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전만 하는 출산율 논의

2023.07.07 11:33

Sonny 조회 수:741

최근 thoma님의 책추천에 자극받아 [암컷들]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책의 앞부분을 보면 다윈을 포함해 세계 저명한 생물학자들이 암컷의 생태계와 성별 선택의 권력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데 얼마나 헛발질을 했는지가 나옵니다. 저자가 이 과학자들의 남성주의적 실패를 "씹어대는" 말투가 너무 신랄해서 과학서적임에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기사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선대의 편견없는 과학자들이 부닺친 결과를 낼름 주워먹는 후세대로서의 특권이겠지요. 지금의 저도 분명히 후세대들에게는 고루한 벽창호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암컷들]의 시선을 대한민국이란 곳에 거주하는 인간들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최근 어느 남초커뮤니티든 한번 글이 올라오면 타오르는 주제가 "출산율"입니다. 정말이지 별의별 댓글이 다달리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저 주저앉아서 우린 망했다며 망국가를 부르는가 하면 누군가는 집값 때문이라고 부동산 정책을 욕하고 누구는 알 수 없는 문재인 부작용(문재인이 페미랑 붙어먹어서 이꼴이 났다!)을 이야기하며 문정권 인사들을 강하게 처벌해야한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조금 더 온건하게 남자들이 군대를 가서 2년간 사회진출이 늦어지니 남자들한테 돈을 더 줘야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임신, 출산을 한 부부들에게 돈을 팍팍 줘야한다고 합니다. 독신세를 매겨야한다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출산율이 높은 나라들은 여성인권이 낮으니 여성인권을 낮춰야한다는 리틀 히틀러의 논리도 자주 튀어나옵니다. 아무튼 아우성은 치는데 생산적인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여가부에 대한 원한도 덤으로 있습니다. 


@ 임신출산을 하는 부부에게 돈을 팍팍 지원해준다는 방향의 정책은 무조건 실패합니다. 정부가 천만원을 주든 이천만원을 주든, 출산율이 반등하는 일은 없습니다. 엄청 간단하게, 그게 한 아이를 낳고 기르는 20년간의 비용에 비하면 엄청 푼돈이기 때문이죠. 그냥 자본주의적으로 수지타산이 안맞기 때문에 정부가 "아이를 구매하는" 철학의 이 지원금 정책은 소소한 도움은 되어도 출산율 전체를 끌어올리는데는 별반 의미가 없습니다.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best2&sort_index=pop&order_type=desc&document_srl=5943176832


제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건 출산율을 출산율로만 이야기하는 이 남초커뮤니티의 시선입니다. 출산율을 어떤 수치에 관한 목표로 바라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의 과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거죠. 이 시선이 [암컷들]의 초반부가 지적하는 그 오류와 너무나 흡사해서 신기할 정도입니다. 출산의 주체가 여자인데 여자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출산율의 실질적 주체를 누구로 놓느냐에 따라 문제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출산을 누가 하는가? "암컷"이죠. 인간의 경우 여성을 이 문제의 실질적인 주체로 두고 생각해야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출산율을 진지하게 고민하더라도 남자들은 이 문제를 여자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여자를 빼놓은채로, 바로 사회의 문제라거나 국가의 문제라는 추상적 주체를 설정해놓고 바라보는거죠. 아무리 이 문제를 개인단위로 바라보려고 해도 남성적 시선에서 그 최소한의 단위는 2인 부부=가족까지밖에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법 이성적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본다는 슈카조차도 백날 이 주제를 떠들면서도 "왜 (한국)여자는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는가?"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게 그의 의도적인 회피인지 순수한 한계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출산율 논의는 "출산율"이라는 단어 자체에서부터 가로막히게 됩니다. 어떤 성적을 끌어올리면 되는 것처럼 여기게 되면서 출산의 주체인 여성은 이 출산율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 출산율이 높은 나라들은 여성인권이 낮다 (이게 딱히 총합적인 사실도 아닙니다) -> 그러니 여성인권을 떨어트려서 출산율을 끌어올리자 같은 황당무계한 논리가 진지하게 토론거리가 되고 맙니다. 이렇게 진행되는 논의에서는 여자들이 출산을 할 수 없는 가장 큰 환경적 요소, 한국 내 사기업들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보장하기는커녕 바로 여자를 해고한다는 (클릭하면 기사 뜹니다) 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물론 여기에는 남편은 실질적인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독박육아나 "맘충"이라는 단어를 소비하는 한국의 사회적인 분위기도 당연히 누락이 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바로 "페미대장" 등극이죠. 프락치 취급받고 실질적인 문제는 입밖에도 못꺼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왜 "여자들만" 챙기냐면서 그 논의는 순식간에 남자들의 억울함으로 새버리고 맙니다. 생리대 지원을 이야기하면 면도기 지원을 이야기하듯, 출산의 주체를 지원하는 걸 이야기하면 남자도 정자를 제공한다면서 똑같은 임신과 출산의 주체로서 대접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래서 출산율 논의는 사실 출산율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를 바라보는 남성중심적 시각이 가장 큰 변수이자 함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출산을 누가 하는가?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들어가면 아마 출산율을 엄근진하게 떠드는 남자들은 금새 눈을 돌리고 말 겁니다. 물론 출산의 주체를 여성으로 놓는다고 해서 이 문제가 짠 하고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출산을 이야기할 때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주체조차 이야기하지 않으면 한국은 이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스티즈나 더쿠같은 여초커뮤니티에서는 응 안낳아 응 너가 낳아 하고 아주 냉소적인 시선만 보내고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 이 문제를 출산휴가를 쓸 수 있게끔 노동자의 시점에서 바라봐야한다는 어느 댓글을 저는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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