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른 곳에 먼저 올려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기생충> 가상 시나리오 (아무말 대잔치)
민혁이가 기택네 가족에게 수석을 선물로 줄 때 기우와 기택이 하는 말
기우: 민혁아, 야 이거 진짜 상징적인 거네.
기택: 그러게.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기우가 박사장 집으로 떠날 때 기택이 기우에게 하는 말
기택: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서 6개 부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작년 칸영화제 수상과 골든 글로브 수상에 이어서 오스카 후보 지명까지 생전에 꿈도 안 꿨던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게 너무 놀랍고 대단하고 기쁜 가운데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 속에 스쳤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걸 전제로 얘기해보자면 <기생충>에서 기택이 기우에게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한 말이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그 계획이란 사실은 영화 속 계획이 아니라 오스카 후보 지명을 비롯해서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기생충>의 놀라운 성과와 관련된 계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생충>에서 민혁이 가지고 온 '수석'은 영화 속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텐데 나는 수석이 내러티브 장치로서 이야기의 숨은 동력이자 일종의 맥거핀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제 문득 수석은 사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나왔던 '모노리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노리스가 인류를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켰던 것처럼 수석이 작년 칸영화제를 시작으로 올해 오스카 후보 지명까지 <기생충>을 이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걸 예감한 기우는 수석을 보면서 '상징적'이라고 말했던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기생충>의 주인공들은 꼭대기로 올라가려다가 결국 실패했는데 현실에서 <기생충>은 아직까지 언제 끝이 보일지 모를 정도로 계속 상승 중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지금 상황이 너무 신기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번 해봤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한국 시간으로 2월 10일 오전 10시에 개최된다고 한다. 세상에! 그날은 내 생일이다. 칸영화제때부터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기생충>은 정말 나와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작품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있어서 아카데미 시상식은 한 해의 가장 즐거운 이벤트 중의 하나였다. 영화를 좋아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가족이 한데 둘러앉아서 수상 결과를 맞추며 시상식을 봤던 시간은 어린 시절 가장 행복한 기억 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공중파 방송이나 AFKN에서 볼 수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을 매년 녹화해둘 정도로 좋아했다. 배리 레빈슨의 <레인 맨>,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 등 가족이 함께 아카데미 수상작들을 보러 간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리고 97년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을 미리 보고 작품상을 맞춰볼 생각으로 후보작들을 보다가 코엔 형제의 <파고>를 보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 갖게 된 이래 오늘날까지 영화에 빠져 사는 걸 봐도 나와 아카데미 시상식의 인연은 남다르다고 하겠다.
그런 아카데미 시상식이 내 기억으로는 처음으로 내 생일에 열리는 것도 기쁜데 올해는 한국영화 최초로 <기생충>이 작품상을 포함해서 무려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와있으니 나에게 있어 올해만큼 즐거운 시상식은 이후로도 없을 것 같다. 수년째 생일날 기껏해봤자 혼자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자축하는 정도였으니 <기생충> 수상을 응원하는 가운데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보낼 올해 내 생일은 장담컨대 역대 최고가 될 전망이다. 문득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내 생일날 같이 시상식을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은 <기생충>을 보고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기생충>을 보고 부모님과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많이 슬프고 아쉽다.
<기생충>이 6개 부문에 후보 지명을 받은 것으로도 이미 기쁘지만 연기자 부문에서 후보에 오르지 못한 건 아쉽다. <기생충>의 주요 연기자들이 오스카에도 오를 만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 기회에는 한국 배우들도 아카데미 후보에 오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년에 아카데미 작품상은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받기를 바랬었는데 피터 패럴리의 <그린 북>이 받아서 많이 아쉬웠다. 물론 오스카 후보 지명만으로도 이미 대단하지만 올해 외국영화인 <기생충>이 92년만에 오스카 역사상 처음으로 작품상을 수상하는 기적이 벌어지기를 한번 기대해본다.
진심으로 <기생충> 오스카 6개 부문 후보 지명 축하드려요! 수상 응원합니다! ^^
P.S: 이승준 감독의 세월호 관련 다큐인 <부재의 기억>도 한국영화 최초로 오스카 단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다.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기생충>이 Screen Actors Guild Awards(SAG)의 Outstanding Performance by a Cast in a Motion Picture 후보에 올랐더군요.
비록 아카데미상의 연기 부문 후보에 오르진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높은 평가가 느껴집니다.
앞으로 있을 SAG, DGA(Directors Guild of America), WGA(Writers Guild of America)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2월 말이나 3월 초에는 좀 바빠서 2년 내리 아카데미 생중계를 못 봤던 것 같은데 올해는 2월 10일이라니 편안히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