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0 04:26
지난 주에 생일이었습니다. 자다가 잠이 깨어서 전화기 시계를 봤더니 00:01. 비몽 사몽간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사실 생일 당일날은 거의 하루 종일을 공항에서 보냈어요. 미루어진 신혼 여행겸 생일 선물겸으로 저희 가족은 리사본에 있었고, 생일날이 돌아오는 날이었거든요. 요즘 암스테르담 공항 문제로 비행기가 추소 되는 바람에 예약했던 때 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야 했거든요. 어디에 있던 아이패드와 음료수만 있으면 생생한 아이빼고 저랑 울로프는 도대체 하는 거라고는 앉아 있는 것 뿐인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 하며 시간을 보냈지요.
리사본은 정말 좋더군요. 리사본으로 정한 이유는 우리 둘이 다 간적이 없는 곳에 함께 처음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는 데 생각보다 더 좋았습니다. 그 어딘가를 둘 다 그 전 경험없이 함께 백지 상태에서 경험한다는 게 참 좋더군요. 지중해라 해도 특별했던 더위 (올해 10월 말에 지중해는 이상하게 따듯했습니다), 둘 다 처음 접하는 음식문화, 둘 다 모르는 길. 저희가 여러모로 다 잘 맞지만, 정말 여행할때 너무 잘 맞아서 편해요. 둘다 하루를 꽉 채우기 보다는 그냥 하루에 하나 둘 정도 하고 나면 걸어다니고 쉬고 맛있는 거 먹는 거 정도면 대 만족이거든요. 줄 서는 거 둘다 싫어해서 금방 포기하기도 하고요. 저 성은 다음에도 있어, 혹은 성이 성이지 뭐 이러면서.
리사본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더군요. 음 관광객한테 뭘 팔려고 친절한 거 보다 그냥 마음이 여유로워서 친절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신호여행, 제 생일 여행이라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아이한테 맞춘 여행이었습니다. 유명한 현대 미술 박물관이 아닌 전철 박물관을 보고, 수족관을 가고 (이건 저희가 늘 여행을 가면 하는 거에요) 아이스크림 많이 먹고. 그런데 4년 전 저희 셋이 처음으로 여행했을 때에 비하면 정말 편한 여행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이 되었고 영어로 자기의사를 표현하고 무엇보다 사라지지 않고. 호텔 마지막 날, 아침을 먹고 나오면서 아이를 매일 따뜻하게 바라보던 호텔 레스토랑 종업원께 가서 우리 이제 가니까 제대로 Thank you and Good bye라고 인사하라고 했더니, 가르치지 않았는 데 이럴때는 배꼽인사를 하면서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 분에 어머 하시더니 아이한테 한번 안아볼래 하시고 잘 가라고 하시더니 저보고 자기 아이가 보고 싶다고. 그 전에 자기도 10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했는데 아마 이분은 노동이주자 이신가 봐요.
00:01 살짝 있는 정신으로 감사기도. 사실 생일을 맞이하는 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당연히 더 좋지만 그리고 당연히 생일을 맞이하겠지 하지만, 아마 대부분 청춘 들에게는 50이 되는 나, 60이 되는 나를 상상하기 힘들겁니다. 32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I have this thing where I get older, but just never wiser 라고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피싯 웃게 되지요. 뭐하나 더 쉬워진건 없는 거 같은데, 제 영역이 아닌 건, 제 책임으로 만들지 않는 걸 연습하고 있습니다.
직장으로 돌아오니 동료들이 생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의 책 주인공 중 한면 로타의 대사 "Det är konstigt med mig. Jag kan mycket (It's strange with me. I can so much)" 가 새겨진 컵을 받았습니다. 하하
2022.11.10 08:16
2022.11.10 18:08
한국식으로는 지나고 나선 축하하지 않나요? 그렇구나. 여기선 거의 그 전에 축하하지 않고 다 지나고 나서 하는데 하하.
그때까지 듀게가 안녕하기 위해 저도 로이배티님 처럼 가끔이라도 글을 쓸려고요.
2022.11.10 08:19
2022.11.10 18:11
50은 정말 숫자가 무겁게 느껴집니다. 아마 그래서 다들 저보고 '어머 생일 이라면서, 37?" (저한테만 이러는 게 아니에요. 다들 나이를 깍아서 축하해줘요)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살날이 덜 남아서 그런건지, 어른이어야 하는데 어른이 아닌거 같아서 그런건지 좀 있으면 나없는 세상이 오겠구나 이런 생각까지 덥치면... 감사하면서 보내시는 이들에게 복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요
2022.11.10 09:30
지났지만, 생일 축하합니다.
저도 지난주가 생일이었어요. 나도 축하,,,
즐거운 인생 되시길 바래요.
2022.11.10 18:11
생일 축하합니다.
2022.11.10 10:46
생일 축하드립니다.
30살에는 '서른 즈음에', 40살에는 '내 나이 마흔살에는'이 있는데, 50살에는 맞는 노래가 없네요.
얼마 있으면 우리나라식으로 한 살 더 먹는 건 함정.
2022.11.10 18:14
제 동생은 저보다 더 12월 말 생이어서 정말 태어나자 마자 두살이 되었죠. 지금은 미국에 사는 데 처음에 갔을 때 언니 나 두살 어려졌어 하며 까르르 웃던게 생각나요
50에 맞는 노래,,, 무얼까요? 아 이거 흥미롭네요
2022.11.10 12:26
생일 축하드립니다~ 리스본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리스본 가고 싶은 충동이 스물스물 일어나네요. 빔 벤더스의 리스본 관광 홍보영화인 '리스본 스토리' 때문에 꼭 가보고 싶은 장소인데 부럽습니다.
2022.11.10 18:18
아 정말 편한 곳이었어요. 사실 9월에 저는 일, 울로프랑 선물이는 제가 간다니까 휴가 받아서 밀라노에 갔었어요. 저야 뭐 일하느라 별로 관광 하지 못했는데 약간 좋은 기억을 헤치는 경험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상대적으로도 더 좋게 기억남네요
2022.11.11 08:41
축하드립니다. 다사다난한 삶을 일년 단위로 50번이나 반복할 수 있다는 것도 참 축복인 것 같습니다. 리스본이라니 말만 들어도 멋지군요.
2022.11.13 01:20
박물관들도 많고, 이 늦가을에 꽃도 피고, 멋있는 곳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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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으로 생일은 지나고 나선 축하하지 않는 거라고 하지만 그래도 축하드리고 싶네요. 축하드립니다!! ㅋㅋ
글을 멋지게 잘 적어주시는 것도 있겠지만 그냥 적어 주신 생일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멋지게,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신 것 같아서 좋아 보이구요. 직장 동료분들 생일 선물도 센스 있고 좋네요. 하하. 이제 저도 50이 멀지 않았는데. 그땐 저도 반세기 기념으로 뭐라도 적어볼까봐요. 그 때까지 듀게가 안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