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3 20:50
- 1978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53분. 스포일러는 맨 아래에 흰 글자로...
(포스터가 뭔가 컨셉 아트 같은 느낌이에요. 자체 스포일러를 불사하는 패기도 멋지구요.)
- 보스턴에서 짱짱 잘 나가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외과 의사 '수잔'이 주인공입니다. 결혼은 안 했지만 같은 데서 근무하는 잘 생긴 마이클 더글라스 의사님과 연애 중이고요. 근데 자기 절친이 별 거 아닌 간단한 수술을 받으러 들어갔다가 그대로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뭐 마취라는 게 아주 낮은 확률이라 해도 그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절친이잖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가 야단만 맞고,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혀 보려는데 다음 날, 아주 젊고 쌩쌩한 톰 셀릭 환자가 또 같은 일을 당해요. 이건 아니다! 분명 뭔가가 있다!! 라고 외치는 수잔과 수잔이 그렇게 설치다가 애인인 자기 평판까지 망할까봐 뜯어 말리는 더글라스님.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사건(?)을 파해쳐보겠다는 수잔에겐 과연 어떤 일들이...
(이렇게 둘이 짜잔~ 하고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수잔. 원탑입니다.)
- 쥬라기 공원이 영화로 나온 게 1993년. 원작 소설이 나와서 히트를 친 게 1990년인데 이미 마이클 크라이튼은 그보다 12년 전에 자기 원작 소설로 직접 영화를 찍고 있었다는 게 신기해서 기억해뒀던 영화였네요. '죽음의 가스'라는 친절한 제목 덕에 모르고 지나칠 뻔 했던 걸 '원제가 뭘까?'라는 괜한 호기심에 검색을 해봤다가 알게 됐었죠. 게다가 출연진이 은근히 빵빵해요. 주연을 맡은 분도 이름은 낯설지만 '데드 링거'에서 쌍둥이 사이에 끼어서 봉변 당하는 불쌍한 역으로 얼굴은 익숙하구요. 마이클 더글라스에 톰 셀릭에 에드 해리스도 나옵니다!! 그래서 결국 봤는데... 하하. 마지막 두 분은 완전 단역이에요. 톰 셀릭은 '매그넘 P.I.'로 유명해지기 2년 전이고. 에드 해리스는... 글쎄요. 뭘로 뜨셨는진 모르겠지만 암튼 이 때는 아닙니다. 암튼 이런 게 중요한 건 아니겠고.
(아아니 그 때부터도 이미 해리스옹의 이마는... ㅠㅜ)
- 전반부가 꽤 재밌습니다. 수수께끼의 식물인간 사건(?)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그것 말고 주인공 수잔의 고달픈 병원 생활 이야기가 나름 꽤 비중있게 묘사되면서 대형 종합병원이란 곳이 돌아가는 모습들을 적당한 디테일로 보여주는 게 좋더라구요.
그렇죠 뭐.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1978년인데 여성 의사가 그렇게 흔하진 않았을 거고. 대형 병원에서 출세하기란 더 힘들었을 거구요. 힘들어서 약한 모습 좀 보이면 바로 '역시 여자란...' 이란 시선을 받아야 하고. 이런 피곤한 처지를 본격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스쳐가는 디테일들로 묘사를 해줍니다. 그래서 좀 더 으쌰으쌰하며 주인공을 응원하는 맘도 생기구요. 병원 묘사가 현실적인 것 같은 기분이 드니 뭔가 되게 전문적인 이야기를 보는 듯한 기분도 들구요. 그래서 한참을 재밌게 봅니다.
(톰 셀릭 나왔다!! 했는데 무척이나 톰 셀릭스런 캐릭터로 대사 대여섯줄 읊은 후론 코마 상태로... ㅠㅜ)
- 다만 이제 '수잔은 옳았다!' 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 결말까지는 전반부만큼 재밌지는 않아요. 여기서부턴 이제 본격적인 스릴러 &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 액션 같은 게 들어가는데, 이렇게 이야기가 현실적인 범주를 살짝 벗어나니 갑자기 허공에 붕 뜨는 느낌. 수잔은 계속해서 억세게 운이 좋고, 계속해서 나쁜 판단만 내리는데도 (아니 제발 그냥 경찰서로 가라고!!!!!!) 어찌저찌 벗어나고 피하고 탈출하고 그 와중에 중요한 정보는 차곡차곡 쌓이고... 이러다 보니 맥이 좀 빠집니다.
대신 이 부분엔 마이클 크라이튼이 상상했던 의료판 아포칼립스적 비전 같은 게 SF 풍으로 펼쳐지는 게 살짝 재밌긴 했습니다. 그게 뭔지는 스포일러라서 여기선 언급 안 하겠구요. 본격 SF는 아니고요, 그냥 '어쩌면 앞으로 의료계에 이런 일이 생길 수도!!' 라는 상상 일기(...) 같은 건데 뭔가 딱 그 시절스런 상상력이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미 45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볼 땐 몹시 기우였습니다만... ㅋㅋ
(그 시절 사람들에겐 최첨단. 요즘 사람들 보기엔 레트로 화석 박물관...)
- 암튼 뭐. 이러나 저러나 결국 마이클 크라이튼 '감독'의 최고작은 '웨스트월드(이색지대)'라는 것에 별 영향은 주지 못할 평범한 소품 스릴러였습니다. 시대를 감안하면 충분히 괜찮게 만든 수작이긴 한데, 그냥 2023년 기준으로 볼 땐 후반부의 붕 뜨는 분위기가 좀 아쉬워서 평작 정도인 걸로.
아마도 공짜로 볼 수 있는 곳은 iptv vod 정도일 듯 하니 꼭 챙겨보려 애 쓰실 필욘 없겠고. 공짜로 볼 수 있고, 오랜만에 '의학 스릴러' 같은 걸 한 번 보고 싶은 기분이 드는 분들이라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못 만든 영환 아니니까요.
전 전반부의 호감을 갖고 마지막까지 그럭저럭 즐겁게 봤습니다. ㅋㅋ
(아직 살아 계시구요. 마지막 작품이 2018년에 음성 출연이었던 걸 보면 아마 은퇴하신 듯.)
+ 마이클 더글라스는 그 때도 이미 마이클 더글라스 같은 역을 하고 있었다는 게 보는 내내 웃겼어요. 진짜 캐릭터가 그냥... 마이클 더글라스라서.
++ 아래는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결국 모든 게 병원장의 음모였습니다만, 스토리가 살짝 설명이 불충분해서 자세히 설명하긴 어려운데, 대략 두 가지 얘기에요.
일단 병원에 몰래 설치해 놓은 일산화탄소 공급기로 미리 골라 놓은 젊고 멀쩡한 환자에게 마취 중에 산소 대신 일산화탄소를 먹여서 코마 상태로 만들고요. 코마 환자들만 수용하는 제퍼슨 뭐뭐라는 시설로 보내서 거기에서 관리를 하기도 하고, 신선한 장기를 떼어다 국제 경매에 붙여 팔아 먹기도 합니다. 좀 더 포인트를 주는 쪽은 코마 환자 관리 시스템이었는데요. 수많은 환자들을 허공에 줄로 매달아 놓고 컴퓨터가 관리하게 한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좁은 공간에 많은 코마 환자를 넣고 관리해서 비용을 하루 7달러 이하로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 ...뭐 이런 거였구요. ㅋㅋ
우리 수잔씨는 사태의 일부분을 파악하고는 멍청하게 경찰서로 안 가고 먼저 남자 친구에게 갔다가, 남자 친구가 자기 몰래 '네네, 지금 돌아왔구요. 제가 데리고 있을 테니 어서 오십셔!' 라는 통화를 하는 걸 보고 씐나게 튀어요. 가뜩이나 사내 정치에 전념해서 출세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인간이니 그럴만도 했구요.
그러고선 수잔은 혼자 스파이 전사가 되어 사태의 전모를 다 파악하고선... 또 다시 멍청하게 경찰서로 안 가고 병원으로 쪼로록 돌아가 자기가 믿던 병원장에게 털어 놓았는데 알고 보니 갸가 진범. 그리고 갸가 줬던 술엔 약이 들었고... 라는 답답이 클리셰 전개로 가구요. 병원장님은 자기가 개발한 일산화탄소 기구가 참 맘에 들었는지 의식 잃은 수잔을 급성 맹장염으로 꾸며서 수술 중에 코마로 보내버리려 하는데, 수술실 들어가기 직전에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남자 친구에게 블라블라 털어 놓은 게 먹혀서 수술 중에 일산화탄소 기계가 파괴됩니다. '이제 보내버렸으니 속이 시원하군!' 이라며 미소 짓는 빌런 등 뒤에서 수잔이 회생하는 장면이 나름 포인트였네요.
아. 그리고 우리 더글라스찡은 그럼 아까 대체 어디다 전화를 하고 있었냐면, 수잔네 엄마였다네요. ㅋㅋㅋ 마이클 더글라스가 내내 마이클 더글라스처럼 의뭉스럽고 좀 비열해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해 보이는데 알고 보니 착한 사람이었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이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완전히 속았어요. ㅋㅋㅋㅋㅋ
2023.01.23 21:11
2023.01.23 21:26
아하 로빈 쿡이었군요. 이런 생각 없는 자 같으니... ㅋㅋㅋ 말씀대로 각본이 크라이튼이라서 원작자라고 맘대로 뇌에서 보정을 해버렸나 봅니다. ㅠㅜ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영님 같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구요. 웨스트 월드 같은 영화는 어쩌다 본 매니아들은 많았어도 그렇게 유명 작품이라고 하긴 좀 그랬으니까요. 사실 그거 감독이 크라이튼이라는 걸 알게 된 건 21세기의 일이었습니다. 하하.
2023.01.23 21:14
이거 은근히 카메라워크가 여성배우에게 좀 선정적이었던 기억이 나요. 치마입고 사다리같은데 올라가는데 밑에서 잡는다거나...란 쓰잘데기 없는것만 기억나네요.
전 이거랑 멜리사길버트가 나오는 도너가 항상 헷갈려요. 방영시기도 크게 차이 안나고 내용은 뭐 거의 같은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고...전 첨에 원작이 같은건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구요.
2023.01.23 21:33
사다리는 잘 기억 안 나는데 도입부의 별로 무의미한 샤워씬이 기억나네요. 김 서려 흐린 유리였다지만 어쨌든 그걸 한참 비춰주면서 누드로 연기를 시키더라구요. 요즘 같음 저런 장면 안 넣을 텐데... 했죠.
'도너'라는 영화는 처음 들어보는데 검색해보니 tv용 영화였나 보네요. 사실 멜리사 길버트란 이름도 기억이 안 나서 한글로 검색했더니 온통 하원의원 출마 뉴스만... ㅋㅋ 그래도 '초원의 집' 그 아이란 건 알았습니다. 그 시리즈는 드라마도 봤지만 책이 참 재밌었죠. 온갖 미국 옛날 식량들에 대한 로망을 심어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먹어보고 싶은 게 하나도 없...
2023.01.23 21:53
영화, 소설 다 보았는데요. 오래되서 기억은 거의 안나요.
로빈 쿡에 대한 한줄 요약은
"의학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면이 인기가 있었지만,
소설 패턴들이 비슷하여 몇권 읽다보면 거의 범인이 예측된다."네요.
또 자료에는 이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나와있네요.
"...400만 달러 저예산으로 만들어 5000만 달러라는 흥행 대박을 거둬들였다.
...개봉 당시 영화에서 알몸이 나온다며 가위질되었다. 1990년에 SKC에서 VHS 비디오로 출시했다.
실제 의사 출신인 마이클 크라이튼이 감독이다보니 의학적 고증이 대단한데,
욕창을 방지한다면서 사람을 줄 몇개로 매달아놓는다...."
2023.01.24 01:11
오. 그 시절에 5천만 달러라니 정말 성공했군요. 의외인데요. 하하. 확실히 제가 지금 보기에 좀 루즈하다고 느꼈던 부분들이 그 당시엔 그냥 다 괜찮고 심지어 훌륭해 보였나 봅니다. 세월이란...
사실 로빈 쿡은 이름도 기억나고 의학 전문 장르 소설가라는 것도 기억나는데 뭘 읽었는지는 전혀 생각이 안 납니다. 분명히 뭔가 보긴 봤는데(...) 그 시절에 라디오에서 자주 하던 책광고에도 종종 들리던 이름이어서 분명히 뭘 보긴 봤을 텐데요. ㅋㅋㅋ
2023.01.23 21:54
참고로 소설의 결말은 약간 더 모호하지요. 영화 결말 마지막 1분 자르고 관객들 안달나게 만들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윽...
마취학 과장을 맡은 립 톤도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 한 번 오른 꽤 알려진 성격파 배우였지요 (몇 년 전 사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역은 [맨 인 블랙]의 국장 캐릭터.
'그 분'을 맡으신 리처드 위드마크는 옛날 옛적에 이 고전 느와르 영화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었지요.
2023.01.24 01:12
마지막 1분을 잘라 버리면 '약간 더 모호'한 게 아닌데요. ㅋㅋㅋ 혹시나 그렇게 찜찜하게 끝날까봐 걱정하며 봤는데 원작이 그랬다니;;
아마 본지 오래되셨을 텐데 빌런들 역할이랑 배우까지 다 기억하시네요. 대단하십니다. 하하.
2023.01.23 23:41
의학 스릴러라면 최근에 실제 연쇄 살인범 소재였던 '그 남자, 좋은 간호사'가 있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마이클 크라이튼 작품이라서 그런지 설정이라든지 전반부 전개 설명해주신 부분이 매우 흥미롭네요. 후반부나 결말이 상대적으로 아쉽다는 건 아쉽지만 땡깁니다. 몰랐던 작품인데 챙겨보겠습니다. 톰 셀릭도 반갑네요.
에드 해리스 옹은 촬영했을 시기로 따지면 대략 27살 쯤의 한창 파릇파릇할 때인데 벌써 이마가 ㅠㅠ 뭐 이후로 폭풍간지의 명배우로 화려한 커리어를 만드실테니 ㅎㅎ
2023.01.24 01:14
위에 댓글로 나왔지만 원작은 다른 사람이라는 거.... ㅋㅋ 하지만 각본은 크라이튼이 썼으니 크라이튼 공도 있겠죠. 암튼 영화가 지금 봐도 나쁘지 않습니다. 큰 기대는 마시고 적당히 보시는 게 좋아요. 저처럼 마이클 더글라스에 꽂혀서 보셔도 은근 재밌을 겁니다. 배우 활용을 잘 했어요.
27세에 저 모습이었다면 그냥 강력한 유전이었군요. ㅠㅜ 말씀대로 나이 먹은 후엔 오히려 저게 간지가 되었으니 잘 된 걸로!! ㅋㅋ
2023.01.24 10:16
2023.01.24 12:41
이게 나이 먹고 나서 보니 더 무섭기도 하더라구요. 아픈 데도 없는데 칼 대고 마취하는 장면에서 얼마 전에 수술 받은 기억이 나서 필요 이상으로(?) 긴장이 되더라구요. ㅋㅋ
코마, 바이탈 사인이라고 적어주시니 옛날 책 광고와 함께 좀 더 기억이 또렷해지네요. 그러고보면 저 코마 읽었는데. 내용을 정말 완전히 까먹어버렸나봅니다. 허허 이것 참(...)
2023.01.27 16:12
주인공분이 누구신가 했더니 쥬느비에브 뷔졸드이군요. 천일의 앤 밖에 본 게 없지만... 아직 살아계신 줄 몰랐는데 최근 사진을 봤더니 젊었을 적의 미모가 그대로 보이시더군요,
톰 셀릭은 몇 년후에 마이클 크라이튼의 Runaway 에서 주인공으로 나왔고 전 90년대에 그 영화를 봤었는데 80년대 영화란 걸 감안한다면 그럭저럭 볼 만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다시 본다면 구닥다리 SF겠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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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은 로빈 쿡이요, 각본, 감독이 크라이튼이라....인터넷 없던 시절 혼동을 주기도 했고요. 저는 마이클 크라이튼을 당연히! 소설 <주라기 공원>으로 접했으니 그의 70년대 활약상이 지금도 굉장히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전혀 동일인물 같지 않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