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7 15:39
Let Them All Talk. 2020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메릴 스트립, 다이앤 위스트, 캔디스 버겐.
저는 웨이브에 올라와서 보았어요. 넷플릭스와 왓챠에는 없는데 다른 곳은 모르겠습니다. 스포일러는 피해서 썼습니다.
여러 면에서 작은 영화입니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작가가 출판사 후원으로 크루즈를 이용해 영국을 가게 됩니다. 상을 받으러 가는데 배에서 강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글도 써야 합니다. 이 여행에 오래된 친구 두 명과 조수 역을 맡길 조카를 끼워 함께 갑니다. 가는 동안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가기 전과 영국 도착 후의 장면이 짧게 나오고 대부분의 영화 속 시간은 이 거대한 배 안에서 왔다갔다하고 대화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어요. 배 안이라는 공간과 여행하는 짧은 시간이라는 점과 실시간 별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는 소박한 느낌을 줍니다. 배에 탑승하는 장면 같은 경우엔 이 유명한 배우들이 그냥 사적으로 다니는 걸 몰래카메라로 찍은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소더버그 감독이 직접 촬영했다고 하고 스텝도 최소한이었다는 것 같습니다.
중심 인물인 세 명의 친구들 나이가 70대입니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라 오래된 사이지만 계속 가까이 지내진 않은 것 같아요. 나이가 많다고 너그러운 노친네들의 크루즈 여행을 상상하시면 안 되겠습니다. 이 중에 두 사람은 마음에 앙금이 있습니다. 애초에 작가가 친구 두 사람을 여행에 초대한 마음은 호의가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캔디스 버겐이 맡은 인물의 경우에 마음의 상처를 지닌 채 여유없는 삶에 시달리면서 작가와는 다른 처지에서 다른 시각으로 인생을 보고 있어요. 꽤나 각박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나이들었다고 해서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 주지 못한 부분들이 있고, 서로에 대해 기대하는 바도 다르고 몰이해를 해소할 여건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 영화는 이 인물에 긴장과 갈등의 요인을 부여합니다. 이 인물을 좀 가차없이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물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관객인 우리 각자가 생각해 볼 부분인 것 같습니다.
영화 후반에 이르기 전까지는 작가가 누리는 것들에 대해 조금 고까움을 느끼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혼자 최고급 방을 쓰는 것이나 자기 이니셜이 박힌 노트를 쓰는 것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배에서 우연히 알게 된 유명 장르 작가를 깔보듯 하면서 속물적인 지식인의 티도 내고 친구들에게 오만하게 굴기도 하니까요. 그게 메릴 스트립의 연기로 과하지 않지만 충분히 느껴질 정도로 잘 전달되고 있으니까요.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의 표면에 드러난 것만 가지고 쉽게 저울질하는 습관에 대해서요. 저 이는 오만하고 사리를 모른다, 저 이는 행복에 겨웠다 등등의 어떤 사람의 행, 불행에 대한 판단들을 쉽게 하며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캔디스 버겐은 어릴 때 tv 영화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분도 특별한 미모의 소유자였는데 나이 많이 들어서도 활발한 활동 중이셨네요. 메릴 스트립의 아름답지만 그래도 이제 나이가 나이니 늙은 모습은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영화 스타들은 팬들에게 그런 안타까움이 들게 하나 봅니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데보라 아이젠버그라는 단편 소설 작가가 썼다고 합니다. 이분의 나이도 70대가 훌쩍 넘으셨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 단행본이 나오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이 영화가 깔끔하게 잘 쓰여진 단편 소설 느낌이 많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2.10.17 17:20
2022.10.17 18:44
코로나 직전에 이거 찍고 다음에 키미를 찍었나 했어요. 소더버그 감독이 이런 영화들은 꾸준히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루카스 헤지스는 여기서도 보드랍고 순한 청년으로 나옵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얼굴은 남았고 몸은 청년이더군요. 좋은 영화였는데...
2022.10.17 19:00
나오는 영화마다 상 받는 명작으로 만드는 (하지만 본인은 거의 조연급인) 전설의 명배우 루카스 헤지스가 나왔군요. ㅋㅋ 소더버그 아저씨는 주로 장르물들 가볍게 만들어내는 줄 알았더니 이런 드라마도 만들고 있었네요. 은퇴 선언한지 10년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영화만 일곱편에 드라마도... 재밌는 양반이에요. ㅋㅋㅋ 아. 물론 은퇴는 번복하고 활동하는 거긴 합니다만.
2022.10.17 19:35
저에게는 오션스 시리즈보다 '리틀킹, 에린브로코비치, 트래픽'의 감독입니다. 예전 작품들이긴 하네요. 필모를 보면 특별히 가리는 장르 없이 다 만드는 것 같아요.
2022.10.17 19:36
웃기는게 은퇴한다고 했던 그 짧은 공백기간 동안에도 제작은 다 관여하고 그랬죠 ㅋㅋ 팬데믹 동안 각본을 몇편이나 완성했다는 걸 보면 그냥 쉬는 거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네요.
2022.10.17 19:43
애초에 왜 은퇴한다고 했을까요?
아마 은퇴를 결심하고 나니 영화에 대한 사랑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창작의욕은 샘솟고 그랬던 것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죽으려고 생각하면 삶에 애착이 생기는 것처럼?
소더버그 쉬지않고 다작하는 건 여전하네요. 이런 작품이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메릴 스트립은 언제나 믿고 보는 이름이지만 캔디스 버겐, 다이앤 위스트도 다들 반가운 이름이고 젬마 찬, 루카스 헤지스도 호감 배우들인데 지금 웨이브를 안해서 안타깝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