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를 아시나요? 위대한 책까진 아니지만, 몇몇분들은 기억하실지도요. 최강희 배우가 주연했던 드라마라도 옮겨졌고 책 자체도 꽤나 잘 팔렸습니다. 저는 원작의 팬이라 드라마는 보지 않았습니다. 티비 드라마라는 장르에 별 정을 붙이지도 못했고 지현우 배우가 태오 캐릭터를 맡는 것에 도통 적응할 수가 없었거든요. 은수는 주인공이니까 좀 많이 이뻐도 되지만... 태오는 훨씬 더 서글서글 귀티가 나야하는 거 아닌가? 지현우 배우는 이상하게 정이 안가는 배우였습니다. 지금은 「송곳」의 이수현을 맡아 잊을 수 없는 캐릭터를 남겨준 고마운 배우로 제 안에 자리잡아있지만요.

저는 이 책을 10년도 훨씬 전에 읽었습니다. 원래 이 책은 조선일보에 주간연재였나 일간연재였나 그렇게 연재되던 작품이었거든요. 때는 바야흐로 20xx년 x월 x일... 상황실에서 근무하던 쏘니는 간부들이 놔두고 간 조선일보의 한 면에 화려하게 그려진 일러스트를 보고 그 연재물을 읽게 되는데... 정말, 정말 웃겼어요. 일부러 번지게 그린 일러스트 아래로 정이현 작가의 쉴 새 없는 재잘거림이 남성성으로 가득찬 군대에서 저한텐 숨통이 트이는 기회였습니다. 한동안은 상황실 근무가 기다려지곤 했네요. 그래서 오히려 책으로 정식발매가 되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몇몇 내용이 덜어지고 바뀌었거든요. 귀여웠던 일러스트도 없고.

그 때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주인공 은수가 투덜대고 매번 이지선다에서 혼자 괴로워하는 게 웃겼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훨씬 더 즐겁게 읽고 있어요. 그가 품고 있는 이 하찮고 우주같은 고민들이 그 순간순간에는 어떤 느낌이었을지 너무 상상이 가니까요. 어른의 충동과 우유부단함을 이제야 제대로 곱씹고 있다고 할까요. 저도 은수랑 별로 다를 건 없기 때문에... 물론 저는 은수랑은 성별이 다르지만 아무튼! 군대에 있을 때는 전혀 몰랐던 회사 생활과 연애와 친구와 꿈의 이야기를 이제야 절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요. 저도 매번 지하철을 타면서 무력감을 느끼곤 하죠. 은수처럼 또다른 은수가 태어났을 평행우주의 평행조국을 고르는 망상은 펼치진 않지만...

글이 참 발랄해요. 얼마전 읽은 책이 최은영 작가의 책이라서 더 대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최은영 작가의 글은 뭐랄까, 늘 반쯤 감긴 눈꺼풀로 힘을 내서 상대를 응시하는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정이현 작가의 글은 동그랗게 뜬 눈동자가 분주하게 좌우상하를 흝고 다니는 기분이 듭니다. 어쩜 생각이 이리도 바쁜지. 어떡하지? 와 에라 모르겠다 를 계속 연쇄시키며 정이현 작가는 위태롭게 다리를 건축해나가는 것 같아요.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출렁출렁거려서 으앗 은수가 또 뭔가 곤란해졌어 하고 속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읽을 수록 계속 웃음이 새어나와서 죽겠어요. 한번 읽었던 책이라 제 안에서 단물빠진 껌처럼 그냥 말라붙어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전 이 책의 찰기를 반의 반도 못느끼고 삼켜넣고 있었네요. 이 책을 어서 읽고 정이현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굳이 패러디로 마무리를 하자면 이런 식의 문장일까요.

"정치다 외교다 온통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30대 여자의 진지함은 귀여운 소음으로 묻히고 마는 법이다. 그러나 귀엽다고 실존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물론 너무 바쁜 생활 속에서 오은수는 헤겔은 커녕 헬렐레로 사느라 정신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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