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zon-Studios-La-Union-de-los-Rios-Keny


얼마 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제치고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여 국내 영화팬들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저도 대체 얼마나 잘 만들었길래? 하면서 검색해봤더니 평도 매우 좋고 마침 아마존 프라임에 올라와있길래 감상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우리나라 영화 '1987'이 연상되고 다루는 소재와 내용도 비스무리 합니다. 다만 이 작품은 이미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주정권이 들어선 상태에서 끔찍한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책임자들을 어떻게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이끌어낼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는 하지만 막 정권이 교체된 직후인지라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는 피고인들을 지지하는 권력자들과 이들에 협력했었던 경찰들 그리고 기존 정치성향 + 오랜 세월동안 세뇌당해온 결과로 자신들을 속여먹고 이용해왔던 이 학살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적지않은 숫자의 일반 시민들까지 있어서 이 사건을 맡은 주인공 검사의 갈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아직 경험이 미천하지만 젊은이들로 구성된 법무팀을 꾸리는데요. 왜냐면 그나마 기존 독재정권을 싫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거의 2시간 20분에 달하는 긴 상영시간 동안 주인공과 그의 팀이 얼마나 갖은 고초와 노력을 통해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중요했다고 평가받는 이 재판을 준비하고 싸웠는지를 보게 됩니다. 단순히 정의로운 주인공이 사악한 악인들을 응징한다는 식으로 단순화/왜곡하진 않았구요. 주인공 검사와 그를 바로 옆에서 돕는 검사보 캐릭터의 여러가지로 복잡한 사정들을 차차 알게 되면서 다차원적인 시각으로 이들을 이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재판 자체도 어려운데 자신들은 물론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가해지는 살해협박 등은 서스펜스를 가중시킵니다.



작품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뽑을 수 있는 것은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직접 듣는 시퀀스들입니다. 이런 소재를 다룬 법정물에서 관객들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매번 사용되는 연출이지만 그만큼 이번에도 효과적입니다. 게다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그들이 당한 각종 납치, 고문의 수위가 높아서 온몸이 부들거리고 치가 떨리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소재인 실제 아르헨티나 7~80년대의 일명 '더러운 전쟁'은 사실 사전에 잘 몰랐던 일입니다만 작중 나오는 대략적인 설명들 만으로 금방 감을 잡을 수 있더군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독재자들이 하는 짓거리는 결국 세상 어디나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독재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기미가 보이는 사람들은 죄다 잡아들여서 고문하고 공산주의자(빨갱이)로 몰아가고 뭐 그런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얘기들입니다.



엄청 진중하고 무거운 톤의 영화이긴 하지만 중간 중간 그걸 흐리지 않는 선에서 의외로 상황에 맞는 밝고 코믹한 부분들도 있어서 긴 상영시간과 무거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좋은 앙상블 영화이면서도 역시 극을 이끌어가는 아르헨티나 국민배우 리카르도 다린의 중심을 잡아주는 강렬한 연기가 대단하구요. 완성도 자체에 태클을 걸 소지는 거의 없지만 그런만큼 너무 모범적이고 무난한 느낌도 강해서 그래도 '헤결'이지! 하는 팔이 안으로 굽는 불만도 없진 않습니다. ㅎㅎ 



--------------

*마지막 엔딩까지 본 상황에서도 설마 이렇게 고생했는데 세월이 지나서 흐지부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화면에 뜨는 이 재판 이후의 일들에 대한 자막을 보고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완벽한 정의의 실현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만 이뤄져도 그게 어딘가 싶었네요. 그런데 어떤 나라는 힘들게 잡아넣은 학살자를 허무하게 사면해줘서 평생 경호 받고 떵떵 거리며 살다가 결국 천수를 누리고 떠났다죠? 어느 나라인지 참 한심하네요....



*아시다시피 불과 몇 달 전 아르헨티나가 2022년 월드컵을 들어올렸는데요. 재밌게도 아르헨티나가 그 전에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1986년에 '오피셜 스토리'라는 아르헨티나 영화가 그 해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번에는 2022년 우승, 23년 골든 글로브 수상인지라 연도가 살짝 다르지만 그래도 나름 평행이론이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78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41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592
122253 '애프터썬' 봤습니다. [11] thoma 2023.02.02 523
122252 슬램덩크에서 좋아하는 서사 [5] 첫눈 2023.02.02 507
122251 프레스티지 (2006) catgotmy 2023.02.02 141
122250 [영화바낭] 뭔가 비슷하게 이어가서 이번엔 '자귀모'를 봤구요 [19] 로이배티 2023.02.01 557
122249 에피소드 #22 [2] Lunagazer 2023.02.01 95
122248 프레임드 #327 [4] Lunagazer 2023.02.01 114
122247 쉬운 성경을 보다가 [4] catgotmy 2023.02.01 323
122246 후쿠오카에 다녀왔습니다 [5] 칼리토 2023.02.01 633
122245 [허트 로커]를 보고 [7] Sonny 2023.01.31 546
122244 [왓챠바낭] 망했지만 뭔가 의미는 많은 영화, '구미호' 잡담입니다 [18] 로이배티 2023.01.31 689
122243 휴고 (2011) catgotmy 2023.01.31 214
122242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8] 조성용 2023.01.31 742
122241 김연경, 남진, 김기현, 사진, 꽃다발 왜냐하면 2023.01.31 486
122240 연기와 진짜실력 사이 [2] 예상수 2023.01.31 427
122239 연애도 수학으로 [1] Sonny 2023.01.31 310
122238 프레임드 #326 [8] Lunagazer 2023.01.31 117
122237 '성관계는 부부만 가능' 조례 검토에 서울시의회 '시끌' [6] ND 2023.01.31 796
122236 [영화바낭] 어쩌다 보니 장현수 3연타. '본 투 킬' 잡담입니다 [14] 로이배티 2023.01.31 464
122235 영화, 게임 스포일러 [1] catgotmy 2023.01.30 184
122234 프레임드 #325 [4] Lunagazer 2023.01.30 10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