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0 20:09
I Am Not Your Negro, 2016
왓챠에 보관했던 영화들을 나름 부지런히 보고 있습니다.
라울 펙 감독의 2016년 다큐멘터리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감독의 다음 영화 '청년 마르크스' 와 비슷한 시기에 소개된 것 같습니다. '청년 마르크스'는 극장에서 보았는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고 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공산당 선언'이 나오기까지 5년 정도의 시기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기억이 많이 날아갔지만 열정적인 젊은 마르크스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은 아니고 가난 속에서 공부하고 글써서 가정을 겨우 건사하는 모습이 많이 나왔었던, 차분한 영화였습니다. 극영화지만 여기도 다큐의 느낌이 있었던 것 같네요.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도 '청년 마르크스'처럼 글이 바탕이 된 영화입니다. 작가 제임스 볼드윈(1924-1987)이 쓴 미완의 에세이가 주재료입니다. 에세이 내용에 볼드윈의 영상자료, 이 사람이 글 속에 언급하는 말콤 엑스, 마틴 루터 킹, 메드가 에버스 세 명을 포함한 50년대와 60년대 흑인민권운동 당시의 영상자료들, 볼드윈 사후 흑인들의 상황을 보여 주는 자료들을 조금 더 곁들여 전개시키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6개의 소제목으로 진행됩니다. 미국의 역사 속에서 흑인의 수난과 대중문화를 통해 왜곡된 정체성 등이 숙고한 나레이션으로 제시됩니다. 볼드윈은 조직의 일선에서 활동한 사람은 아니고 대학이나 매체에서 강연하고 대담을 주로 했던 것 같아요. 민권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지는 않았다는 점을 본인도 언급합니다. 작가로서 할 말을 다 해왔으나 교류했던 에버스와 말콤 엑스, 킹 같은 사람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보며 슬픔과 고통은 당연하고 복잡한 심경이었음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 속에 본인은 곧 55세가 된다고, 그들은 모두 40세가 되기 전에 죽었다는 서술이 나옵니다.
볼드윈이 대담 형식의 티브이쇼에 나간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초대 손님으로 온 예일대 철학교수라는 백인이 하는 말을 옮겨 볼게요.
'인간은 개인이다. 흑인백인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관점은 과장이 있을 수 있다. 구분되지 않아도 되는 집단으로 사람들을 분류하니까. 나는 학문을 반대하는 백인보다 흑인 학자와 공통점이 많다. 당신도 문학 문외한보다 백인 작가와 공통점이 많을 거다. 왜 항상 인종이나 종교에 집중하나. 사람들을 서로 연관지을 다른 것들도 많은데.'
이 교수가 하는 말 상당히 많이 듣던 말이지요. 왜 항상 여성과 남성을 구분해서 생각하느냐, 라는 말을 집어 넣어도 맞아들어갑니다. 차별당하지 않는 입장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르치려 들며 내놓는 말은 비슷하네요. 이에 대해 볼드윈의 다른 차원의 답이 이어지는데 궁금하시면 직접 보시는 걸로.
작가의 에세이를 원작 삼아 그런지 내용면에서 자기 성찰적인 면도 강하고 상황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말로 잘 표현되어 있어요. 생각보다 사색적인 다큐였습니다. 자료를 배열하고 말을 배치한 감독의 역량도 많이 느껴진 다큐멘터리였습니다. 감독이 아이티 출신으로 아이티 문화부 장관도 역임했었다는데요, 우리로 치면 이창동 감독 쯤 될까요.
볼드윈의 에세이는 사무엘L 잭슨의 음성으로 화면에 깔리는데 다른 영화에서 상당히 튀는 스타일로 대사를 하는 것만 봐서인지 영화를 다 보고 이 배우인 것을 확인하고 놀라웠습니다. 무척 듣기 좋고 적절한 톤의 음성이었어요.
아래 사진은 아시겠지만 말콤 엑스, 마틴 루터 킹, 제임스 볼드윈입니다.(사진 테두리가 커서 공백이 남네요)
2022.10.10 21:24
2022.10.10 21:58
저도 요즘 드라마, 영화 등에서 80년대를 아주 옛날처럼 표현한 걸 보면 이거 왜 이러나 싶다가 실제로 오래 됐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내가 늙은 것이다,를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겠지만... 그래야 하는가...잊고 싶네요...
근데 진짜 우리가 학생일 때 일제강점기 느낌이네요.ㅎㅎ
2022.10.10 22:13
2022.10.11 02:01
그 답변이 궁금해서라도 봐야겠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저런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특권을 가진지도 모르고 자기 자신이 엄청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고 착각하기 마련이죠.
2022.10.11 08:24
예일대 철학과 교수가 현실 인식이 너무나 안일했는데, 무슨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양하는 태도가 참 흔하게 보던 장면이었습니다.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느만큼 공부했다는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 전혀 무쓸모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솔직히 이제 책 날개에 적히는 작가의 출신 학교 같은 것도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효용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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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최근에 학생들에게 마틴 루터 킹 얘길 하고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10대들에게 미국의 인종 차별 역사 같은 건 일단 관심 밖의 일이라 이것저것 얘기해주면서 놀래키는 재미(?)가 있더군요.
다만 1960년대까지도 그런 차별이 법률로 이루어졌다고!! 라고 설명하다가 문득 깨달았죠.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1960년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