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9 00:15
- 2005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58분. 중반까지 전개의 내용은 본문에 들어 있고, 결말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 적겠습니다.
(어찌보면 무성의한 포스터인데, 영화를 보다가 포스터의 저것(?)이 나오는 순간 아. 하는 느낌이 듭니다.)
- 내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나? 싶은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골목길에 선 카메라로 골목길 맞은편의 어떤 집을 비추는데, 한동안 아무 것도 움직이질 않거든요. 특별한 소리도 안 나고. 그렇게 한참 지나다가 집에서 사람이 나오고 걸어가고... 하다가 갑자기 되감기(퍼니 게임이냐!)가 들어갑니다. ㅋㅋㅋ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테이프를 보고 있는 부부의 장면으로 넘어가죠.
주인공 주르주(다니엘 오떼이유)는 잘 나가는 방송인입니다. 문학 관련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구요. 아내(줄리엣 비노쉬)는 역시 비슷하게 출판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사장이 자기 친구래요. 하지만 일도 잘 하고 또 열심히 하는 듯 하구요. 어린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아주 지적이게, 그러면서 넉넉하게 잘 살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첫 문단과 같은 내용의 비디오 테잎이 집 앞에 놓여지기 시작하는 거죠. 정말 아무 내용도, 메시지도 없는 비디오지만 그걸 보면서 부부는 불안에 빠지고, 특히 남편은 확실히 무언가를 떠올리며 잠을 못 이루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테잎이 쌓여가다가 어느 날 드디어 남편은 그 영상에서 결정적인 힌트(대충 집 주소입니다?)를 발견하고, 용감무쌍하게 그 집을 찾아가는데 거기에는...
(그냥 아무 일 없이 이 풍경만 바라보는 시간이 런닝타임 중 5분은 넘지 않았을까 싶구요. ㅋㅋ)
- 유럽 감독들 중엔 좀 변태스런 감독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만. 이 미카엘 하네케 아저씨는 참으로 변태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선뜻 손이 잘 안 가요. 영화들이 뭐랄까, 최종적 제 만족도와 별개로 참 사람 불편하게 만들잖아요. '퍼니 게임'처럼 대놓고 강렬하게 달리며 관객들을 몰아 붙이는 영화도 있지만 그에 비해 대체로 온건한 내용의 드라마라고 해도 암튼 이 사람이 만든 건 보는 게 불편하고 또 그만큼 피곤합니다. 그리고 이 '히든'은 후자, 그러니까 별 거 없는 것 같은데 불편하고 피곤한 영화였습니다. 일단 제게는요. ㅋㅋ
(주인공 조르주씨입니다. 정말 이입도 몰입도 안 되는 양반이지만 애초에 그러라고 만들어진 캐릭터이니 괜찮습니다.)
- 초반엔 조르주의 그 비밀이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알려주질 않아요. 그냥 이 괴상한 비디오 테잎 사건에 조르주가 대처하는 모습만 건조하게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별로 아름답진 않습니다. 일단 뭔가 되게 켕기는 놈처럼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구요. 그러면서 남들 안 보이는 곳에서 혼자 극도로 긴장해서 신경을 곤두 세우죠. 그러면서 괜히 사방에 분노와 짜증을 발사하는 폼까지 보고, 그 와중에도 사람들 앞에선 계속 교양, 세련, 정의 컨셉을 가까스로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건 몰라도 '아, 얘가 잘못했고 얘가 나쁜 놈이구나'라는 건 확실히 전달이 됩니다.
(생각해보면 영화 속에서 이 양반이 누군가에게 버럭버럭 화를 내는 장면이 몇 번 안 나오는데 그게 이 흑인과 알제리인...)
- 이제 드디어 영상 속 그 집을 찾아가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당연히 수수께끼가 풀리길 기대하지만 역시 그렇게 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대략의 답이 나오는데요. 조르주가 어렸을 때 누군가를 배척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그게 먹혀서 그 누군가는 인생이 대박 꼬이게 되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우리 조르주씨는 당연히 자신을 변호할 멀쩡한 논리가 있죠. 그때 난 고작 6살이었다. 그리고 그 놈이 그 상황까지 가게 된 건 내 계획도 아니었다. 난 그렇게까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라는 건데요.
...사실 맞습니다. 이건 반박 불가에요. 다만 문제는 이 양반의 태도입니다. '그걸 갖고 지금까지 원한을 품고 있다면 그 놈은 정신병자'이구요. '난 잘못한 게 아니고 그래서 조금도 미안하지 않아'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나와 가족을 위협한다면 가만 두지 않겠어!!'라고 거의 두들겨 패 버릴 기세로 협박까지 하죠. 고상하고 세련되신 좌파 지식인께서 이러시면 곤란한데 말입니다...
(왠지 프랑스 영화들 보면 꼭 한 번은 이런 장면 나오지 않나요. 세련된 지성인들이 한 자리 모여 식사를 하며 지적인 수다를!)
- 그리고 여기에서 대놓고 감독의 의도 하나가 친절한 설명과 함께 첨가됩니다.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있었던 충격적 사건인데요. 그게 뭔지까진 얘기하지 않겠지만 암튼 '그 누군가'가 그 사건의 피해자 중 하나라는 설정이 들어가 있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니 생각 외로 이게 꽤 친절한 영화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프랑스 정부가 어떤 집단에게 안면몰수급의 폭력을 행한 후에 입을 딱 씻고 은폐해버렸던 사건인 겁니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관련 통계를 발표하고 그랬다니 한국의 몇몇 사건들이 떠올라서 이해가 쉽더라구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 조르주씨는 당시 프랑스 사람들, 특히 프랑스 지식인과 중산층 계층을 살짜쿵 대표하는 캐릭터 같은 위치인 거죠. 그렇게 자유 평등 박애 등등 아름다운 말들을 외치며 빼어난 지식으로 화려한 논리와 언변을 자랑하지만 사실은... 뭐 이런 느낌.
이후의 전개까지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스토리 얘긴 여기까지만 하구요.
(주인공들이 얼마나 지성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인지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장면마다 이렇게)
(책이 가득합니다. 물론 주인공 부부 직업 때문이긴 한데, 그렇다고해서 의미가 달라지는 건 아니겠죠.)
- 결국 그 불쾌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프랑스 지식인, 부르주아들의 모습을 (역사적 사건 하나와 연결해서) 싸늘하게 비웃고 풍자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냉정하고 차분한 톤을 유지합니다. 그렇게 극적인 사건도 거의 안 벌어지구요. (딱 한 번 아주 강렬한 게 나오긴 합니다) 카메라는 거의 고정 상태로 한 씬을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무슨 연구자가 대상 관찰하듯 잡아내구요. 그래서 막 화끈하게 재밌고 그런 영화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의외로 그 미스테리와 긴장감이 영화 끝까지 팽팽하게 유지가 됩니다.
이걸 보면서 느낀 건데, 하네케는 고정샷으로 별로 안 중요한 모습들을 길게 보여주는 방식을 되게 잘 활용하는 사람 같았어요. 그게 자칫하면 그냥 지루하고 졸린 연출이 되기 쉬운데, 그렇게 하면서도 '어떤 식으로 구성을 해야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화면 속에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게 만들까' 라는 것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느낌.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 여기서 내가 뭘 찾아서 봐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구요. ㅋㅋ 그리고 가끔은 그게 그냥 넘어가는데, 또 어떨 땐 그 찾을 대상을 발견하게 되고. 이런 식으로 사람 조련을 하던(...)
(영화 보신 분들이면 아시겠지만. 뭐 이런 식입니다. 여기에 중요 인물 하나가 있어요. 클로즈업 안 해줍니다. 알아서 잘... ㅋㅋㅋㅋ)
- 또 한 가지 재밌었던 건, 결말 부분에서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지 않고 마무리지어 버린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이야기 전개를 놓고 생각해보면 범인(?)은 아주 뻔하거든요. 그 모든 걸 할 수 있었던 사람, 그리고 그럴 동기를 가진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죠. 그런데 주인공이 그 사람에게 '니가 했잖아!!' 라고 캐물을 때 그걸 부정하는 그 사람의 반응이 되게 진실합니다. 배우의 연기도 그렇고 감독의 연출도 정말로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러다가 영화를 그냥 끝내 버리니 어리둥절해지는데. 어쩌면 그 테잎을 보낸 게 (아주 거창하게 말해서) 시대의 양심이고, 정의를 원하는 사람들이고, 혹은 감독 본인인 것처럼 처리한 게 아닌가. 뭐 그런 쓸 데 없는 생각도 들고 그랬습니다.
(뻔하지만 의미심장하게 잘 연출됐던 엘리베이터씬. 주인공과 중요 캐릭터 하나가 말 없이 마주보는 장면입니다.)
- 암튼 뭐 대충 마무리하자면요.
저답지 않게 보면서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어요. 그래서 다 보고 나니 뭔가 보람찬 기분도 들구요. ㅋㅋ
나름 선명하고 구체적인 이슈가 중심을 잡고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난해하다거나 난감한 기분까진 안 들더군요.
진지한 사회성 드라마지만 감독의 그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특기 덕에 별 거 없이도 꽤 훌륭한 스릴러로 완성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재밌게 봤어요. 다만 애초에 장르물과는 거리가 멀고, 또 마지막에 시원한 끝맺음 같은 것도 없으니 혹시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선택에 참고하시구요.
...근데 이게 벌써 17년 된 영화이고 하네케는 이 이후로도 영화 다섯 편(티비 영화 하나 포함)을 더 만들었군요. 뭘 더 보긴 하고 싶은데,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하나 봤으니 이제 한동안은 다시 장르물로 해독을 해야겠습니다. ㅋㅋ 암튼 잘 봤어요. 끝.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원하시는 분만 아래를 긁으시면 되구요.
그러니까 1961년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알제리인 &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들에 대한 학살 사건이 핵심입니다. '그 남자', 이름이 '마지드'인 그 남자는 그 사건으로 부모를 잃었고, 자기 부모가 일하던 집안에서 그를 입양해줬는데 그게 조르주네 집이었던 거죠. 조르주는 그가 자기 형이 되는 게 싫어서 거짓말을 해서 고아원으로 보내 버렸고. 그는 그 일을 평생의 한으로 품고 살아왔던 것.
하지만 그는 비디오 테잎에 대해선 절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또 그게 되게 진심입니다. 하지만 조르주는 뭔 개뿔 아주 그냥 거짓말 천재네 이 정신병자가(...) 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아들이 하루 연락 없이 외박한 날 그놈이 자기 아들 납치했다고 경찰에 신고해서 체포되게 만들어요. 집에 함께 있었던 그의 아들까지요. 당연히 금방 풀려납니다만.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그 잠시 후에 벌어집니다. 마지드가 할 말이 있다며 조르주를 집으로 부르고, 찾아가서 여전히 건방지게 구는 조르주 앞에서 '내가 이걸 할 때 니가 꼭 내 곁에서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라며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자신의 목을 긋습니다.
하지만 조르주는 그저 '그럼 범인은 갸가 아니라 갸 아들이었나?'라고 생각할 뿐 여전히 미안함은 개뿔도 없구요. 직장까지 찾아와 '잠깐 얘기 좀 하자'고 요구하는 그 아들에게도 계속해서 냉정하게 쏘아 붙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죽였니? 응?? 너 계속 나 비디오 테잎으로 협박하면 진짜 가만 안 둔다?
그러자 마지드의 아들은 뭔가 되게 직설적인 대사를 쏘아 붙이고 떠나요. 대략 이런 겁니다. "울 아버지는 고아원행 때문에 교육을 못 받은 게 평생의 한이었다. 내가 여기 온 건 사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배운 놈은 어떤가 궁금해서였는데, 배운 사람의 모습 아주 잘 봤다." ㅋㅋ
마지막은 집에 돌아간 조르주가 아내에게 전화해서 '나 피곤해서 약 먹고 좀 잘 테니까 깨우지 마'라고 얘기한 후 여전히 뭔가 불안하고 켕기지만 억울한 듯한 폼으로 이불 속에 들어가 눕는 장면이구요. 여기서 끝... 인 척 하는데.
크레딧 장면이 또 의미심장합니다. 중간에 한 번 나왔던 아들의 학교 계단, 하교 시간이라 다들 집에 가거나 계단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화면 구석에 조르주의 아들이 나와서 친구들이랑 대화를 해요. 그때 화면 반대편에서 마지드의 아들이 등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 조르주의 아들을 붙들고 뭘 한참 얘기를 합니다. 웃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네요. 물론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관객들은 알 수 없고, 잠시 후 대화를 마치고 그 둘이 각각 화면 밖으로 사라지면서. 아니 그러고도 잠시 더 무의미하게 그 계단을 비춰주다가 영화는 완전히 막을 내립니다.
2023.01.29 02:31
2023.01.29 22:35
맞아요. 재밌냐 재미 없냐고 하면 재미 없다는 쪽에 가까운 것 같은 기분인데 그냥 궁금하고, 그냥 계속 봐야할 것 같고, 뭔가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고. 그런 괴상한 분위기가 있더라구요. ㅋㅋ
엔딩은 정말로 그냥 답 없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질러 버린 것 같아요. 내 영화 보고 집에 가서 싹 잊어버리지 말고 고민 좀 하라고!!! 라는 감독의 사악한 함정 같은 느낌. 그리고 방금 본 제 소감으론 줄리엣 비노쉬는 그렇게 큰 비중 없는 캐릭터 맞아요. 굳이 확인 안 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ㅋㅋ 뭔가 이리 생각할 수도 있고 저리 생각할 수도 있는 떡밥 하나가 있긴 한데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영화를 본 관객들이 검색 하고 자료 찾아가며 프랑스가 숨기고 싶어하는, 다 알더라도 굳이 다시 떠올리지 않게 하고 싶어하는 과오에 대해 알아가고 또 거기에 분노하게 하는 게 감독의 의도였겠죠. 우리는 착한 관객들인 걸로! 하하.
2023.01.29 22:14
2023.01.29 22:38
맞아요. 정서도 다르고 템포도 다르고 뭔가 많이 다르죠. 특히 프랑스는 자기네가 실제로 영화 종주국이라든가, 누벨 바그 시대의 아름다운 추억이라든가 등등 자부심 가질 꺼리가 많아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홍세화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프랑스의 토론 교육' 얘기가 구라는 아니었나 봅니다. 뭐 그래도 그 양반 덕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똘레랑스' 같은 건 이미 이래저래 세화 아저씨 프랑스병 있었구나... 정도로 전락해버렸죠. 그쪽 인종 문제 보면 정말...;
2023.01.29 23:46
이 영화 포함해서 '피아니스트', '해피엔드' 제가 본 이 감독님의 영화는 재미있다,는 아니지만 다 뭔가 화면에서 긴장이 느껴져서 지루함을 못 느끼고 계속 보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긴장, 불안감, 제목에 쓰신 불편함, 이런 게 끌고 가는 힘이 아닌가 싶어요. '피아니스트'도 마지막 장면이 그랬고 위에 포스터의 그 장면 참 잊기 어려운 순간입니다. 갑자기 일상을 확 찢고 들어오는 느낌? 최근 영화는 그나마 예전 보다는 순한 맛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2023.01.30 00:03
불안 불안 불편 불편... 보는 내내 그런 느낌인데 그래도 끝이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더라구요. '갑자기 일상을 확 찢고 들어온다'는 표현이 되게 와닿네요. 정말 극적인 연출을 아예 배제하고 무심하게 보여줌으로써 훨씬 극적인 느낌을 줬죠. 거기에 반응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참 그랬구요.
그래도 최근 영화는 순한 맛이 되었다니 (저는 안 봐서 모릅니다;) 미카엘 하네케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군요. 폴 버호벤 할배는 나이 먹고 오히려 다시 젊은 시절 변태끼를 되찾는 것 같아 좋습니다. ㅋㅋㅋㅋ
되게 길게 느껴지고 지루한 것 같은데도 묘하게 궁금하고 계속 보게 만들었던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분명 재미는 없는데 또 그렇다고 중간에 꺼버리긴 싫다고나 할까 ㅋㅋ
하네케는 고정샷으로 별로 안 중요한 모습들을 길게 보여주는 방식을 되게 잘 활용하는 사람 같았어요. 그게 자칫하면 그냥 지루하고 졸린 연출이 되기 쉬운데, 그렇게 하면서도 '어떤 식으로 구성을 해야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화면 속에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게 만들까' 라는 것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느낌.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 여기서 내가 뭘 찾아서 봐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구요.
이 부분에 크게 공감하네요. 그래서 재미 없는데도 계속 봤나봐요. 또 언급하신 그 충격적인 씬과 조르주와 그 캐릭터의 과거를 회상하는 씬처럼 강렬하게 임팩트를 주기도 하고요. 엔딩 시퀀스는 정말 당황스러웠던 기억입니다. 사실 그 비디오 테이프 보낸 범인은 영화 외적으로 관여하는 존재(감독?) 이런 식으로도 생각을 해봤었는데 엔딩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말이죠. 국내외 감상평들을 뒤져봐도 의견들이 분분하더군요. 하여간 정말 그 프랑스 부르주아 지식인의 비겁함과 위선, 아예 심정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정 이입해줄 생각은 1도 안드는 연기를 다니엘 오퇴유가 참 얄밉게 잘해줬어요. '제 8요일'로 기억하는 배우인데 거기서도 캐릭터 성격은 여기랑 크게 다르진 않은 느낌도 들어요. 줄리엣 비노쉬는 여기서는 약간 배우의 기량에 비해 활용이 아쉬웠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작중 언급되는 그 실제사건은 관람 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찾아보니 정말 처참하더군요. 그렇지 않은 나라가 얼마나 되겠냐만 프랑스도 참 꼭 전쟁이 아니어도 피를 많이 흘리며 역사를 써온 나라인 것 같습니다. 하네케 감독님 이후 작품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하얀 리본'이 제일 좋았어요. 이것도 참 보고나면 기분이 영 불쾌하고 찝찝한 건 마찬가지 입니다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