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6 16:55
She Said, 2022
부산 영화의 전당 근처를 지나게 될 일이 종종 있는데 저엉말 오랜만에 이용했습니다. 그간 이래저래 여유가 없어서 극장에 가질 못했는데요. 보고 싶은 영화 중 시간이 맞는 영화가 이 영화였어요. 스포일러가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은데 아래 내용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LadyBird 님의 후기를 읽어 보니 영화의 배경, 성격, 포인트 등등 보탤 말이 하나도 없는 좋은 글이었어요. 저는 그냥 조금의 잡담성 감상만 보탤게요.
'스포트라이트'와 비교되곤 하는데 그보다는 훨씬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있고 의식적인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여성들이 피해자인 사건을 여성인 두 기자가 오래 노력해서 기사화시키고 뒤를 받쳐 지지해 주는 직속 상관도 여성입니다. 이를 영화화한 이도 여성감독이고요. 건조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어요. 저변에 분노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영화 곧곧에 격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두 기자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런 격한 순간들이 직업의식에 더하여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화는 감정에 휩쓸려서 중심을 잃는다거나 하진 않지만 그런 면을 잘 살려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유능한 직업인으로서 기자일을 수행하면서 여성으로서 출산을 경험하고 딸을 키우며 나누는 대화들이 동시에 전개되거든요.
그리고 영화의 첫 장면을 '로라'의 경우로 시작하는 것도요.(아래 두 사진이 로라입니다) 가장 감정을 건드리는 인물로, 그 영화사에서 사회 첫 발을 디디게 됩니다. 집 근처에서 산책하다 영화를 찍는 현장을 우연히 구경하게 되어 영화사에서 일하게 돼요. 촬영현장을 보며 두근거리고 일이 즐겁고 신기하고 자신을 고용하여 인정해 주어 감사해 하였어요. 그렇게 자존감과 희망으로 시작되어야 할 인생의 출발선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일을 겪게 되고요. 현재 시점에서는 '로라' 역할을 제니퍼 일리가 연기하는데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 속에 고통이 녹아 있는 듯한 캐릭터를 너무 잘 표현해 주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울컥했던 장면은 캐리 멀리건이 식당에서 접근한 남자들에게 분노의 f*** 욕을 포효할 때였습니다. 그동안 경험했던 '좋게 말할 때는 우습게 듣던' 모든 일상의 장면들이 생각났던 것 같습니다. 관록과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보여준 캐리 멀리건에게 감탄을.
기사를 완성하고 발행할 수 있게 될 때까지의 고비 같은 몇몇 장면은 조금은 평이한 연출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볼 때, 두 기자를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여성들이 그저 피해자성만 부각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사연이 한 개인의 우주에서 어떤 개별적인, 특별한 고통이었는지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일구어 내고 있었는지가 잘 조명되었다는 점이 훌륭하다고 느껴졌고 앞서 말한 아쉬움 정도는 충분히 상쇄되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2022.12.16 17:32
2022.12.16 18:12
흔히 돈을 받았다고 하면 댓가가 따랐으니 문제삼을 게 아니라는(심지어 돈을 노렸다는) 생각을 하는데 사만다 모튼의 경우를 통해 약자에게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무용지물인지, 돈으로 어떤 식으로 재갈 물리는지 잘 보여줬어요. 게다가 이 인물은 친구의 일에 나섰었죠. 연기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 영화의 범죄자가 특별히 악질인 것이 영화를 좋아해서 그 일을 하려던 사람들에게 평생의 손상을 입혔다는 것이란 점을 저도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정도는 아니라도 일반 다수 영화 관객들의 영화의 기억을 오염시킨 점도요. 이 범죄자의 주변에 있으면서 알거나 짐작했으면서도 친하게 지낸 이들도 혐오스럽기는 마찬가지고요.
2022.12.17 14:58
저번 글에도 썼지만 미라맥스 시절부터 이 인간이 관여한 작품들 중 좋게 봤던 것들이 많은데 괜히 찝찝한 뒷맛이 남게 되었죠.
이 인간의 악명은 워낙 유명해서 시상식 같은데서 조크로도 간간히 쓰였는데 저도 그런 이미지라는 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억지로 입을 막아왔다는 진상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저처럼 막연하게 대충 알고있던 업계인들도 있었을테고 실상을 다 알고있던 이들도 있었겠죠. 그 도청기 차고 녹음까지 해서 경찰들이 가져갔는데도 묻어버린 그 검사실 쪽 인간들도 다 적발해냈어야 하는 건데요.
저도 언급하신 그 로라 캐릭터 부분이 좋았습니다. 사만다 모튼이 연기했던 캐릭터의 증언 부분도 배우의 대사에 의지한 한 씬으로만 그렇게 보여준 것이 대단했는데 로라는 처음엔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떨려하며 끊었다가 점차 결심을 다지고 결국 본인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고 마지막 결심까지 어떻게 보면 이 캐릭터의 사정상 뻔하게 감정을 유발해내는 연출임에도 울컥하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스포일러라고 하긴 뭐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오는 연출이라서 언급을 하려다 말았는데 막판에 이 피해자들이 그 사건을 겪기 전 희망에 찬 밝았던 모습을 짧은 플래시백으로 보여줬던 것도 상당한 여운이 있었어요. 여기서 영화얘기를 나누는 저희들처럼 정말 영화가 좋아서 영화업계에서 자신의 열정을 펼치려는 사람들이었을뿐인데 젊고 여자라는 이유로 그런 쓰레기한테 몹쓸 짓을 당하고 응당한 정의가 구현되기는 커녕 자기가 사랑했던 분야에서 다시는 취직을 못하는 상태가 되고 억지로 받은 돈에 입다물고 살아온 세월이란 어떤 것이었을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