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7 13:35
넷플릭스에서 2022년 10월 28일에 공개한 영화입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 위주로 소개할게요.
소설을 예전에 읽어서 상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소설 원작을 영상으로 옮긴 많은 영화 중에서 이 작품은 무척 성공적인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물의 심리나 정서 같은 것을 내면의 소리로 세세히 전달할 수 있는 건 소설의 강점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특정한 개성적 인물의 전쟁 수난극이나 모험담, 후일담과는 거리가 먼 작품인데 영화가 그와 같은 특징을 아주 잘 살린 것 같아요. 영화는 개인의 특수성을 살리지 않습니다. 중심 인물 파울을 비롯 갓 19세의 앳된 학생 출신의 친구들이 조금씩 다른 면들을 지니고 있고 전쟁의 막바지까지 함께 고생하던 카진스키 같은 인물은 나이 마흔 줄의 구두 수선공 출신으로 현실 생활능력 면에서 빼어난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인물들의 개별성은 일상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능력치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등장 인물들에게 어떠한 신비감이나 독특한 매력을 부여하지 않아요. 그들의 어리석음과 일상 속에서의 지혜나 선량함 같은 것을 포함한 '평범한 독일인 민중'이 전쟁의 비인간적인 폭력성에 절단이 나는 것을 보여 줍니다. 파울이나 카진스키를 연기한 배우들이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다는 점도 기존 이미지의 후광이 없이 일개 병으로 보게 하는 역할을 하고요.
카메라가 보여 주는 장면들도 인상적입니다. 어떤 전쟁 영화 경우에 볼 수 있었던 물량 공세에 힘입은 영상의 장엄함이나 광활한 장면은, 생각해 보면 영화가 시각적인 매력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전쟁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들이 스펙터클한 강렬함 같은 것을 기대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니까요.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포가 쏟아지고 불에 타 죽고 몸통이 날아가고 팔다리는 흩어져요. 그러나 이런 전장의 장면은 거의 한 들판을 오가면서 진행되고 그 들판이 시각적 흥미를 유발하는 장소는 아니거든요. 호쾌한 전투의 카타르시스 같은 건 없습니다. 이 영화에 비하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상륙 장면이나 '1917'의 포탄 쏟아지는 장면은 전쟁의 무서움과 함께 스펙터클의 쾌감이 따라붙은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는 오직 현실적이고 잔인한 세부로 가득합니다. 제가 본 전쟁 영화 중에 그 현실성은 최고가 아니었나 싶어요. 실제 전투의 상황이나 참호 속의 군인들의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영화의 후반은 그래서 보기가 힘든 면도 있어요. 몹시 참혹하고 더럽고 혼란스럽거든요.
위에 쓴 인물 표현이나 시각적인 면을 볼 때 영화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반전의 명확한 메시지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많이 보시면 좋겠습니다. 좀 힘들긴 해요. 상영시간도 2시간 20분 넘고요. 그래도.
아는 배우는 다니엘 브륄 한 명이었어요. 저는 '러시'에서 좋았던 기억이 있어 반가웠어요. 여기선 볼살 통통하신 어르신으로 나오네요.
2023.01.17 14:04
2023.01.17 15:03
소개해 주신 덕을 많이 봅니다.
영화는 특히 마지막 부분이 소설과 달랐는데 중심 인물 비롯 작품을 매듭짓기 위해 그 정도는 영상물의 선택으로 괜찮았습니다. 다니엘 브륄이 제작 참여도 했군요. 저는 오랜만에 영화에서 만났습니다.
뭔가 과한 양념은 안 하고 정면 승부하는 면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런 면면이 독일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접근하는 태도가 다른 점은 있는 거 같아요. 이런 접근이 사람마다 좋을 수도 안 좋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좋은 영화를 봤다 싶네요. 독일 프랑스 국경에서 불과 백 년 전쯤에 저렇게 많은 사상자가 나온 전쟁을 했고 이어서 2차 대전으로 유럽 전역이 쑥대밭이 된 걸 생각하면 그네들의 재건 능력도 무서울 정도입니다.
2023.01.17 16:30
맞아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전쟁 장면은 정말 처참하지만 동시에 스펙터클이죠. 그 영화랑 '블랙 호크 다운' 이 두 영화가 밀덕들에게 얼마나 사랑받았고, 또 이후에 나올 총싸움 게임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가를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 ㅋㅋㅋ
전에 LadyBird님 글에도 아마 비슷하게 댓글 달았을 텐데, 평도 좋고 참 잘 만든 영화일 것 같지만 전쟁 영화는 보고 있으면 기분 나쁘게 피곤해져서 못 봅니다!!! 진짜 늙었나봐요. 주인공이 피곤해지면 저도 지치는... 하하.
2023.01.17 17:30
보고 있으면 이런 거 즐겨도 되나 싶은 영화나 장면이 있는 거 같아요.
전쟁 영화 잘 못 보신다고 그러셨는데 이 영화는 특히나 사실적이고 더 힘든 축에 속해서 추천 안 드릴게요.
제가 올라왔던 날에 추천글을 올렸었던 것 같아요. 제가 첫 영상화인 30년작 영화는 못봐서(너무 부담스럽게 고전;;) 각색물은 이게 처음이었는데 나름대로 적절하게 이것저것 가미하거나 생략해서 깔끔한 만듦새로 나온 것 같습니다. 다니엘 브륄은 제작자로 참여했던데 겸사겸사 약간 비중있는 카메오 출연도 한 것 같습니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어떻게든 정전협상을 해내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말씀대로 '평범한 독일인 민중'이 얼마나 파괴되는지가 잘 그려졌죠. 전쟁에 과연 진정한 승자는 있는 것일까라는 말도 생각나고 오프닝씬에서 전사한 그 병사의 군복이 재활용(?)되서 돌아오는 과정의 연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순진한 주인공과 친구들은 선동에 넘어가서 영웅이 되겠다는 생각에 자원하는 모습도 안타깝고요. 정말 잔인하기로 유명했던 라이언 일명 구하기의 상륙 장면이 이 영화랑 비교하면 꼭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할리우드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 작품은 말씀대로 나름 카타르시스도 있고 미국인들 국뽕차게 만드는 요인들도 많은데 이 작품은 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