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7 22:03
전 분명히 제목에 예고를 했습니다! 아주 핵심적인 스포일러부터 자잘한 디테일까지 아무 거나 막 튀어 나오는 글이니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절대 읽지 마시길.
그러니까 대애충 설명하자면 이런 이야기잖아요.
반에서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지만 속은 타들어가도 꿋꿋하게 버티며 살던 요리가 있고. 미나토는 처음엔 그냥 따돌림에 동참하지 않는 정도였지만 그러다 가까워져서 결국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미나토 본인의 내적 갈등에 주변 아이들의 괴롭힘까지 심해지지만 '남자답게!'를 좋아하는 담임, '너도 가정을 만들면 말이야~' 같은 말로 본의 아니게 압박을 주던 엄마. 그 어느 쪽에도 의지할 수 없어서 자기들끼리 어떻게 해결해 보려고, 살아 남아 보려고 애 쓰다가 그만 사방에 유탄을 튀기고 본인들도 위기에 빠지는 이야기.
배우들 연기나 연출, 전반적인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는 저번 글에서 했으니 생략하고 그냥 제가 좀 껄쩍지근 했던 부분만 이야기하면요.
이 이야기의 등장 인물들은 많든 적든 모두 요리와 미나토에게 잘못을 합니다.
엄마는 아들에게 '너도 자라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만들어서) 가정을 만들어야지!' 라는 말을 자꾸 해서 동성을 좋아하게 된 아들에게 부담을 주고요.
호리 선생은 무신경하게 말버릇처럼 내뱉는 '남자답게!!!' 라는 말로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주죠.
그리고 그 외에도 엄마는 아들 말만 믿고 확신에 차서는 여기저기 찌르고 다니고, 특히 어린애들을 팔이나 어깨를 꽉 잡고 다그친다거나 하는 행동으로 잘못 마일리지를 쌓구요. 호리 선생은 억울한 맘에 자꾸 말 실수를 하거나, 반 여학생이 나름 자기 생각해서 해줬던 말을 곡해해서 이해하고는 괜히 생사람을 잡고 그래요.
이런 것들이 모두 '선의라고는 해도 무신경했던 행동'이 되어 요리, 미나토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러면서 모두의 삶을 파국 직전까지 몰고 가고... 그러는데요. 이렇게 악의 없는 행동 하나가 남에게 어떤 아픔을 줄 수 있는가...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건 잘 알겠습니다만.
에... 근데 그 상황에서 이들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예를 들어 미나토의 엄마는 아들의 이해 못할 행동들(한밤중에 아들이 폐쇄된 터널에서 '누가 괴물인가!!'라고 외치며 날뛰고 있다? ㅋㅋㅋ)에 신경이 극도로 곤두선 상태에서 미나토 본인에게서 '호리 선생이 날 때리고 폭언을 했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그러고 학교에 갔는데 (참 기구하게도 학교 선생들의 압박에 못 이겨서) 호리 선생은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고 그냥 사과만 하죠. 그러니 엄마 입장에선 더 열불이 나고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다 듣는 데서 캬바쿠라 드립을 친 건 용납 못할 잘못이지만... 이것도 사실 이미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접해서 믿고 있던 루머였으니 엄밀히 말해 추가 데미지 같은 건 사실상 없었죠.
호리 선생은 어떨까요. 극중에서 묘사되는 바를 보면 호리 선생은 분명히 좋은 사람입니다. 물론 요즘 세상에 '남자답게!' 드립을 입에 달고 사는 건 몰상식하다 욕을 먹어도 할 말은 없겠고, (근데 일본 사범대에선 그런 기본적인 것도 안 가르친답니까?) 학급에서 요리가 그렇게 괴롭힘 당하는 걸 전혀 눈치 못 채고 있었던 건 비난 받을만한 일이 되겠습니다만. 어쨌든 아직 능력은 좀 부족하나마 애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아낀다는 건 충분히 보여요. 미나토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을 때도 당당히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고 용서를 빌려고 했구요. 마지막에 진실을 깨닫고 그 폭우 속에 우다다 달려와 다짜고짜 미나토에게 사과부터 하는 모습을 봐도 그렇죠.
근데 쪼렙 초임 교사로서 학교의 쟁쟁한 선배들, 교장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그냥 무조건 사과를 했고. 그랬더니 아이 엄마는 오히려 더 화를 내고. 그리고 도저히 다르게 생각할 수 없는 상황들(교실 뒤에서 날뛰는 미나토, 미나토가 나온 화장실에 갇혀 있는 요리, 대놓고 요리를 교실 바닥에 뭉개고 있는 미나토 등등)을 자꾸만 우연히 목격하게 되면서 미나토가 학폭 가해자라고 믿게 되죠.
그러니까 각본이 지나치게 사람 좋게 굴려다가 스탭이 꼬였다는 느낌입니다.
엄마와 호리 선생이 주인공들에게 상처를 주긴 해야 하는데, 이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다 보니 둘의 입장도 너무 억울해져버려요. 너무나도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달아 겪어서 오해를 한 댓가가 너무 크죠. 특히 호리 선생을 봐요. 결국 온 동네에 캬바쿠라 다니는 초등학교 선생이자 학생 하나를 찍어 놓고 미워하며 때리고 폭언을 일삼는 불한당으로 소문이 났으며 직장에선 잘렸습니다. 이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데미지가 과연 회복이 가능한 성질의 것인가요. 아무리 어린 애들이고 세상에 상처 받은 아이들이라지만 본인들도 죄 없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 담임 선생 인생을 자기들 손으로 직접 그렇게 만들어 놓고 지들끼리 하하 웃으며 햇살 속에 힘차게 달려나가 버리면 뭐 어쩌라는 겁니까!!! ㅋㅋㅋ
그리고 또 하나 난감한 게 교장 선생이에요.
뭐 손녀를 치어 죽인 게 교장 본인인지 남편인지는 사실 중요하지도 않고 전 관심도 없는데요.
그거야 어쨌든 간에 위기에 빠진 호리 선생을 완전히 골로 보내 버린 건 이 양반의 무심함과 비정함 아닙니까. 본인 말로는 학교를 지키기 위함이라는데 이 양반이 한 짓이 '학교'를 지키는 거랑 뭔 상관이에요. 할 수 있었던 해명을 못하게 막고, 결국 일을 키워서 열정 넘치는 신임 교사 인생을 강제 종료 시킨 후에 본인은 쓱 빠져 나갔잖아요. 이게 미나토 데리고 음악실에서 뿜빠뿜빠 한 번 시켜주고서 '후우... 나도 거짓말을 했단다...' 라며 착한 표정 한 번 짓는 걸로 커버가 될 일입니까. 근데 영화는 정말로 그 장면 하나로 '이 놈도 알고 보면...' 이라는 식으로 살짝 면죄부 비슷한 걸 준단 말이죠. ㅋㅋㅋㅋ
(이래놓고 막판에 갑자기 착한 척, 양심적인 척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ㅋㅋㅋㅋ)
결론적으로.
제게 이 영화의 각본은 나름 균형도 잡고, 또 비극을 그리면서도 그 관련자들을 나름 인간적으로 그려 주려다가 밸런스가 괴상해진 걸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별 잘못 없는 놈은 인생 망치고, 정말 크게 잘못한 놈은 막판에 난데 없이 온정의 시선을 받구요. 그걸로 그냥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아무리 인생 힘든 어린애들이라지만 남의 인생 그렇게 망쳐 놓고 하하 호호 즐겁게 달려가는 엔딩씬 같은 거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어요. 아니 장면 자체는 정말 아름답고 멋졌는데, 공감해 줄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ㅋㅋ
그렇습니다.
차라리 사악한 악당들을 출연시켜서 화끈하게 벌을 주든가.
그렇게 모든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 시키고 싶었으면 이들에게 대략 감당 가능할만한 고통만 주든가...
그랬으면 이렇게 찜찜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의 이 결말은 결론적으로 주인공들에게만 이입 몰빵 엔딩인 것 같아서 맘에 안 들었어요.
....라는 매우 주관적인 이야기였습니다. ㅋㅋㅋ 하지만 저는 진심이라는 거.
전 역시 그냥 칼부림 난도질 호러 스릴러를 봐야 하나 봅니다(...)
+ 정말 생트집인 건 압니다만. 두 소년이 너무 예쁘게 생긴 것도 뭔가 애매하게 불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음(...)
2024.06.17 23:40
2024.06.18 17:46
사실 뭐 여기 호리 선생과 비슷한 일은 겪어 본 적이 없기에 막 이입되진 않았습니다만. 그냥 다 같이 온정적으로 보여줘 놓고 이야기 끝나고 보니 혼자 크리티컬 데미지는 다 짊어지고 종료 당한 것 같아서 애잔하더라구요. 마지막에 뭐라도 좀 희망적인 떡밥을 넣어줬음 어땠을까 싶기도 했구요. ㅋㅋ
그 여학생에 대해서는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디테일을 심어서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느껴지도록 만든 것도 각본가의 내공이겠죠.
엔딩은... 저도 슬쩍 그 생각을 하긴 했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보면 그냥 살아남아서 씩씩하게 잘 사는 엔딩이겠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굳이 거기에서 갸들을 죽여야 할 이유는 없어 보여서요. ㅋㅋ
2024.06.19 16:38
저는 나중에 찾아보다가 알았는데 그 같은 반 여자아이는 중간에 BL물(...) 만화책을 보고있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래서(?) 두 아이의 관계를 내심 눈치채고 있었고 심하게 괴롭힘 당하고 있을때 일부러 네가 나서라는듯한 행동을 보여주기도 하죠.
2024.06.18 15:27
이 영화에서 타인이 겪는 부조리를 도덕적 징벌의 관점에서만 보고 계셔서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 뭔가 아주 잘못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 평범 이상의 사람들인데 상식 혹은 평범의 관점에서만 행동할 뿐이죠.
평범한 사람들이 크게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왜 실패를 겪고마는지, 그 부분에서 생각해보시면 이 영화의 문제의식을 더 생각해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개인의 도덕에만 초점을 맞추면 로이배티님 말대로 이 영화는 이상한 영화일 뿐이죠.
아시겠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주 악독한 사람들을 그리는데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영화에서 실패하는 건 늘 시시하고 평범하고 때로는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는 제도에 더 초점을 맞추곤 했습니다.
2024.06.18 18:26
도덕적 징벌의 관점에서만 본다... 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와닿지가 않아서 답해드리기가 좀 난감합니다만. 대충 짐작해서 말씀드리자면 그냥 단순하게 '나쁜 애가 왜 벌 안 받고 별로 안 나쁜 애만 인생 꼬여요!!!' 라고 투덜거리는 건 아닙니다.
제가 어떤 잘못된 관점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이렇게 느꼈다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일단 쏘니님께서 적어주신 '평범한 사람들이 크게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라는 부분은 워낙 노골적이라서 저도 이해 했습니다. 이 시점 저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는 이야기 구성 자체가 그걸 드러내기 위한 구성이잖아요. 각자의 입장에선 그냥 선량하고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그게 알고 보니! 라는 식으로요. 다만 거기에 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는 얘기죠.
왜냐면 이 영화엔 엄연히 크게 잘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리의 아버지가 요리에게 한 짓들은 아무리 이 양반이 동성애를 용납 못하는 옛날 사고 방식 사람이라고 해도 엄연히 범죄구요. 이 양반은 영화에서 실질적인 비중이 크지 않으니 (이 캐릭터의 시선은 한 번도 나오지 않으니까요) 일단 그냥 넘어간다면 교장이 남죠. 차라리 그 교장 캐릭터에 대해서도 요리 아버지처럼 그냥 무심하게 넘어갔음 괜찮았을 텐데 막판에 이 양반 입장들을 보여주면서 '얘도 알고 보면 그냥 평범하게 모자란 인간일 뿐...' 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푸는 게 납득이 안 갔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교장이 뿡빵거리는 걸로 자신도 모르게 호리의 자살을 막았다... 라는 전개는 어이가 없었구요.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는 사람 좋은 마무리를 위한 변명처럼 느껴졌거든요.
근데 뭐 쏘니님께서 교장이 호리에게 저지른 짓이 '평범 이상의 사람이 상식 혹은 평범의 관점에서 한 행동'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얘기는 더 이어가도 그냥 평행선일 것 같군요. ㅋㅋ
2024.06.19 07:58
그러니까 지금 하시는 말씀이 다 도덕적 징벌의 관점에서 본다는 이야기입니다. 크게 잘못한 사람들이 왜 벌을 안받고 그냥저냥 넘어가냐는 말씀을 또 하시는 거잖아요. 저는 교장이 호리에게 저지른 짓이 평범하다거나 상식적이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 사람들의 행위와 무관하게,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도덕이 크게 타락했다는 식으로 영화가 개인의 도덕에 관심이 없을 거라고 한거죠.
"차라리 사악한 악당들을 출연시켜서 화끈하게 벌을 주든가.
그렇게 모든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 시키고 싶었으면 이들에게 대략 감당 가능할만한 고통만 주든가..."
이 말이 다 "인성"에 관한 겁니다. 죄악과 징벌은 정확히 타산이 맞아떨어져야한다는 이야기인데, 고레에다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왜 어떤 개개인은 어떤 시선에서는 괴상한 사람이 되고 마는지 시스템을 봐야한다고 이야기하는거죠. 개인의 입체성을 오로지 개인의 도덕으로만 판단하면 우리는 사회에 대해 고민할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물론 이 영화를 어떻게 보시든지 그건 로이배티님의 자유입니다. 갑갑해하시길래 이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씀드린것 뿐입니다.
2024.06.19 13:19
1.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인터넷 글쓰기의 진리 중 뭔가 칭찬할 땐 대충 적어도 되지만 비판을 할 땐 정색하고 정확하게 적어야한다... 라는 게 있는데 방심(?)하고 대충 적은 결과가 이렇구나!! 라고 생각을 합니다. ㅋㅋ 기본적으로 쏘니님과 제가 시각이 다른 것도 있지만, 제가 스스로 오해를 산 부분에 대해서 조금만 설명을 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첫째로 전 이 영화를 재밌게 봤고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제 첫번째 글에 충분히 그렇게 적어 놓았구요. 이 영화가 "이상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적지도 않았습니다. 열심히 찾아보니 제가 쓴 중에 그거랑 가장 비슷한 표현이 '(결말에서) 밸런스가 괴상해졌다'라는 건데 쏘니님께서 사용하신 '이 영화는 이상한 영화'라는 표현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죠.
둘째로 제가 이 영화에서 아쉽다고 느낀 부분... 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냥 몰입해서 보던 관객 입장에서의 심정적 아쉬움이죠. 쟈들 잘 된 건 참 다행인데 호리 선생 저 사람 앞으로 인생은 어쩐댜... 교장 선생 참 얄밉네 그랴... 라는 거고 이 부분에 대해선 제가 뭘 설명할 것도 없고 쏘니님께서도 지적할 마음은 없으실 걸로 생각합니다. 그냥 제 감정이니까요.
문제는 다른 하나인데. 전 이 결말 부분이 이야기 측면에서 결함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근데 이 댓글을 달고 있는 본문에는 제가 충분히 설명을 안 해서 오해를 샀고. 그래서 제 입장에선 좀 핀트가 안 맞아 보이는 쏘니님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래서 아이고 진작에 글을 똑바로 쓸 걸... 하면서 또 이런 장문 댓글을 달고 있는데요. 다시 말하지만 애초에 글을 대충 적은 제 잘못입니다. ㅋㅋㅋ
그래서 제가 '결함이라고 느낀' 이유는 대략 이렇습니다.
이 영화는 순서대로 엄마, 호리, 미나토의 시선을 따라가고 여기에 미나토 파트 사이사이에 교장의 시선이 조금씩 섞여 들어가는 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선 변경을 통해 '평범한 우리'가 별 악의 없이, 심지어 선의를 갖고 하는 행동들이 어떻게 엇나가고 남에게 상처를 주며 파국을 불러 오는가... 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죠. 엄마도, 호리도, 미나토도 모두 본인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혹은 남을 위해 최선을 다 한 것 뿐인데 그게 전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몰고 오는. 그런 식인데요.
제가 문제라고 느꼈던 건 교장은 여기에서 자기 홀로 따로 논다는 부분입니다. 이 사람이 영화에서 보인 행동들은 '어쩔 수 없이 or 본인 나름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과 아주 거리가 멀어요. 학교의 총책임자이자 총 권력자로서 이 사람에겐 미나토와 호리에게 벌어진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상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서, 호리에게서 해명의 기회를 빼앗고, 대놓고 악의적인 설문을 돌린 후에, 너 혼자 책임지라고 학교에서 몰아내 버리는 일련의 행동들은 다른 캐릭터들의 사연과는 명백히 성격이 다릅니다. 게다가 이 분은 본인 시점 분량이 혼자 격하게 적어서 관객 입장에선 이해하거나 이입하기가 더힘들죠. 그래서 더더욱 그 악행이 튑니다. 그런데도 마지막에 미나토의 시점을 통해 '나도 거짓말을 했단다...' 라고 갑자기 사람 좋게 고백을 하고 (본의는 아니었지만) 호리의 자살을 막아주는 식으로 아름다운 모습 보여주고 유유히 퇴장을 하니 읭? 하게 됐던 겁니다. 아니 지금 이 사람이 미나토와 요리, 엄마, 호리랑 같은 라인으로 다뤄지는 건가? 이게 맞나? 라구요. 교장이 큰 벌 받지 않아서가 아니구요. 영화의 주요 테마 중 하나와 맞지 않는 태도가 아닌가 싶었던 거죠.
뭐 쏘니님의 동의를 구하는 건 아니구요. 그냥 제 난삽한 글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포인트로 반박을 하게 되신 것 같아서 설명은 드려야겠다... 싶어서 길게 적어봤습니다. 까일 건 까이더라도 핀트는 맞춰서 정확하게 까이려구요. ㅋㅋ
+ "이 영화에서 뭔가 아주 잘못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 평범 이상의 사람들인데 상식 혹은 평범의 관점에서만 행동할 뿐이죠."와 "저는 교장이 호리에게 저지른 짓이 평범하다거나 상식적이라고 한 적이 없어요."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아마도 '평범한 사람들이 본인 나름은 상식과 평범의 관점에서 행동했지만 그 결과는 평범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았다'라는 의미일까요? 그냥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2024.06.19 14:25
그런데 진상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서, 호리에게서 해명의 기회를 빼앗고, 대놓고 악의적인 설문을 돌린 후에, 너 혼자 책임지라고 학교에서 몰아내 버리는 일련의 행동들은 다른 캐릭터들의 사연과는 명백히 성격이 다릅니다.
고레에다는 그 부분을 악행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걸 악행이라고 정의내려버리니 다른 시각에서 보실 필요가 있다고 하는 건데요. 등장인물들은 전부 다 외부인의 어떤 행위에 의해 그릇된 판단을 합니다. 주인공 엄마는 주인공의 거짓말에 의해, 교사는 아이들의 거짓말과 교장의 압박에 의해, 또 다른 주인공 아이는 아버지에 의해 계속 타인을 이해하거나 자신을 이해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개개인은 사회적 압박에 의한 일종의 심신미약 상태와 비슷한 상태에 있습니다. 특히나 교장은 더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손녀를 죽이고 반쯤 정신이 나가있습니다.
혹시 교사에 대해 성매매 업소를 다닌다고 소문낸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아이들도 어쩔 수 없다고 보실까요? 아니면 악의적 행위라고 보실까요? 지금 말씀하신 기준으로 보면 주인공 모친도 악행을 저지른 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교장이 큰 벌을 받지 않아서라고는 하시는데, 결국 하시는 말씀은 교장선생은 다른 종류의 사람, '악행'을 저지른 사람으로 인식하고 싶어하시는 거죠. "다른 라인"이라는 게 그런 의미일테니까. 그러니까 이 영화가 영화 말미에 교장이 주인공과 교감하는 장면을 넣은 겁니다. 영화 초반에는 제일 이해가 안가고 괴물같은 인간인데, 그 인간이 왜 주인공과 교가는지 영화가 묻는 겁니다. 물론 이 영화의 질문을 무시하고 로이배티님이 보시고 싶은 대로 보는 것도 자유입니다. 제가 참견할 이유는 없죠. 갑갑해하시길래 다른 방식으로 보면 그 의미가 읽힐 수도 있다고 한 거고 본인의 감상을 고수하시는 것도 영화 감상의 한 방법입니다.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한테 일단 사죄를 종용하거나 퇴사로 덤탱이 씌우는 게 진짜 아주아주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이건 평범한 사람들이 아주 흔하게 저지르는 사회적 실패이고 많은 사람들이 경험합니다. 이 사람들이 대단한 악의가 있어서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시스템 안에서 이렇게 된 거 너만 굽히면 다 조용해져~ 라고 하는 거죠. 공무원 사회에서 상사의 압박에 의해 진상들한테 사과하는 거 엄청 흔하지 않나요? 그 행위를 개인의 도덕으로 판단하는 것과 사회적 현상으로 보는 건 전혀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2024.06.19 19:23
2024.06.19 20:45
지금 인용하신 인터뷰가 바로 제가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교장이나 요리의 아버지를 괴물이라고 판단하는 건 쉬운 일인데, 훨씬 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들의 괴물같은 부분이 어떻게 사회적 압력으로 작동하는지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다는 내용이잖아요? 이 영화에서 고레에다가 저 캐릭터들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이상해보이는 사람들보다, 비교적 멀쩡한 사람들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괴물이라는 거에요. 전제를 왜 결론처럼 해석하실까요?
계속해서 로이배티님은 괴물같은 교장선생이 합주 장면을 통해 미나토의 엄마나 호리 선생과 같은 층위의 캐릭터로 취급되는 게 못마땅하시다는 거잖아요. 로이배티님이 판단한 악인이 주인공과 교감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고. 그런데 감독 인터뷰는 그 사람들이 같은 층위의 캐릭터일뿐더러, 오히려 멀쩡해보이는 교사나 엄마가 더 큰 압력을 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는 겁니다. 저런 악인이 주인공과 교감하다니 그게 말이 돼? 그걸 인정을 못하는 이유가 로이배티님이 악인은 주인공과 교감해서는 안된다는, 도덕적 판단에 제일 무게를 두고 있기 떄문에 그런 논리가 성립한다고 말씀드린 거구요. 모든 걸 개인의 평가라고 하면 제가 할 말은 없어요. 다만 깝깝해하시길래 그 기저에 깔린 논리를 걷어내고 보시면 이해가 될 거라고 하는 거죠. 괴물 같던 캐릭터를 계속 미워하고 싶은 거야 본인 자유니까 제가 말리고 말고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본인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감독 인터뷰는 오독에 가까운 인용을 하시면서, 정작 감독이 영화를 찍은 의도와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이렇게 "작위적"이라고 평가를 할 수 있는지 전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 '비상식적'이란 단어를 너무 용례에 안맞게 쓰고 계시네요. 병폐가 일반적으로 보이면 그건 비상식이라고 표현하진 않아요. 나쁜데 흔한 일이라고 하죠. 특종 직종에서 상사가 부하직원 갈구고 따돌리는 게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세요? 되게 흔한 일이에요. 저도 직장 상사 때문에 원치 않는 사과를 타인에게 종용받고 한 일 되게 많거든요. 직장상사가 그냥 개새끼라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직장상사한테 당신도 책임이 있다고 따져야 되는 일일까요? 로이배티님이 종종 본인 직장에서 일어나는 병폐들을 그냥 어쩔 수 없다면서 수긍하는 거랑 똑같은 입장입니다. 그 때마다 비상식을 이야기하면서 상사나 동료에게 비판을 실천하시나요?
++ 이미 다 설명드린 것 같습니다.
+++ 더 이상의 대화가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이 영화의 특정 캐릭터나 장면을 작위적이라고 로이배티님은 생각하시는 거고, 그렇게 계속 생각을 하신다는데 제가 아무리 설명을 드려봐야 영화는 체험에 가까운 것이니 계속 풀어서 설명을 할 이유가 없죠... 감동받으라고 제가 강요할 일도 아니고...
2024.06.20 00:38
뭐 어차피 서로가 "와 진짜 말 안 통하네!!" 라고 서로에게 감탄하고 있는 상황일 거라 이 쯤에서 그만 두는 게 서로에게 좋겠죠. ㅋㅋ 알겠습니다. 그만하죠. 다만... 마지막에 적어주신 질문(?)에 대해서만 짧게 말씀 드리고 끝낼게요.
네. 전 직장에서 툭하면 따지고 싸웁니다. 주로 윗분들이랑 싸우고 가끔은 동료랑도 싸우고 아아주 간혹은 학부모랑도 싸워요.
왜냐면 남 보기 부끄러우니까요. 벌써 한참을 싸웠고 그동안 조금은 바뀐 것도 있지만 여전히 부끄러울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걸 무려 '상식'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나도 그 병폐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러고 살긴 싫으니까요.
네... 물론 저는 이러고 살아도 잘리기 힘든 직종에 있는 놈이라서 그거 믿고 이러는 겁니다. ㅋㅋㅋㅋ
2024.06.20 07:51
상식임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순간 병폐의 일부라고요? ㅎㅎㅎ 어떤 부조리에 순응하는 저나 다른 사람들은 마치 병폐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저희는 다 구조의 일부입니다. 제가 로이배티님 글들에서 체념의 순간들을 수없이 보았고 또 그에 공감했는데 이제는 이런 문장을 쓰시는군요. 그러고 살긴 싫다라. 알겠습니다.
2024.06.20 12:44
(워낙 오골오골한 내용이라, 쏘니님은 이미 읽으셨을 테니 댓글 수정해서 없앴습니다. ㅋㅋ)
근데 뭐 어차피 지금 쏘니님 말씀이나 어조를 보면 제 이런 설명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죠. 어차피 쏘니님의 평가와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건 바뀔 리가 없을 겁니다. 하하. 제 하찮은 소감이나 뻘플 같은 건 다 잊으시고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며 좋은 하루 보내시길.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2024.06.19 00:19
2024.06.19 02:01
아 저도 크게는 아니어도 조금 비슷한 생각했던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큰 그림을 우선해서 맞춰내려다 그런 것인지 순간순간의 인물들 성격이나 행동이 좀 납득이 안 갈 때가 있었어요. 근데 이게 시점 바꿔가며 진행하는 구성 덕에 티가 잘 안 난 느낌.
교장은... 본문에도 적었듯이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하다고 느꼈던 캐릭터였습니다. 다른 캐릭터들은 '어쩌다 보니 본의가 아니게' 잘못을 저지르는 식이었는데 이 분의 잘못들은 그 성질이 많이 다르달까요. 검색해 보니 원래 각본인지 촬영본인지에는 이 분이 마지막에 사직서를 쓰는 장면이 있었다던데. 뭔가 설명을 더 붙여 보려다가 결국 잘라내면서 지금처럼 된 것 같기도 하구요.
2024.06.19 11:10
저는 그냥 너무나 재미있게 봤네요, 직업이 학교와 상관이 없어서인지도.
사카모토 유지의 극본이라면 다 섭렵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그 이상함은, 일본이라는 사회의 이상함과 겹친다고 봐요. 윤리적인 면도 사회생활도.. 좀 이상하잖아요, 일본이 ㅠㅠ
2024.06.19 13:32
영화에 대한 반응들을 보면 거의 애니하우님처럼 좋게 본 쪽이죠. 제가 좀 사소한 쪽에 꽂힌 것 같기도 하구요. ㅋㅋ
제가 직업이 그렇긴(?) 하지만 동종 업계라서... 라기 보단 그냥 아무리 봐도 호리 캐릭터가 혼자 너무 파탄 나 버린 것 같아서 짠했습니다. 하하.
그렇죠. 일본 사회가 워낙 독특한 부분들이 많다 보니 보면서 고민이 됐습니다. 지금 이 영화 속 선생들 하는 짓 저게 일본에선 흔한 풍경이라는 건가? 레알? 혼또니?? 이런 느낌으로... ㅋㅋㅋㅋ
2024.06.19 15:17
2024.06.19 19:27
이번 영화는 본인이 직접 각본을 쓴 게 아니라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직접 비교하긴 좀 애매하겠습니다만. 사실 저도 그 영화를 그렇게 인상깊게 보진 않았습니다. ㅋㅋㅋ 그래서 내가 이 양반이랑은 코드가 좀 안 맞나 보다... 했었는데요. 이번 영화는 재밌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전히 저랑은 사상(?)이 잘 안 맞는구나... 라는 느낌도 있고. 이야기가 자연스럽다기 보단 되게 정교하게 짜여진 이야기라는 생각도 좀 들고 그랬습니다.
분명 중간에 끼인 호리선생도 억울하고, 안된 측면이 강하죠... 같은 교사이시다 보니, 그래서 이입된 지점도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특히 저는 교장분의 진의를 알 수 없게 된게... 애초에 착점이 라쇼몽처럼, 서로다른 관점에서 일부만 보게끔 한 셈일수도 있어요. 그리고 중간에 나오는 같은 반 예쁘장한 여자아이도... 뭔가 소년들에게 바라는 게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 괴롭히는 애들과 요리와 미나토사이를 먼저 꿰뚫어 본... (사실 미나토를 좋아했던 것 같은?)
전에 쓴 적이 있는데, 각본가인 사카모토 유지는 호리선생역 에이타가 나온 그래도, 살아간다라는 드라마 각본을 썼었죠.(이 드라마도 설정이... 굉장히 일본사회적이면서도 그렇습니다)
엔딩은 사실, 관객마다 다른 해석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태풍으로 폭우에 파묻혀, 아이들이 천국에 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각본가분은 그냥 배드엔딩은 아니었다.. 고 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