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1 00:05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송지효나 박하선이 코미디 영화에 주연으로 나오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려웠죠.
둘 다 어둡거나 단아하거나 칙칙한 분위기로 알려진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배우의 이미지란
달걀껍질처럼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이고, 최근 몇 년 동안 두 사람은 모두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자칼이 온다]와 [음치클리닉]이죠.
[음치클리닉]은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에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어디를 가도 무조건 노래부터 시키는
대한민국의 강압적인 문화 속에서 음치들은 살기가 참 힘들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동주에게는 개인적인 이유가 따로 있었으니, 10년만에 만난 짝사랑/첫사랑의 상대인 민수가
노래 잘 부르는 여자를 더 좋아하는 거 같더란 말입니다. 그 때문에 덜컥 음치클리닉에
등록한 동주는 위생관념 제로지만 여자 고객들에게는 인기가 꽤 있는 편인 강사 신홍의
지도 아래 음치 탈출에 나섭니다.
이 정도면 코미디 소재가 충분한 편입니다. 무언가에 체질적으로 서툰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뭔가 웃기는 게 나오니까요. 하지만 [음치클리닉]의 아이디어는 빈약합니다. 소재의
아이디어를 최대한으로 뽑을 생각을 하는 대신 이미 [하이킥]으로 캐릭터를 굳힌 박하선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지요. 이 영화의 코미디 아이디어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박하선에게
귀여운 짓을 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박하선은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우가 열심히 뛴다고 해도 아이디어가 부족하면
티가 나죠. 각본을 보면 그냥 허술합니다. 후반부의 백두산 콘서트 장면만 봐도 작가들이
생각하기 귀찮아 한 티가 역력해요. 전후 연결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설익은
아이디어를 엮은 겁니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심지어 그런 코미디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코미디가 아닌 로맨스에 쏟아붓고 있어요.
그 로맨스는 대충 이치에 맞는 이야기입니다. 연애와 실연을 통해 성숙해지는
여자의 이야기지요. 하지만 완성된 결과물은 코미디보다 더 게으릅니다. 역시
재료들이 아무런 개연성 없이 그냥 엮인 것이죠.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처음에 민수를 사랑했던 동주의 감정이
신홍에게 넘어가는 과정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 과정이 거의
없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박하선은 괜찮습니다. [하이킥]에서 만들고 배운 것들을 작정하고 알차게 다 써먹고 있죠.
윤상현도 자기 재주와 매력을 자연스럽게 풀고 있고요. 하지만 그들이 연기해야하는
재료가 빈약하고 얄팍한 걸 어쩌겠습니까.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한국 장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목표치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닌가 보죠.
(12/11/21)
★★
기타등등
카메오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더군요. 한두 명 정도면 괜찮지만 이건 거의 이야기 집중에
방해가 될 정도.
감독: 김진영, 배우: 박하선, 윤상현, 박철민, 허재호, 임정은, 최진혁, 장광, 김해숙,
다른 제목: Tone-Deaf Clinic, Love Clinic, Vocal Clinic
IMDb http://www.imdb.com/title/tt140900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2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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