옷을 확 낚아채고, 딸의 생리에는 무관심하던 수경은 다시 한번 딸이 될지도 모르는 여자아이의 성적 욕망을 완전히 타인의 시선으로 비웃기만 합니다.
수경은 좋은 엄마가 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한 남자에게서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는 종열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어쩌면 소라의 엄마 노릇을 해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수경은 토라진 얼굴로 종열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자신은 소라와 지내는 게 너무 불편하고 종열과 단 둘이 잘 지내고 싶으니, 소라를 어디 다른데 보내면 안되냐고. 종열은 기가 막혀하지만 수경은 진심입니다. 수경은 엄마가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를 도덕적으로 재단하기에 앞서 그는 그냥 그렇게 생긴 사람입니다. 열받는다고 딸을 차로 치어버리는 사람이 남의 딸을 버리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미련한 종열은 이후 이 이 이야기를 조심스레 소라에게 했다면서 소라는 할머니집에서 살기로 합니다. 이것은 아마 착한 딸이어서거 아니라, 나를 버릴테면 그렇게 버림당해주겠다는 소라의 앙심을 품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수경은 자신의 원래 가정을 파괴하고 다른 가정도 파괴하기 직전입니다.
이정의 생물학적 아버지, 수경이 이정을 낳게 만든 남자의 이야기는 단 한번도 정확하게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의 딸을 등지게하면서까지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옆에 두려는 수경의 이 집착은 한편으로 그의 결핍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어쩌면 수경에게 이정은 딸을 버리고 간 남자의 무책임의 상징이면서, 자신이 사랑받지 못했던 과거의 적나라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수경은 이것을 반대의 방법으로 증명해야할수도 있습니다. 딸을 버리고 간 남자와의 실패한 사랑은, 딸을 버리면서까지 사랑해주는 남자와의 재결합으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에도 딸을 책임진다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수경은 무조건 딸이라는 존재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실패한 모성은 "딸이 아니라 웬수다 웬수"를 부르짖는 보통 어머니들의 일상적인 실패가 연속되는 모습과도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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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수경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종열과 결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그러나 종열의 '맹랑한' 딸 때문에 토라진 수경은 여보란듯이 연락을 끊고 종열이 더 열렬히 구애해주길 기다립니다. 종열이 수경에게 회색 코트를 선물로 보내오고 수경은 다시 마음을 풀기로 합니다. 그 코트를 이정이 멋대로 입고 나가서 한바탕 하긴 했지만, 수경은 다시 종열의 바람대로 식당에 그를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수경이 입은 코트와 똑같은 코트를 입은 종열의 딸 소라가 있습니다. 그 코트는 수경만을 위한 코트가 아니었습니다. 수경은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코트를 벗어서 팽개친 다음 그 안에 입은 빨간 속옷 나시 차림으로 식당을 나섭니다. 그 추운 날에 속옷 원피스 한벌을 입고 걷는 수경을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이것은 수경에게 더할바 없는 모욕입니다. 수경은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종열은 딸이 입은 옷과 같은 옷을 선물하면서, 자신에게 수경이 딸과 동급의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수경이 자신의 사랑이 유일무이함을 확인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가 그 딸을 치워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보다 더, 라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존재하는 딸을 아예 둥지에서 밀어내버리고 뻐꾸기 같은 사랑을 받아야 수경은 만족할 것입니다. 그래서 종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경을 '내 딸만큼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내 딸보다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을거야'라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수경의 나르시시즘이 가장 뒤틀려있는 지점을 보통 남자가 착한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수경이 빨간 란제리만 입고 씩씩거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이정이 수경의 '빨간 차'를 폐차하는 장면과 붙어있습니다. 강렬하면서도 핏빛을 닮아있는 그 두 피사체는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돌이킬 수 없는 충돌을 일으킨 후 폐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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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이 몰고 다니던 수경의 차는 영화 후반부에 정말로 급발진을 합니다. 다행히 누군가를 치지 않았지만(영화는 이 차가 소희를 칠 것 같은 긴장감을 주지만 훨씬 더 너그러운 방향으로 이끕니다) 수경은 영화 초반부에 수경이 자신을 치었던 사건을 곱씹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정말로 급발진이 아니었을까.
한편으로 이 급발진은 수경이 주는 애정의 형태가 아닌지 이정에게 참작의 여지를 물어보기도 합니다. 딸을 사랑하고는 싶지만 원체 사람이 그래서 성질머리가 급발진할 뿐, 그래도 한편으로는 딸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온기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만약 차가 정말로 급발진한거라면, 그래서 수경에게 이정이 너무 독하게 군 것이라면 이정은 한줄기 희망을 품어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마음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지난 날을 학대와 무관심으로 차마 정의할 수 없는 자기연민에 가까운 것이겠죠.
집이 정전이 되고 수경은 이정의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어둠 속에서 샤워를 합니다. 그 모습은 마치 피의자가 알몸심문을 받는 것처럼 초라하면서도 처참합니다. 딸은 엄마의 가장 외로운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대화를 합니다. 나 사랑해? 수경은 어이없다는 듯이 마냥 웃습니다. 당연하게도 이정은 자신이 원하는 어떤 답도 얻지 못합니다.
수경이 이정을 차로 친 것이든 급발진으로 사고가 일어난 것이든 그건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수경은 절대로 사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경은 이정이 차에 치인 걸 걱정하며 그를 보호하거나 위로해주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이정이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태 자신을 괴롭힌 것에 대해 이정이 수경에게 사과를 받고 싶어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때리고 화만 내는 것에 대해 이정은 이미 편지를 썼습니다. 자기가 좋은 딸이 될테니 제발 때리고 화내는 갈 그만해주라고요. 수경은 그 오래된 편지를 뜯어본 적도 없습니다. 수경이 이정에게 보통 엄마처럼 염색을 부탁했다가 또 수경을 괴롭힐 때, 수경이 미안하단 말만 해주면 안되냐고 울면서 애원할 때도 그저 질색팔색하며 자기가 얼마나 고된지를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이제 어둠 속의 대화에서 수경의 알몸과 진심을 이정은 확인합니다. 이 관계는 심지어 수경이 아무리 궁지에 몰리고 외로워져도 절대 나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수경이 완전히 매정한 인간이라고만 할 순 없습니다. 그는 소시오패스라기에 충분한 인간이지만 그에게도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먹을 것을 나눠먹는 것입니다. 그는 요리를 못했지만 종열을 위해 요리를 하고 음식을 같이 먹었습니다. 단골손님과 오만욕을 다 나누고 싸웠다가 이후에 슈퍼 앞에서 마주쳤을 때 어색하게 둘은 사과를 나눕니다. 물론 이 때도 수경이 미안하다고 말을 하진 않습니다. 그저 단골손님에게 사과를 듣고 멋쩍어하다가 호빵 하나를 건네며 같이 먹습니다. 음식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이 수경이 사과를 하는데 쓰는 유일한 언어이며 그 부정확한 언어를 포용하는 사람만이 수경의 곁에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전된 집의 어둠 속에서 수경이 이정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장면은 그저 단순한 나눠먹기로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아이스크림(하필이면 상품명이 투게더입니다)은 차디 차지만 그나마 수경이 이정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마음의 조각일지도 모릅니다. (수경이 이정에게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주는 건 그가 단골에게 따뜻한 호빵을 주는 것과 명백하게 대조됩니다)
그 다음날 수경이 혼자 만둣국을 끓이는 장면이 애잔한 것은 그가 리코더로 부는 로망스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수경은 이제 그 따뜻한 음식을 나눌 사람이 집에 없습니다. 더 이상 머리를 때리고 성질을 내고 짜증을 내도 옆에 남아있던 딸이 더 이상은 없습니다. 그렇게 진력을 내던 딸이 사라져버렸을 때 수경을 홀가분해진 것보다 그 텅빈 공간을 어찌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앞으로 영원히 따뜻한 음식을 집에서 나눠먹지 못하고 혼자 먹어야할 것입니다.
이정은 속옷가게에 가서 속옷을 삽니다. 같은 속옷을 입는 한 여자는 드디어 자신만의 속옷을 마련합니다. 신체 사이즈를 재는 법도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이정은 보다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소희에게 유대를 실패했던 만큼, 수경에게 독립을 성공했던 만큼 그는 강해졌을 것입니다.
2022.12.18 18:26
2022.12.18 22:35
2022.12.19 02:07
수경의 리코더 연주 후 쓸쓸하게 만두국 끓이는 모습의 롱테이크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네요. 자기 속옷 사이즈도 몰랐다는 걸 깨닫고 마지막에 어디 얻어맞은 것 같이 멍한 이정의 표정도
2022.12.19 09:29
2022.12.19 12:14
아니 그런 부분까지 생각을 하시다니 ㅋㅋ 간혹 관객들 중에 감독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부분까지 너무 깊게 해석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분들이 있었는데 얼어있다가 녹은 만두 이거 너무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 깨워서 찍은 사진이 이정이 병원 입원했을 때 놓여있었죠?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다니 또 마음이 아팠습니다. 딸 졸업식을 전부 패스한 수경이 종열의 딸 졸업식엔 억지로 참여해서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이 최고의 블랙 코미디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 와중에 친구들이 너무 이쁘시다 뭐 이런 얘기 하니까 "내 딸 아니에요."라고 선긋기까지
2022.12.19 14:12
2022.12.19 10:06
싸웠다가 음식을 나눠먹는 분은 찜질방을 같이 운영하는 동업자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첫 장면의 더블 데이트 때부터 나타나 항상 주변에 있는 친구 사이이고, 여자 혼자서 운영하기 어려운 찜질방을 둘이 운영하는 관계로요. 저는 그 여자분이 수경의 실체를 잘 알면서도 오랜 세월 산전수전을 같이 겪으며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라고 좋게 보았어요. 이 여자분도 사람인지라 숫기없는 남편이 수경에게 화장품을 선물했을 때는 버럭했으나, 집을 공동명의로 바꾸는 경제적인 위로로 수그러들었고, 재래시장에서 만난 수경과 배추를 같이 사고 호빵을 나누는 장면을 보면 수경도 어느 정도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보통 사람인 것처럼 보였거든요.
2022.12.19 11:03
제가 놓치거나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던 작품의 메시지와 디테일들을 이번 글에서 더욱 상세하게 그리고 공감가게 잘 적어주셨네요. 속옷을 공유한다는 것의 의미가 단순히 이정이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엄마에게 묶여있는 존재라는 것을 넘어 직후에 수경이 그 친구 앞에서 하는 행동과 이정의 생리통 등으로 이어지는 씬들의 배치, 수경이 음식을 나눠먹는다는 의미는 정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에요. 또 하필 마지막에 딸과 나눠먹는 것이 차가운 아이스크림인데 '투게더'라는 것도 분명한 감독의 의도가 보이네요.
절대 사과하지 않는 수경의 고집은 결국 지금까지 애 혼자 낳아서 고생하고 키워오며 살아온 자신의 삶에대한 일종의 억울함 표출?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정말 자기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됐고 그러니 내가 학대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도 사과할 필요가 없다 아니면 사과하기 싫은 것이겠죠. 종열의 딸의 바이브레이터 사건에서도 결국 간곡한 부탁에 방에 들어가긴 하지만 끝까지 본인이 말로 사과는 하지않죠. 종열이 대충 좋게 좋게 매듭을 짓긴 하지만(이 캐릭터는 좋게 좋게가 모토인 것 같습니다.)...
종열과 새로 살 집을 보러 가서 딸이 살아야 할 방을 창고로 쓰겠다며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결국 할머니 집에 가겠다고 결정이 난 후에도 그것만이 아니라 종열이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해줄 것을 원하여 선물받은 같은 코트 때문에 결국 그것이 관계의 종말이 되고 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걸작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저번 글에서도 얘기했던 그 막판 어둠속의 씬에서 사과를 받겠다는 한가지의 바람마저 포기한 이정의 마지막 "나 사랑해?"라는 질문 마저도 허탈한 웃음으로 밖에 대답할 수 없는 수경이라는 사람에게 결국 이정이 이번엔 진짜 독립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 끝까지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어지간히 쎈 영화도 보통 거기까지 갔으면 어느정도 수준의 화해나 최소한 서로 인정과 이해를 하도록 유도할텐데 2시간 20분 동안 그나마 모녀가 가장 친밀하고 터놓고 소통할 것으로 보였던 장면에서마저 그런 쉬운 길을 가지는 않더군요.
비록 거기서 영화는 끝나지만 이 둘에게는 새로운 시작이죠. 아마도 처음부터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수경의 사랑받기를 원하는 마음이나 이정의 애정결핍, 공허함은 앞으로도 안고 살아가야 하겠지만 최소한 이러다가 뉴스 사회면에 실릴 사건으로 끝나는 것까지 상상하게 만들만큼 서로를 괴롭고 아프게하는 동거는 끝냈다는 것이 전혀 행복하진 않지만 그래도 해피엔딩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