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끔 쓰듯이 나는 아부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아부는 나쁜 거라고들 여기지만 글쎄요. 옛날 왕들이 왜 아첨꾼들을 주위에 뒀겠어요? 아첨이라는 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비타민이니까 그랬던 거죠. 그리고 쓴소리를 하는 놈들은 대부분, 왕에게 쓴소리하는 자신의 멋짐에 취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거든요. 왕에게 쓴소리나 하는 그런 나르시스트 놈들은 목과 몸을 좀 분리해줘야 제맛인 거고요.


 왜냐면 살아보니까 알겠거든요. 쓴소리는 대부분 그냥 쓴소리일 뿐이예요.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들 하지만, 사람들이 남에게 하는 쓴소리는 대개 옳은 쓴소리가 아니라 그냥 무의미하게 쓰기만 한 소리를 하는 것이 대부분인 법이니까요. 



 2.하지만 나는 어른이니까 조언이나 충고가 필요 없는 거고, 어린 녀석들에겐 역시 잔소리가 좀 필요해요. 그리고 어린 녀석들에게 잔소리를 할 때는 꼰대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게 요즘세상이죠.


 어린 친구들은 잔소리를 하는 대신 존중해달라고들 해요. 그야 그건 쉬운 일이예요. 왜냐면 그들이 말하는 존중은 사실 존중이 아니라 무관심이거든요. 인생이 좆되든 말든 알 바 아닌 놈들을 상대할 땐 그들을 존중해 주는 척 하면 되니까 열라 쉬워요.


 '넌 존나 이대로 완벽해. 남들이 지껄이는거나 사회의 평판에 1도 신경쓸 필요 없단다. 왜냐하면 네가 네 인생의 주인공이니까.'라고 달콤한 소리 좀 해주면 되거든요. 그리고 하하호호 하면서 헤어지는 거죠.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예요.



 3.전에는 '잘나가지도 못하는 어른의 충고는 필요 없다'뭐 이런 말도 했지만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왜냐면 확률적으로 보면 그렇거든요. 성공한 사람의 조언이야말로 쓸모가 없어요. 명확한 재현성을 지닌 조언이 아니니까요.


 왜냐면 현대사회의 성공이란 건 짧게 풀어보자면 결국, 작은 확률을 뚫고 자본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일이거든요. 1000명의 똑똑한 사람이 리스크투성이인 도전에 자본을 배팅하고 들이받으면 그중 몇명만 살아남는 게 성공인 거예요.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의 비결이 운이라고 말하는 건 그들이 겸손해서가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죠. 똑똑한 두뇌와 계획, 오랫동안 모아온 자본 삼박자를 모두 갖춘 도전자는 널렸지만 걔네들이 성공할 확률은 낮거든요.



 4.휴.



 5.그래서 확률 높은 조언이란 건 성공하는 방법이 아니라 실수를 적게 하는 방법에 관한 조언인 법이예요. 그래서 이젠 인생에서 실패를 여러번 겪어본 사람의 조언이 더 가치있는 거라고 여기고 있어요. 적어도 그들은 삶이라는 전쟁터에 어떤 지뢰가 있는지는 잘 알거든요. 왜냐면 그들이 직접 밟아봤으니까요. 성공을 겪어본 사람의 조언은 명확하지 않지만, 실패를 많이 겪어본 사람의 조언은 적어도 명확한 법이예요. 성공의 모델은 아주 확실하게 제시할 수 없지만 실패의 모델은 확실하게 전달이 가능하니까요.  



 6.뭐 그래요. 딱히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조언을 하려고 하면 한번쯤 들어둬도 괜찮은 것 같아요. 그야 그것이 개저씨-듀나의 표현을 빌자면-가 만만한 상대에게 가하는 에고의 배설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뭐...그걸로 그 사람의 기분이 나아진다면, 잠깐은 참고 들어 줘도 괜찮아요. 그 정도 여유가 있다면요.


 아니면 그 정도의 연민이 있거나.



 7.전에 썼듯이 요즘은 그래요. 내게 누군가 훈수질을 해도 반격하지 않고 그냥 넘기는 편이예요. 그런 상대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가 모처럼 얻은 승리감을 도로 뺏고 싶지는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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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일기가 산으로 갔네요. 원래 이런 흐름이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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