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 잡담입니다.

2022.12.30 12:01

thoma 조회 수:347

Happy End,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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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문구가 반만 맞는 거 같아요. '올해 가장 우아하고 파격적인 끝'이라니 '파격'일 수는 있겠습니다. 저 포스터의 어린이와 늙은이의 막판 행태를 보면요. 하지만 우아한 거랑은 거리가 멀어요. 영화 보기 전에는 포스터 장소가 집이나 별장에서의 가족 모임인 줄 알았는데 바닷가의 식당이고 이자벨 위뻬르 여사의 약혼 모임이었어요. 다들 그닥 호의없이 어딘가를 누군가를 보네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직전 작품인 '아무르'와 내용이 살짝 연결되는데 영화의 성격은 많이 다릅니다. 전작이 인간의 말년에 대해, 최후의 시간에 대해 실존적으로 고민하는 작품이라고 거칠게 한 줄 요약한다면 이 작품은 프랑스의 한 부르주아 집안을 통해 망해가는 유럽의 모습을 파편적으로 전시하는 영화라고 봤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오래 전에 본 '히든'의 기억이 흐릿하게 나면서 통하는 지점이 있는 듯해 '히든'을 다시 보고 후기를 쓸까, 하다 말았어요. 늘 그렇듯 짧게 '이 영화 봤음' 정도로 메모하려고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는 엄청 지지하는 분들도 있고 불쾌해 하는 분들도 있는 걸로 아는데 저는 영화마다 조금 달랐습니다. '피아니스트, 히든, 아무르'는 좋아하는 쪽으로 가 있고 '하얀 리본'은 좋지 않은 느낌으로 남아 있네요. 다시 보면 어떨런지 모르겠어요. '퍼니 게임'은 그냥 건너 뛰었고요.  

영화에서 특별한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데 - 아마 경제적 이유 때문이겠죠 - 삼대가 한 건물에서 지냅니다. 서로를 통해 진심이나 정서적 유대감 같은 건 못 느끼는 것 같고 필요와 습관으로 생활 공간을 함께 하고 있어요. 한참 경제적, 사회적으로 바쁘면서 그 지위를 누리는 시기인 중년의 두 자녀 앤과 토마스는 이 집안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어쨋거나 끌고 나가고 있고 이들의 늙은 아버지는 사는 게 지긋지긋한지 죽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앤에게는 정신적으로 사춘기를 못 벗어난 성인 아들이 하나 있고, 토마스는 이혼한 아내와 살던 딸을 전처의 입원으로 맡게 되었는데 이 집에서 가장 어린 캐릭터인 이 딸은 심각한 sns중독 같네요.  

짐작하시겠지만 관객에게 호감을 줄만한 인물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 집안의 대표 활동가인 앤과 토마스는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열심히 사는 활동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일들이고 당연히 위선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점을 인식 못합니다. 얄팍함, 부박함, 내면의 황폐함이 세월이 흐르면 이들을 그들 아버지의 현재로 데려 가겠죠. 두 남매의 자식들은 이들의 위선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맡지만 한 명은 치기에 그칠 뿐으로 보이고 한 명은 내부로 더 곪아들어가는 양상입니다. 손자 손녀 둘 다 윗세대에 억눌려 살면서 쌓은 자산을 이용하며 타락하거나 자살하거나...뭐 이런 예상을 하게 되는 결말입니다. 이들의 내적, 인간적 고민에 공감할 여지를 영화가 주지 않습니다. 

영화를 본 직후에는 전체를 꿰는 드라마가 없어 '히든' 보다 실망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계급 의식에 쩔어 있는 위선적인 부르주아'를 파편화된 인물들로 전시할 뿐인 거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선 위선에 대한 의식이 하나도 없는 인물들에 어떤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삭막한 현실이 있을 뿐,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그냥 그렇게 살다가 망하는 것이 다다, 라는 것이 감독 생각 아닌가 싶습니다. 

1시간 40분 조금 넘는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 보는 재미와 화면이 만드는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흥미진진하다가 금방 끝이 난 느낌입니다. 훈훈한 연말용으로 추천하긴 어렵지만 저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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