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라는 무대

2024.05.26 19:51

Sonny 조회 수: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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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영화들이 제각각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악마와의 토크쇼]와 [챌린저스]는 제게 다른 감흥을 일으켰습니다. 이 두 영화는 영화 안에서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다수의 관객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그 관객을 굉장히 의식하거나, 혹은 관객으로서 주인공을 의식하는 시점이 영화 속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종종 이 영화 속 무대의 관객으로서 영화를 보게 됩니다. [악마와의 토크쇼]에서는 토크쇼 관객으로서, [챌린저스]는 테니스 경기 관객으로서 종종 어떤 씬들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극장이라는 사회적 공간의 형태가 영화 속 객석의 형태와 비슷하기 때문에 생기는 우연적 효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감독들이 그걸 모를 리는 없습니다. 일찍이 크로넨버그는 [비디오 드롬]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와 관객의 상호작용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주인공 맥스가 텔레비전 속에서 자살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걸 그대로 재현하며 영화가 끝납니다. 크로넨버그는 질문했습니다. 맥스가 티비 속 맥스를 보고 그대로 자살을 재현했다면(재현이란 단어가 정확한지는 저도 확신이 없습니다), 이 화면을 보는 당신들 역시 연쇄작용으로 이미 자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악마와의 토크쇼]는 그걸 분명히 의도하고 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여러분은 지금 악마가 나오는 제 토크쇼를 보러오신 분들 아니냐고요. 


그에 반해 루카 구아다니뇨는 [챌린저스]에서 관객에게 노골적으로 질문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결국 객석이 아니라, 객석에 앉은 타시의 시선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다만 조금 더 전지적인 시점을 발휘할 때 관객은 타시가 두 남자 사이에서 오가는 장면을 테니스를 관람하는 관객처럼 보게 됩니다. 이번엔 아트의 서브입니다, 이번엔 패트릭의 서브입니다... 물론 이 표현은 부정확한게, 타시가 서브를 누구에게 날리는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한 코트의 한 쪽에는 타시가 있고 다른 한 쪽은 비자발적인 복식으로 공을 주고 받는 것 같기도하고, 타시와 타시가 정한 파트너가 타시가 밀어낸 파트너와 랠리를 주고 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관계는 질척하고 더러운 게 아니라, 테니스 경기처럼 역동적으로 보게 됩니다. (쓰리썸이라는 행위가 '본다'와 '한다'를 동시에 작동시킨다는 점에서 더 긴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다른 용감한 분이 어딘가에 따로  쓰시겠지요)


그러면 반문이 따라옵니다. 여러명이 함께 같은 곳을 응시한다는, 시선의 형태가 같다는 게 의미심장하다면 그럼 혼자서 노트북을 보거나([서치]) 티비를 보는 장면들은 극장에서 보면 안되는 것이냐고요. 영화속에서 무언가를 보는 인물의 상황과 시점이, 스크린 밖에서 유사한 구도로 영화보기를 실천하는 사람과 겹쳐진다면 그건 분명히 그 자체로 의미가 있겠죠. 그러나 과연 이것이 다수의 관객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1인칭 시점으로 주인공이 노트북을 보는 영화는 자가에서 봐야하는가, 그건 또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기본이되 그 중에서도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관객의 시점이 영화 안 관객과 절묘하게 겹쳐질 때 영화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감흥까지 덤으로 얻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요. 영화 속의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점을 영화 바깥의 관객이 일치시켜야한다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는 영화 속 객석과 영화 바깥 객석이 겹쳐지는 감흥까지 얻게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5176


“이 상을 받는 것이 지난 30년간 나의 목표였기 때문에 남은 생애동안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웃음) 어쨌든 나는 앞으로도 시네마를 위해 싸우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시네마가 계속 살아있게 하기 위해 감독들이 싸워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핸드폰으로 스크롤을 하고 이메일을 체크하면서 반만 집중한 채로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를 보는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세상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영화관에서 다른 사람들과 영화를 보는 것은 훌륭한 공동의 경험 중 하나다. 우리는 친구 혹은 낯선 사람들과 웃음, 슬픔, 분노를 공유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영화의 미래는 영화관에 있다고 말한다. (…)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성 노동자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이번 깐느에서 션 베이커가 상을 받고 다시 한번 관객들을 극장으로 호출했습니다. 저는 그의 위기감에 너무나 동의하며, 영화는 결국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온전한 감상의 기본 조건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걸 여봐란듯이, 제가 본 영화들은 극장이라는 공간이 필수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앞서 말한 저 두 영화 외에도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매드맥스: 퓨리오사]을 보면서 저는 극장이라는 공간의 낭만을 곱씹게 되더군요. 앞으로도 수많은 고전 영화 기획전들과 시리즈 영화의 경우 전작을 묶어서 내는 기획전들이 계속 줄을 이을 겁니다. 뒤늦게라도 [스턴트맨]과 [혹성탈출]을 극장에서 꼭 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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